‘푸른 피의 사나이’ 양준혁(55)은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왼손 타자 중 한 명이었다. 1993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2010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때까지 통산 타율 0.316에 351홈런, 1389타점을 기록했다. 지금은 여러 기록들이 후배들에 의해 깨졌지만 당시만 해도 그는 한국 프로야구 타격 부분의 많은 기록들을 갖고 있었다. 방망이를 거꾸로 잡고도 3할을 친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는 ‘양신’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만세 타법’과 땅볼을 친 후 1루까지 ‘전력질주’하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은퇴한 지 14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야구와 관계된 일을 많이 하고 있다. 그는 한 방송사의 야구 해설위원이자, 양준혁야구재단의 이사장이자, 양준혁축구야구교실의 원장이자, 이천 양신리틀야구단의 감독 겸 단장이다. 매년 말 또 다른 야구 스타 이종범과 함께 ‘희망더하기 자선야구 대회’도 개최한다.
그는 운동선수 출신 방송인의 선두 주자이기도 하다. 은퇴 이듬해인 2011년 채널A ‘불멸의 국가대표’를 시작으로 야구와 축구, 씨름 등 각종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짝짓기 예능과 가족 예능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왕성하게 활동한다. 양준혁은 “천성이 하루만 쉬어도 좀이 쑤신다. 은퇴 후 14년 동안 제대로 쉬어 본 건 코로나에 걸려서 일주일 격리했던 게 유일할 것”이라며 웃었다.
양준혁에겐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직함이 있다. 자신의 영문 이니셜을 따서 설립한 JH수산 대표다.
선수 시절 낚시가 취미였던 양준혁은 틈만 나면 경북 포항 앞바다로 나가 낚싯줄을 드리우곤 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포항 구룡포에 위치한 양식장을 사들이게 됐다. 그는 “워낙 낚시를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물고기 한 마리가 수면 위로 날아 오르는 모습을 보고 반하고 말았다”며 “그러다 매물로 나온 양식장을 샀다. 도다리와 가자미, 돌돔 등 물고기를 키웠지만 딱히 재미를 보진 못했다. 시행착오가 많았다”고 했다.
전복 양식 실패가 대표적이다. 한때 전복 양식을 했는데 일대에서 일어난 사고로 애지중지 키우던 전복들이 모두 폐사하고 말았다. 그는 “우리 쪽 실수는 아니었는데 전복은 모두 죽고,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포기할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버티며 전력질주를 이어가다 보니 또 다른 희망이 생겼다. 바로 대방어로 단숨에 역전 만루홈런을 때린 것이다.
그는 전복의 실패를 딛고 5, 6년전부터 대방어 양식을 시작했다. 먼 바다에서 6, 7kg짜리 무게의 대방어를 잡아 와 자신의 양식장에 넣어 키우는 일이었다. 7, 8개월 가량 먹이를 주면서 최소 10kg이상으로 살을 찌웠다. 그는 “전국에 10여 개밖에 없는 축제식 양식장 중 하나인 우리 양식장이 대방어를 키우는데 무척 좋은 환경이라고 하더라. 야구장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양식장에서 현재 1만2000마리 정도의 대방어를 키우고 있다”며 “물을 끊임없이 순환시키며 바다와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먹이를 주면 무지막지하게 먹어댄다. 대방어 양식으로 전국에서 1등 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양준혁 표 대방어는 지난해 업계에서는 큰 화제가 됐다. 품질과 크기 등에서 최상품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도매업자들에게 납품을 주로 하던 양준혁은 작년 말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자신이 키운 대방어를 직접 가지고 와 경매에 참가했다. 자신의 대방어가 어느 정도 가치인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당초 그가 생각했던 금액은 kg당 2만 5000원 정도였다. 그런데 경매 시작과 함께 그의 대방어는 당시 최고 시세에 가까운 kg당 3만 8000원에 낙찰됐다. 그는 “10마리를 내놓았는데 곧바로 10마리가 한꺼번에 모두 좋은 가격에 팔렸다. 우리가 제대로 대방어를 키우고 있다는 생각에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작년 말에는 한 대형마트와 함께 대방어회 행사도 열었다. 그는 “첫날 행사에는 나도 직접 참여했다. 할인을 많이 한 이유도 있겠지만 거의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완판됐다”며 웃었다.
