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짜고짜 “나를 따르라”는 리더에게 우리는 왜 혹할까[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일 01시 40분


허세 리더십에 속는 이유
자기 과신 강하면 당당하고 뻔뻔… “난 리더감…” 능력보다 높은 지위로
적극성 앞세워 대중에 눈속임… 무능해도 과대포장해 실익 챙겨
“허세 부려 경쟁자 겁주려는 석기시대 생존본능에서 비롯”
선거철 같은 경쟁상황서 더 활개… “권력 치중 않는 능력자 뽑아야”

미어캣 무리는 먹이를 찾아 이동할 때 특이한 울음소리를 낸다. 이곳에는 더 이상 먹이가 없으니 다른 데로 가자는 신호다. 누군가 첫 신호를 보내고 난 뒤 두 마리 정도가 동의하는 신호를 보내면 이동이 시작된다. 울음소리를 당당하게 내기만 한다면 서열이 낮은 미어캣도 무리를 이끌고 달릴 수 있다. 쭈뼛거리며 “저쪽에 먹이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가보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것보다 자신 있게 “저기 확실히 먹이가 있다. 나를 따르라”고 하는 게 더 잘 통한다.

물론 두 유형 모두 광활한 사막에서 먹이가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할 것이다. “나를 따르라”고 한 미어캣을 따라갔다가 먹이 대신 자칼 같은 포식자를 만나도 그건 이 무리의 운명이다. 그런데도 미어캣들은 왠지 모를 확신에 차 있는 미어캣을 따른다.

남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서 미어캣을 연구한 스위스 취리히대 연구팀은 미어캣의 이런 습성이 인간과 닮았다고 봤다. 잘못된 주장을 하더라도 당당하게 행동하면 일단 믿고 보는 것은 인간이나 미어캣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에서다.

실제 가진 능력에 비해 눈에 띄게 ‘나대는’ 사람이 과분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이 연장선에서 설명할 수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당당한 태도로 나오면 ‘저 사람 뭔가 있나 봐’라며 깜빡 속아 넘어가기 쉽다. 그러나 무능하지만 근거 없는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찬 리더를 뽑으면 결국 피해는 모두의 몫이 된다. 이 리더들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그리고 우리는 왜 이들에게 혹하는 걸까. 때마침 선거철이다. 난무하는 각종 호언장담 속에서 ‘허세의 리더십’을 구별하는 데 적용해 보자.

● 리더에게 중요한 건 능력 아닌 기세?

리더십이나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학계에서는 개인의 이런 특성을 과신(overconfidence·過信) 성향이라 부른다. 자신을 과대평가한다는 의미에서 허세와도 비슷하다. 자기 과신은 긍정적 의미의 자신감과는 달리 야망, 사기, 허풍, 뻔뻔함과 더 연관이 있다.

자기 과신 성향이 큰 이들은 본인의 능력과 지식이 매우 뛰어나다고 믿고 자만하는 특성이 있다. 자기 확신에 차서 비현실적으로 높은 목표를 제시하거나 질 게 뻔한 경쟁에 뛰어들기도 한다. 이들이 기업을 경영하게 되면 잘못된 결정으로 회사에 손해를 입히기 쉽고, 국가 지도자가 되면 무리한 전쟁을 일으키는 등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그런데 여러 연구에 따르면 자기 과신 성향이 큰 이들은 능력에 비해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리더십으로 착각할 만한 특성을 갖고 있어서다. 이들은 뭔가 큰일을 해낼 것처럼 앞장서서 행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외향성, 주도성, 적극성도 두드러진다. 실력보다는 일종의 기세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실제 능력을 검증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능력자인 척하는 전략이 특히 잘 통한다. 캐머런 앤더슨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경영대학원 교수 연구팀은 자만심이 넘치지만 실제로 능력은 별로 없는 사람이 공동체에서 어떤 지위로 인식되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 140명을 모집해서 사회 문화 역사 지리 등에 박식한 사람이 풀 수 있는 문제로 이뤄진 시험을 치렀다. 각자 실제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런 다음 이들을 네 팀으로 나누고 서로 토론해서 정답을 맞히는 두 번째 시험을 진행했다. 시험이 끝난 뒤 팀원들의 문제 풀이 능력은 어느 정도인지, 누가 팀의 리더감인지 서로 평가해 보라고 했다.

