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태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강대강’ 대치가 지속되면 결국 국민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데 걱정이다.”
최근 필자에게 의료공백 사태를 심각하게 걱정하는 의료계 원로들과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며 필수의료를 지키는 의료인들이 한결같이 토로하는 말이다. 정부도 지금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인지하고 공중보건의(공보의) 및 군의관 투입, 간호사 역할 강화 등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다만 투입된 의사들의 진료과목이 천차만별인 데다 이들이 각 병원 시스템을 익히기도 쉽지 않다 보니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윤석열 대통령은 12일 종교계 지도자들과 오찬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의료개혁을 위해 힘을 모아 달라”고 요청했다. 또 수석비서관회의를 통해 “의료개혁을 원칙대로 신속하게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정부는 특정 질환을 집중적으로 진료하는 전문병원 109곳을 빅5 병원(서울아산, 서울대, 삼성서울, 세브란스, 서울성모병원)만큼 지원하고 병원 설립 시 전문의 고용을 늘리는 대책도 내놨다. 그런데 이런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려면 막대한 예산 투입이 불가피하다. 국민의 건강보험료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뜻이다.
한편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복귀를 위해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12일 중재안을 냈지만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는 강경모드를 풀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최근 열린 19개 의대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대학들이 사직서 제출 쪽으로 의견을 모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필수의료 및 응급 중증질환 환자들을 책임지고 자리를 지키던 의대 교수들이 현 상황을 ‘절망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 내부에서도 조금씩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위에서 ‘2000명’으로 딱 정해 버리고 물러서지 않으니 대화 창구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 고위 공무원은 “지금까지는 의료계가 잘 버티고 있는데 걱정”이라며 “앞으로 국민이 피부로 심각하다고 느끼면 그때야 의료계와 소통이 시작되는 시점일 것 같다”고 했다.
정부는 의료계의 약점들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 의사들에게 민감한 성분명 처방, 실손보험 제동 등을 통해 의사들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 나갈 거란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이를 두고선 강경 입장이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금까지 모순된 의료제도를 방치한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것을 의료계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양측 모두 명분에 집착하다 실리를 잃는 것은 아닌지 필자는 솔직히 두렵다. 정부의 강경 방침에 따른 의료공백과 의사들의 진료 포기는 국민건강에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국민을 앞에 두는 지혜가 쌍방에 필요하다. 말기 폐암으로 죽음을 앞둔 한국폐암환우회 이건주 회장이 “극한 대립으로 치료받을 권리, 생존권까지 위협받게 됐다”고 했던 절실한 호소문을 의정(醫政)은 다시 생각해주길 바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