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해외 유명인들이 비만치료제로 엄청난 체중 감량 효과를 보았다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리면서 비만치료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 시판되고 있는 글루카곤 유사펩타이드1(GLP-1) 계열의 약제들은 눈에 보이는 체중 감량의 효과가 크고 당 대사를 개선하는 효과까지 있어서 ‘기적과 같은 비만치료제’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가 사용했다고 알려져 유명해진 위고비의 경우 머스크가 약물 치료 중단 후 요요 현상을 겪었다는 기사가 떠 또 다른 관심을 끌었다.》
흔히들 비만은 게으름으로 인한 낮은 신체 활동이나 자기 절제 부족으로 인한 과도한 열량 섭취의 문제로 생긴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에너지 섭취와 소비 사이에 균형이 깨지며 생기는 것이 비만이지만, 그 뒤에 숨겨진 기전들은 의외로 매우 복잡하다. 유전적 소인부터 사회·환경적 요인, 심리적 요인 등 매우 다양한 이유가 단독 또는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만큼 치료도 단순하지 않다. 생활 습관 개선을 기본으로 해야 하는데, 각자 처한 환경이 다르니 개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단순히 적게 먹고 운동만 하면 한 번에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체중 조절 시도를 해봤던 사람이면 누구나 안다.
비만은 몸에 체지방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과도하게 쌓인 상태를 말한다. 손으로 잡으면 잡히는 피부 아래에 쌓이는 지방 외에도 보이지 않고 잡히지도 않는 복강 내, 간, 심장 주변, 근육, 췌장 등에도 쌓이게 된다. 불필요하게 많이 쌓인 지방에서 나오는 각종 물질이 몸의 미세한 만성염증 상태를 유발하거나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을 포함한 각종 심뇌혈관 질환, 심지어 암까지 유발할 수 있게 된다. 비만은 눈에 보이는 단순한 외형상의 문제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게 내 몸속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이 더 심각한 ‘질병’이다.
비만 역시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이기 때문에 평생 조절하고 치료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좋은 생활 습관 실천이 근본이 되고 그것으로도 조절되지 않을 때는 약물 치료를 병행한다.
비만은 만성질환… 치료제 필요
현재 비만 치료를 목적으로 사용이 허가된 약제들의 종류는 그 숫자가 많지 않다. 최대 12주까지 단기 처방이 가능한 약을 제외하고 현재 국내에서 장기 처방이 가능한 약은 오를리스탯, 펜터민과 토피라메이트 복합제, 날트렉손과 부프로피온 복합제, 리라글루타이드 등 이렇게 네 종류다. 대개 지방 흡수를 억제(오를리스탯)하거나 식욕을 억제해 에너지 섭취를 줄여주는 효과를 기본으로 한다. 앞의 세 가지는 입으로 투입하는 경구용 제제이고, 리라글루타이드는 인슐린 펜처럼 생긴 제형으로 주로 복부에 맞는 주사제이다.
비만 치료제가 없던 시기에는 비만이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하는 질병이라는 인식도 별로 없었다. 1999년 먹은 음식 내 포함된 지방의 30% 정도를 대변으로 배설하는 효과가 있는 지방 흡수 억제제인 오를리스탯이 비만 치료제로 처음 출시되었다. 영양 상담 및 운동 교육 등과 같은 생활 습관 개선에 대한 행동 치료가 유일한 방법이었던 비만 치료가 약물 치료라는 새로운 무기를 얻은 셈이었다. 의사에게도, 약을 받게 되는 환자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일부에서는 ‘해피 드러그’란 표현을 사용하며 회식이나 잔치에 가서 배불리 음식을 잔뜩 먹어도 그 약만 먹으면 안심해도 되는 것처럼 잘못 사용하기까지 했다. 그 이후 체중 감량 효과가 더 큰 비만 치료제들이 속속 개발되어 출시되면서 약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란 기대는 더욱 커졌다.
