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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 지구상에 단 한 명도 내 편이 없어!”
최근 방영을 시작한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의 남자 주인공 김수현(백현우 역)은 친구 앞에서 맥주를 마시다 울음을 터트린다. 아내와 이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해서다. 그는 애초에 아내와 만난 것부터가 잘못이라며 “내 팔자를 내가 꼬았다”고 신세 한탄을 한다.
성인 남성이 다른 사람 앞에서 소리 내어 엉엉 우는 모습은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선 좀처럼 보기 힘들다. 눈물 많은 남자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남들 앞에서 울기보단 죽기 살기로 이겨내겠다고 다짐하는 편이 더 익숙하다. 비교적 눈물에 관대한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면 나약하고 감정적인 사람으로 보일까 걱정한다.
그런데 지난 기사(“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오히려 울어야 행복해진다?)에서 살펴봤듯 눈물을 참고 사는 건 몸과 마음에 모두 해롭다. 잘 웃고 긍정적인 태도로 생활하는 것 못지않게 눈물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을 배출해내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 어금니 꽉 깨물고 아무렇지 않은 척 포커페이스로 사는 건 결과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인은 얼마나 울고 살까?
가장 최근 눈물을 흘린 적은 언제인가.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운 것이더라도 상관없다. 며칠, 몇 주, 몇 달 전? 아니면 몇 년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면 문제가 있다. 특히 남성 중에는 언제 마지막으로 울었는지 기억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남녀를 막론하고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한국은 상대적으로 덜 우는 나라다. 나라별로 얼마나 우는지 비교가 가능할까 싶지만, 놀랍게도 국가별 눈물 경향성을 분석한 연구가 있다. 네덜란드 연구진은 37개국을 대상으로 ‘성인 울음에 관한 국제 연구(International Study on Adult Crying·ISAC)’를 진행했다. 전 세계에서 모집된 실험참가자 5715명 가운데 한국인은 415명이 포함됐다.
연구진은 실험참가자들에게 언제, 어떻게, 어떤 상황에서 울었는지 일정 기간 눈물 일기를 쓰게 했다. 이를 바탕으로 얼마나 잘 우는지 나타내는 국가별 ‘눈물 경향’을 수치로 나타냈다. 10점 만점으로 점수가 클수록 잘 우는 것이다. 또 국가별 특징을 비교하기 위해 국내총생산(GDP), 인구밀도, 정치 상황, 종교, 정신질환 발병률, 행복 지수, 성격검사 결과 등을 총체적으로 살펴봤다.
○ ‘잘 우는’ 나라 순위
1. 브라질 2. 스웨덴 3. 이탈리아 4. 독일 … 19. 한국, 이스라엘, 가나 … 29. 중국 … 35. 나이지리아 36. 일본 37. 말레이시아
자료: 성인 울음에 관한 국제 연구(International Study on Adult Crying·ISAC) 자료를 가공하여 순위 산출.
한국의 남녀 눈물 경향 평균 점수는 4.54점이었다. 평균 점수를 기준으로 37개국을 차례로 나열하면, 19번째에 해당한다. 가나, 이스라엘과 점으로 공동 순위다. 1위는 브라질이었고, 그 뒤를 스웨덴, 이탈리아, 독일 등이 이었다.
● 정치-문화 자유로운 국가에서 더 많이 울어
언뜻 생각하기에 “슬픔과 고통이 큰 환경에서 더 많이 우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잘 우는 순위 상위권에 오르는 것은 불명예로 보인다. 사실 이 연구를 진행한 연구진조차도 자료를 분석하기 전까지는 이렇게 생각했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정치적으로 억압당하고, 우울증을 많이 앓는 나라에서 울 일이 더 많을 거라고 본 것이다. ‘눈물=고통’이라는 전제에서다.
하지만 결과를 분석해보니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살기 힘든 나라에서 더 많이 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생활 환경이 꽤 괜찮은 나라에서 더 많이 우는 경향이 나타났다. 왜일까?
