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경북 경주에서 한 화가를 만났는데 75세의 나이에도 검고 풍성한 그의 모발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염색이나 이식을 했느냐”고 물으니 “그런 적 없고, 심지어 집안이 모두 대머리인데 나만 나이 들어도 모발이 검고 풍성하다”고 답했다. 더욱 눈에 띈 건 70대 중반이라기에는 너무 젊어 보이는 그의 얼굴이었다. 비결을 묻자 “젊은 날부터 무술을 시작하면서 호흡법을 배웠는데 1년 후부터 몸에 기력이 용솟음쳤다”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지만 노년의 나이치고는 너무 젊고 활력 넘치는 모습은 확실히 놀라웠다.
조선시대에는 호흡법 때문에 탄핵을 당한 이도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유명했던 홍의장군 곽재우가 그 장본인. 실록에 나온 탄핵의 내용은 이렇다.
“전 우윤 곽재우는 행실이 괴이하여 벽곡(辟穀·신선이 되는 수련 과정으로 곡식을 먹지 않고 초근목피만을 먹는 도가의 양생법)하고 밥을 먹지 않으면서 도인(導引·지금의 안마와 체조와 비슷한 도교의 수행법), 토납(吐納·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뱉는 도교의 기공호흡법)의 방술을 가르치고 설파하니(唱導), 그를 파직하고 다시 벼슬에 중용하지 말아 민심을 바로잡으소서.”
조선의 통치철학이었던 유가(儒家)의 논리로 볼 때 곽재우의 토납법은 도가(道家)의 호흡법인 까닭에 이단으로 비판받았던 것이다. 조선의 임금과 유림들은 도가는 건강과 자신만을 위해 공부에 정진하지만 유가는 자신을 수양하고 사회를 도덕으로 계도하므로 세상에 더 유익하다고 보았다.
동의보감은 허준의 단독 편찬이 아니라 양예수 김응탁 이명원 정예남 같은 의관들과 유의(儒醫)였던 정작이 공동으로 참여해 만든 조선의 최고 의서다. 특히 정작은 동의보감의 특징 중 하나인 정기신(精氣神) 이론을 확립한 핵심 기획자였다. 정작은 도교 내단수련법의 입문서 ‘용호비결(龍虎秘訣·북창비결)’을 지은 북창(北窓) 정렴의 동생으로, 그 또한 도교적 호흡법에 밝았다. 용호비결은 중국 동한 때 위백양이 지은 도교서인 ‘주역참동계’의 전통을 이었는데, 세 가지 중요 호흡법의 원리를 제시했다. 폐기(閉氣)는 기(氣)를 단전에 쌓아 모으는 것이고, 태식(胎息)은 배꼽 부위에 있는 단전으로 숨을 쉬는 방법이다. 주천화후(周天火候)는 단전의 양기로 데워진 기운을 온몸으로 운행하는 것을 말한다.
기를 다스려 건강을 도모하려 한 기록은 영조 3년의 실록에도 보인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던 영조는 건강법에 관심이 많았다. 영조는 신하들에게 자신의 증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화가 오를 때에는 머리가 아프고 눈에 무엇이 가린 것 같지만 화가 내려가면 평상시와 같아진다.”
이에 영의정 이광좌는 “신이 최규서의 말을 들으니, ‘어려서부터 기를 내리는 것으로 병을 다스리는 주요 방법을 삼고, 눈을 감고 정좌하여 배꼽에 생각을 집중하거나 혹은 용천혈에 생각을 집중하면 시간이 흐른 뒤에 기가 또한 따라서 내려간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고 진언하자 영조는 “나도 몇 번 해봤다”고 답을 했다.
무릇 호흡은 풀무질과 비슷하다고 했다. 풀무를 짧게 당겼다 짧게 밀면 불길이 작게 일어나고, 길게 당겼다 길게 밀어내면 불길은 높이 올라간다. 호흡도 길게 들이켰다 길게 내쉬면 불길처럼 에너지 대사의 효율이 높아진다. 단전에 기를 모으고 배로 호흡하는 복식 호흡이 권장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호흡을 길게 하려면 마음이 느긋해야 한다. 거꾸로 복식호흡을 잘하면 마음이 진정된다. 그로 인한 건강 증진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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