특히 식욕억제제의 경우 체중 조절 시 가장 괴로운 점인 허기를 비교적 수월하게 넘기게 도와준다. 체중 조절을 위해 평소보다 음식 섭취량을 줄이면 우리 몸은 줄어든 양만큼의 음식에 대한 허기를 느끼고, 적게 들어온 에너지만큼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몸을 덜 움직이고 싶게 만든다. 그런데 식욕억제제는 위장에 음식이 머무는 시간을 늘려주거나 뇌에서는 허기를 덜 느끼게 하는 효과가 있어서 식사량 조절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사용하기만 하면 입맛이 떨어지면서 체중이 곧장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고 약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약을 쓰는 덕에 생활 습관 바꾸기가 좀 더 수월해졌다는 생각으로 습관을 바꾸려는 노력을 함께 해야 약의 효과를 더 크게 볼 수 있다.
식욕, 지방 흡수 억제 ‘해피 드러그’
그러나 최근 해외 유명인들이 썼다고 알려져 유명해진 위고비나 GLP-1 계열의 다른 약제들의 경우 효과가 크다고 알려지다 보니 환자들이 환상에 빠지기 쉽다. 가장 기본인 규칙적인 신체 활동과 건강한 식습관에는 신경 쓰지 않고 약만 쓰면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되어서 다시는 체중이 늘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이다. 하지만 생활 습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채 약만 쓰다가 끊게 되면 1년간 시간과 돈을 들여 애써 감량한 체중이 약물 치료 중단 2∼3개월 만에 다시 치료 전 수준으로 증가하는 요요 현상을 경험할 위험이 매우 크다.
게다가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보니 체중 감량의 효과 외에 이상 반응도 고려해야 한다. 펜터민과 토피라메이트 복합제의 경우에는 입이 마른 증상, 가슴 두근거림, 불면증, 손 저림, 혈압 상승 등의 문제가 동반되기도 하고, 리라글루타이드는 복부 팽만감, 오심, 구토, 췌장염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약제에 따라서 고혈압이나 녹내장, 갑상샘암의 병력이 있거나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복용하는 경우 문제가 생길 위험이 높을 수 있어 자신의 과거 병력을 빠짐없이 의사에게 얘기하고, 약을 복용하면서 이전에 없던 증상이 생긴다면 반드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
요요 현상, 부작용… 급여 전환도 숙제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다른 만성질환과 달리 병원을 찾는 비만 환자 중 일부는 강력한 체중 감량 효과가 단기간 눈에 띄게 보이는 약을 처방받고 싶어 한다. 그런 요구를 받아들여줄 만한 병원을 찾아다니거나 본인이 원하는 약의 처방을 요구하거나 여러 병원에 다니며 약을 모아서 한꺼번에 복용하기도 한다. 이는 비만을 질병으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지 미용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 때문인데, 그 기저에는 비만이라는 질병코드가 건강보험으로 커버되지 않는 비급여 질환으로 묶여 있다는 문제가 있다. 현행 건강보험 체제하에서는 비만 관련 진료와 처방은 비급여 비용을 부담해야만 한다. 이런 경우 환자들에게 비만 치료는 질병에 대한 필수적인 치료가 아닌 피부미용 같은 선택적인 것으로 오인되기 쉽다.
앞서 언급한 위고비의 경우 인기가 높다 보니 이미 처방되고 있는 국가에서는 수요가 공급을 넘어선 상태다. 이에 따라 2023년 하반기(7∼12월) 국내에 들여오려던 계획이 미뤄져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처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약의 효과와 주 1회 주사라는 사용 편의성은 기대되나,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가격의 장벽이다. 현재 삭센다라는 상품명으로 처방되는 비급여 약제는 용량에 따라서 월 30만∼50만 원을 환자들이 부담해야 한다. 위고비의 국내시장 가격이 얼마로 책정될지 미정이나, 미국 현지에서는 월 200만 원 가까운 비용이 든다고 한다. 평생 조절하며 치료해야 할 병이 한 달 약값만 100만 원이 넘는다고 하면 누가 선뜻 그 약을 선택할 수 있을까 싶다.
비만은 의지가 부족하고 식탐 많고 게으른 개인의 문제가 아닌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연관된 질병이다. 특히 낮은 사회경제적 수준은 비만 증가와 관련이 있다. 국내 전체 성인에서의 유병률이 30∼40%에 육박하고 아동·청소년에서의 유병률도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런 비만이 비급여 질환으로 묶여 환자들이 비만 치료제를 비롯한 치료 이용에 부담을 느끼고 포기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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