대구에서 태어난 양준혁은 은퇴 후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서울에서 보냈다. 그는 자신의 어장이 있는 경북 포항에서 본격적인 어부로 ‘인생 3막’을 살아보려 한다.
양준혁은 “작년에 포항시로부터 저희 양식장 주변을 ‘해상 낚시터’로 지정받았다. 현재는 양식장 시설밖에 없지만 올해 여름까지는 관광객을 위한 낚시터와 베이커리 카페 등도 들어서게 된다”며 “일종의 바다 위의 야구장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낚시와 함께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 속에서도 틈틈이 하는 건 축구다. 따로 운동할 시간을 내긴 쉽지 않아도 축구를 통해 꾸준히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어느덧 나도 50대 중반이다. 혼자서 운동하는 건 힘들기도 하고 딱히 재미도 없다. 그래서 여러 명이 어디서든 쉽게 할 수 있는 축구를 한다. 누군가와 함께하면 재미있게 땀을 흘릴 수 있다”고 했다.
축구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서 친해지게 된 유도 스타 출신 김재엽 동서울대 교수(61)가 그의 축구 멘토다. 김 교수를 통해 최수종, 이덕화 등 연예인들이 많이 소속된 일레븐FC에 들어가게 됐다. 양준혁은 “일레븐FC에서 매주 축구 경기를 뛴다. 25분씩 6번 정도 시합을 하는데 나는 한 번 차고, 한 번 쉬는 식으로 한다. 그런데 예순이 넘은 최수종 형님은 6번 모두 쉬지 않고 찬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서울 강남 개포동에서 운영하는 ‘양신스포츠아카데미’의 이름도 최근 ‘양준혁축구야구교실’로 바꿨다. 그는 “한 때 야구에서 ‘양신’으로 불렸지만 요즘 젊은 부부들이나 아이들은 내가 ‘양신’인지를 잘 모르더라(웃음)”며 “내가 야구를 오래 했지만 늦게나마 축구의 매력에도 푹 빠졌다. 가끔 성인들도 운동하러 오는데 이곳에서 4대4나 5대5로 풋살을 한다. 자연스럽게 운동도 되고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현재 초등학생 수강생의 비율도 축구와 야구가 비슷하다고 한다.
선수 시절부터 남다른 먹성과 큰 덩치로 유명했던 그는 지금도 딱히 음식조절을 하진 않는다. 맛있는 걸 양껏 먹되 대신 틈나는 대로 몸을 많이 움직이자면 된다는 주의다. 양준혁은 “좀 덜 먹으려고 스트레스를 받으니 편하게 먹고 그만큼 더 뛰면 된다고 생각한다”며 “누구에게나 일주일이 있지만 나는 그 일주일을 열흘처럼 보내려고 열심히 뛰어다닌다”고 했다.
그에게 프로야구 지도자의 꿈은 없을까. 양준혁은 “지도자를 할 마음이 있었다면 은퇴 후 초창기에 현장으로 돌아갔을 것”이라며 “하지만 야구장학재단 사업이나 각종 유소년 사업 등도 뜻깊다고 생각했기에 지금까지 이 길을 걷고 있다”며 “많은 스타 출신들이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처럼 사는 사람이 한 명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어려운 환경을 어린이들을 위한 멘토리 야구단을 전국 6곳에서 운영하면서 연간 10억 원 이상을 쓰고 있다. 후원금도 받지만 모자랄 때는 사비도 낸다. 그는 “그럭저럭 양준혁 야구재단을 끌고 가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다른 사람에게 후원을 부탁하고 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최근에는 경기 이천에 엘리트 선수 육성을 위한 양신리틀야구단도 창단했다. 그는 “리틀야구단으로 시작해 장기적으로 이천에 중학교와 고교 야구부를 창단해 보고 싶다”며 “갈수록 선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나 같은 야구인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좋은 선수들을 조기 발굴해 잘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며 야구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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