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칼럼]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 치료제 급여화로 돌연사 막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2일 03시 00분


홍그루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 교수

홍그루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 교수
홍그루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 교수
어떤 사람이 배포가 크고 두려움이 없을 때 강심장이라고 말한다. 심장내과 전문의로서 말하자면 강한 심장은 몰라도 심장이 큰 건 의학적으로 건강한 상태가 아니다. 커진 심장이 돌연사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비대성 심근병증(HCM)이란 질환이다.

HCM은 심장의 좌심실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지면서 나타나는데, 이때 두꺼워진 근육 때문에 전신으로 혈류가 나가는 통로가 좁아지면 폐색성으로 분류된다.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oHCM)은 마치 심장에 시한폭탄이 있는 것과 같다. 호흡곤란, 어지럼증, 흉통, 실신 등의 증상뿐 아니라 심부전, 심방세동 등 각종 심혈관계 합병증에 심장사까지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한폭탄이 언제 터질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10∼35세 젊은 환자는 격렬한 신체 활동 중 심정지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의사들은 심장 돌연사를 막기 위해 떠나는 지하철과 버스를 무리하게 따라잡지 말라는 조언도 한다.

돌연사는 HCM의 가장 잘 알려진 증상이다. 젊을수록 돌연사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에 더 치명적이다. 2000년 프로야구 경기 중 쓰러진 롯데 자이언츠 임수혁 선수가 HCM 사망으로 추정되는 대표적 사례다.

그럼에도 HCM 환자의 약 85%가 진단조차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병을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치료법이 거의 없어 질환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까닭도 있다. 이에 미국에선 매년 2월 22일을 ‘HCM 인식의 날’로 제정해 HCM 치료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다행히 국내에선 지난해 5월 oHCM의 발생 원인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이 허가를 받았다. 기존에 쓰이던 약물은 단기적 증상 완화는 가능했지만 장기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한계가 있었다. 커진 심장을 수술로 절제하는 방법도 있지만 환자들의 신체적, 심적 부담이 높아 선뜻 택하기 어려웠다. 신약의 등장으로 유럽과 미국에서도 HCM 치료 가이드라인을 수년 만에 업데이트하고 있다. 마땅한 치료제가 없던 HCM 영역에서 획기적 진보다. 이 신약은 혁신적인 과학기술 성과를 이룬 의약품에 수여되는 ‘프리 갈리앵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oHCM 신약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고가의 치료제를 비보험으로 처방받는 상황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돼 치료제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져야 숨어 있는 미진단 환자를 찾아 돌연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경제적 이유로 HCM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가 없길 바란다.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치료제 급여화#심장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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