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진료는 아직 부족한 지점이 많은데, 가장 큰 약점은 치료의 첫 단계인 진단 과정일 것이다. 내과나 외과 진료처럼 직접 눈이나 내시경으로 발병 부위를 볼 수 없고, 혈액 검사를 통해서 진단할 수 있는 경우도 거의 없다. 최대한 환자의 이야기에 근거하여 진단을 찾아가게 되는데, 환자 본인이 질병의 증상인지 알아채지 못하거나 그 외의 다른 이유로 의사에게 알리지 않는다면 진단이 매우 늦어지게 된다. 이 경우에 해당하는 대표적 질환이 강박장애라는 것을 대부분 모르고 있다.
이는 강박장애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존의 이미지가 편협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영화나 영상 매체를 통해 접하는 강박장애의 모습은 이러하다. 오염이 두려워 손을 자주 씻는 것, 가스불을 끄지 않고 나왔을까 반복적으로 체크하는 것, 물건들 줄을 끝없이 맞추는 것 등등. 이 모습들이 흔한 것은 사실이나, 강박장애의 증상들은 훨씬 더 다양하다.
강박장애의 핵심은 원치 않는 장면이나 생각이 머릿속에 침습적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진정으로 원치 않는 내용인데, 마치 누가 집어넣은 것처럼 계속해서 떠오른다. 그 내용이 입 밖에 꺼내기 부끄러운 경우들이 많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나쁜 사람이구나 자책할 뿐이지, 질병의 증상이라고 생각지는 못한다. 그래서 우울증으로 병원에서 길게 진료를 받아 오면서도, 우울증 환자의 셋 중 하나에서 동반되는 강박장애 진단은 놓쳐지는 경우가 잦다.
대표적으로 외설적인 내용들이 떠오른다. 강박장애의 특징이 원치 않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보니, 특히나 더욱더 금지된 장면들이 머릿속을 채운다. 주변 지인들, 심지어 가족들과의 외설적인 장면이 쉴 새 없이 떠오르는데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잔인하거나 폭력적인 내용들도 흔한 증상이다. 가족에게 사고가 나는 장면이 너무도 생생해 출근해 있는 부모님에게 하루 종일 전화하기도 한다. 이제 갓 태어난 사랑스러운 아기를 해치는 모습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른다면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까.
강박장애가 없는 사람들 누구에게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 순간 스쳐갈 수는 있다. 그냥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여기고 넘어가면 되지 않나 싶겠지만, 강박장애 환자분들의 경우 이러한 장면이 떠오르는 빈도와 강도가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이다. 그래서 증상에 압도당한 나머지 이런 생각을 가진 스스로를 미워할 뿐이다. 이 주제를 다룬 영상의 댓글란에는 수많은 고백들이 적혀 있다. 오랫동안 스스로를 미워했는데 조금만 더 빨리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야 나 자신을 좋아할 수 있는 허락을 받은 것 같다는, 참 안타까운 말들. 강박장애는 보통 10대 중반부터 발병하기 때문에 이 이상한 증상들을 부모님께 말씀드리기도 힘들고, 그저 괴로움을 숨기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가능한 한 더 많은 사람들이 강박장애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되어, 초기에 치료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2017년 팟캐스트를 시작으로 2019년 1월부터 유튜브 채널 ‘정신과의사 뇌부자들’을 개설해 정신건강 정보를 소개하고 있다. 9월 기준 채널의 구독자 수는 약 19만9000명이다. 에세이 ‘어쩌다 정신과 의사’의 저자이기도 하다.
김 원장의 ‘이런 것도 강박증? 일상생활에서 몰랐던 사실들’(https://youtu.be/BkEbPaGIST0?si=AiSH4-cusarnOO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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