구체적으로 보면 정치적 민주화 정도가 높을수록, 경제적으로 부유할수록, 개인주의 성향이 강할수록 더 많이 우는 경향이 있었다. 연구진은 민주주의가 발달한 국가에서 개인이 덜 억압받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또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국가에서 더 많이 우는 것으로 나타난 이유는 각자의 자유로운 감정 표현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 있기 때문으로 봤다.
또 개인의 성격 특성으로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사교성이 높게 나타난 나라일수록 더 많이 울었다. 감정을 참으며 삭이지 않고 밖으로 분출해낸다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잘 표현하고, 사회적으로 수용 받으며 살기에 이들이 응답한 주관적 행복 지수도 높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눈물=고통’이 아니라, ‘눈물=표현의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즉, 자기를 표현하는 것에 대해 사회적 거부감을 덜 느껴야 잘 울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연구진은 인구밀도가 높고, 문화적으로 동질적인 구성원으로 구성된 단일 문화에서는 자유롭게 울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서로의 행동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보일지 걱정돼 감정 표현에 제한을 느끼기 때문이다. 성 고정관념이 강해 남성의 감정 표현을 제약받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상당 부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중국(29위)과 일본(36위)은 한국보다 순위가 훨씬 떨어졌다. 무엇이 다른 걸까.
중국은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해 표현의 자유를 크게 제약받는 사회 분위기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연구진은 정치적 자유 항목에서 영장 없는 수색 금지, 사법부의 독립성, 무죄 추정의 원칙 적용, 사상 교육의 자유 등을 통합적으로 살펴봤다. 그 결과 중국은 조사 대상국 가운데 시민권 항목에서 최저점을 기록했다.
일본은 민주주의 점수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이는 정치적 환경보다는 강한 남성상을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조사 대상국 가운데 남성성을 중시하는 항목에서 최고점을 기록했다. 이에 더해 친절을 강조하고, 감정 절제를 미덕으로 여기는 전통적 분위기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 우는 남자의 설 곳을 마련하라
그런데 많이 우는 국가조차도 여성과 남성의 눈물 지수 차이가 꽤 컸다. 가장 많이 우는 국가로 조사된 브라질에서조차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이, 자주 울었다. 이런 현상은 37개국에서 빠짐없이 나타났다.
이는 감정을 억압하는 강한 남성을 강조하는 ‘해로운 남성성(toxic masculinity)’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강한 남자는 울지 않는다’는 신념은 자신도 울지 못하게 막을 뿐 아니라, 다른 남자가 우는 것도 탐탁지 않게 여긴다.
네덜란드 흐로닝언대 연구진은 우는 사람의 성별에 따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드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여성 참가자들은 우는 사람의 성별과 관계없이 돕고 싶다고 답한 수치가 비슷하게 높았다. 그런데 남성 참가자들은 우는 여성은 돕겠다고 답했지만, 우는 남성은 돕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직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남녀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는데, 사람들은 직장에서 우는 남성은 같은 상황에서 우는 여성보다 더 무능하고, 감정적이고, (감정을 주체 못 한)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답했다.
물론 공적인 장소인 직장에서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는 남자를 돕기도 싫어하고, 더 무능하다고 여기는 가혹한 시선이 직장이 아닌 어떤 곳에서도 울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닐까. 남성이 울고 나서 기분이 나아지는 효과가 여성보다 덜하다는 여러 연구 결과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울고 나서 뒤늦게 창피함과 민망함을 크게 느끼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린 뒤 느끼는 후련함보다 뒷감당해야 할 것들이 더 많은 셈이다.
앞서 소개한 모든 연구 결과는 우는 사람을 주변에서 잘 수용해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준다. 우는 사람을 보고 “징징댄다” “질질 짠다”고 비하하는 시선이 더 강하다면, 이것이 곧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사회가 아닐까.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다. 눈물도 웃음만큼이나 당위적인 여러 감정 표현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기억하자. 울면 나약해질지 모른다는 이유로 감정을 억압하는데 심리적 에너지를 소모하기보다, 시원하게 울고 나서 부정적 감정을 털어버린 뒤 해야 할 일을 해나가는 것이 나에게도 더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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