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로 학업중단 김은성 할아버지
1시간반 거리 마다하지 않고 등교
21일 졸업식… “영어 가장 재밌어”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나이에 대한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으니 도전해 보길 바랍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한 학생이 8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 말이다. ‘고등학교 졸업이 대수인가’ 할 수도 있지만, 그의 인생을 되짚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6·25전쟁 때 배움의 길을 접었다가 구순의 나이로 1시간 반가량 걸리는 통학길을 하루도 빠짐없이 소화해 21일 졸업을 앞둔 김은성 씨(90)의 말이기 때문이다. 김 씨는 “처음 이 여정을 시작했을 때는 한없이 멀고 길게 느껴졌는데, 지나고 나니 순식간이더라”라며 시원섭섭함을 내비쳤다.
경기 파주시에 살던 김 씨는 일제강점기에 소학교(초등학교)에 다녔지만 1951년 피란길에 오르며 학업을 중단했다. 이후로 서당에 다닌 적도 있지만 길게 가지 못했다. 그런 그가 고양시 학력인정 고양송암고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건 2022년부터다. 이 학교는 성인도 2년간 6학기를 마치면 고등학교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평생교육시설이다.
입학한 계기는 아들의 강한 권유 때문이었지만, 김 씨는 약 70년 만에 다시 시작한 배움에 금세 흥미를 느꼈다. 김 씨가 가장 좋아한 과목은 영어다. 김 씨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사용하는 영어를 나도 멋지게 할 수 있다면 아주 즐겁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식이 갖춰지면 외국에 한번 가볼까 생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급생 할머니들 사이에서는 ‘젊은 오빠’로 통한다. 김 씨는 “10, 20대 젊은이부터 60, 70대 할머니까지 가깝게 지내며 학교생활이 너무 즐거웠다”고 말했다. 고양송암고 측은 “김 씨가 졸업식을 마치면 국내 최고령 졸업생이 되는 걸로 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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