그 결과 아는 척하며 말을 많이 한 이들에게 높은 점수가 돌아갔다. 개인 점수가 형편없는 경우라도 마찬가지였다. 더 놀라운 사실은 개인 점수를 모두에게 알려주고 나서도 평가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연구진이 실시한 또 다른 실험에서 이 모습을 모두 지켜본 제삼자에게 리더십 평가를 부탁했을 때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사람들은 실제론 무능하더라도 자신을 돋보이게 행동하는 사람을 리더라고 여겼다.

● 무능력 밝혀져도 첫인상 효과 지속
왜 능력도 없는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믿음을 보내는 걸까. 표면적 이유 가운데 하나는 처음 입력된 정보가 나중에 습득한 정보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초두(初頭) 효과(primacy effect) 때문이다. 첫인상 효과라고도 한다. 처음부터 누군가를 리더감으로 인식했다면 기대에 못 미치는 실력이 드러나도 판단을 잘 바꾸지 않는다.

또 아는 척하고 말을 많이 하는 것 자체가 능력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앞에 나서 사람들과 활발히 소통하는 모습을 리더의 자질로 본다는 것이다. 실상은 부족한 능력을 가리기 위한 화려한 퍼포먼스와 언변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능력을 포장하는 언변에 속는 일은 여러 방면에서 일어난다. 미국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2019년 발행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학술 연구비 지원 사업에서도 지원 신청서에 ‘있어 보이는’ 단어를 많이 넣은 연구진이 연구비를 많이 타간 것으로 나타났다. 고득점 신청서에는 ‘유전자’ ‘치료’ ‘박테리아’같이 연구 잠재력을 강조하는 포괄적 어휘가 자주 등장했다. 2008∼2017년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에 접수된 연구비 지원 신청서 6794건을 분석한 결과다.

반면 현실적이고 구체적 단어를 쓴 ‘정직한’ 신청서들이 지원 사업에 채택된 비율은 상당히 낮았다. 저득점 신청서를 분석해보니 ‘소화관’ ‘점막’ ‘t세포(t-cell)’같이 구체적이고 좁은 의미의 단어가 많이 쓰였다. 정작 연구 성과를 비교해 보면 둘의 차이가 크지 않거나 구체적 단어를 쓴 연구진의 업적이 더 뛰어난 경우가 많았다.

● 허세는 가성비 높은 생존본능
허세와 자기 과신은 생각보다 쏠쏠한 결과를 낳는 것처럼 보인다. 능력에 비해 경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여주니 말이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이런 특성이 오랜 생존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문명 발달 전 인류에게 필요한 리더는 경쟁 집단이나 짐승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줄 힘이 센 사람이었다. 실제로 잘 싸우지 못해도 으르렁거리고 센 척하는 허세가 통하는 경우도 있었을 터다. 경쟁자가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가면, 원래 실력으로는 얻지 못했을 식량 등을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센 척하다가 진짜 센 상대에게 큰코다치는 일도 있었겠지만 전반적으로 허세는 꽤 가성비 높은 생존 전략이었다.

물리적 위협이 사라진 지금도 석기시대 지도자감을 좋은 리더로 보는 경향이 뇌에 각인돼 있다고 진화심리학자들은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이를 리더십의 사바나 가설(savanna hypothesis)이라고 칭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굶느니 센 척하는 리더를 믿고 따랐다는 것이다.

2017년 과학 저널 네이처에 실린 ‘과신의 진화’라는 기고는 불확실하고 변수가 많은 상황에서 이 같은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요즘같이 여러 후보가 경쟁적으로 유세를 펼치는 선거철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대중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싶은 정치인들이 평소보다 더 센 척하며 능력을 과대 포장할 수 있다.

‘권력의 심리학’ 저자 브라이언 클라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국제정치학과 교수는 능력은 있지만 권력에 관심 없는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게 더 낫다고 주장한다. 클라스 교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정치에 입문해 공공을 위하여 일할 사람, 도덕적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을 영입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리더에게 진짜 중요한 건 허세나 기세가 아닌 능력이다. 리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보다 어떻게 보일지에 더 관심을 두게 되면 피해는 결국 대중의 몫이 되니 말이다.

#허세 리더십#자기 과신#기세#첫 인상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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