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학교 시절엔 운동을 피했다. 5살 때 들판에서 뛰어놀다 오른쪽 팔꿈치를 크게 다치는 바람에 왼팔로만 살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두 차례나 수술을 받았지만 미비한 의료 시술로 인해 더 이상 오른팔이 성장하지 않았다. 왼팔에 비해 3분의2 밖에 안 됐다. 이 때문에 학창시절 초기엔 스포츠와는 담을 쌓고 지냈다.
목이균 도요코퍼레이션 회장(74)은 이런 핸디캡을 극복하고 올해로 51년째 테니스를 치며 건강한 노년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가 스포츠마니아로 변신한 때는 고교 1학년 때다. “대전고에 들어갔는데 유도를 주 2시간 무조건 배워야 했어요. 당시 사범님께 ‘전 팔이 이래서 못하겠습니다’ 했더니 ‘일본에서는 다리 하나 없는 사람도 목발 짚고 유도해서 검정 띠를 땄다’며 시켰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 보니 되더라고요. 고교 진학 체력장 20점 만점에 12점밖에 못 받았던 제가 결국 검정 띠를 땄습니다.”
목 회장이 스포츠에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 그는 “유도를 하면서 하체 근력이 발달하자 다른 스포츠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그때부터 다양한 스포츠에 관심을 가졌고 파고들었다. 유도 이후 가장 먼저 시작한 게 탁구다. 그는 “우리 땐 19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 우승한 이에리사, 정현숙 때문에 탁구에 빠져 지냈다”고 설명했다.
“저는 유도를 배운 뒤 사실상 스포츠맨이라고 생각하고 평생을 살아왔어요. 운동 그 자체의 즐거움도 있지만 건강한 신체가 주는 자부심이 저를 성장시켰습니다. 사회생활에서도 항상 자신감을 가지고 살았죠.”
고교 시절 또 다른 특별한 경험이 목 회장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했다. “당시 우리 집에서 하숙하던 분이 있었죠. 경기고에 서울대 공대를 나온 분이었는데 검도도 검정 띠였죠. 머리도 좋은데 운동도 잘했어요. 바둑도 잘 뒀고. 그분을 보고 저도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자는 의미로 ‘운동량(運動量)을 최대(最大)로’라는 문구를 써 책상 앞에 붙였습니다.”
운동량을 최대로는 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카카오톡에도 새겨져 있다. 그만큼 모든 운동을 열심히 했고 다른 모든 것에도 최선을 다했다. 목 회장은 고려대 입학해 2학년까지 유도부로 활동했다. 대학 시절은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 탁구와 테니스, 배드민턴, 골프까지 즐겼다. 운동 감각이 뛰어나 입문한 스포츠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냈다. 테니스의 경우 대회에 자주 출전하지는 않았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각종 아마추어 테니스대회에서 우승했다.
목 회장은 1974년부터 테니스를 쳤다. 고교 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탁구를 즐기고 있었는데 대학 친구가 테니스를 친다고 자랑하기에 함께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당시 테니스도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고려대 상대 동기가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있었는데 연구원 코트에서 테니스를 친다고 자랑을 했다. 그래서 KIST로 달려가 배우면서 치게 됐다”고 회상했다.
탁구와 테니스는 완전 달랐다. 가벼운 탁구채 생각하듯 테니스 라켓을 휘두르니 잘 맞지 않았다. 뛰는 거리도 훨씬 많았다. 그는 “탁구는 잔 근육을 잘 써야 한다면 테니스는 큰 근육을 잘 써야 했다. 탁구대보다 훨씬 큰 테니스 코트에서 다양한 기술로 상대를 제압하는 재미가 쏠쏠했다”고 했다. 그는 새벽에 테니스 치고 출근했고, 퇴근한 뒤 또 쳤다. 하루 2~3시간 쳤다. 테니스 교본 하나 들고 독학으로 배우면서 배웠다. “한마디로 테니스에 미쳐 살았다”고 했다.
“저는 오른팔을 다쳤기 때문에 모든 것을 왼팔로 해야 했습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하는 개인 레슨도 없었죠. 한 팔만 써야 하니까 저 만의 노하우가 필요해 연구하면서 쳤습니다.”
그는 육체적 장애보단 정신적 장애가 더 문제라는 얘기를 자주 하면서 살아왔다. “육체적 장애보다 정신적 장애를 극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특히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개척하려고 하는 정신력과 의지가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최대 지름길입니다.”
1989년 골프를 시작하면서는 테니스를 가끔 쳤다. 증권 및 투자 회사를 다녔고, 웅진루카스투자자문 대표이사 사장까지 했던 그로선 사업상 필드에서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골프를 잘 치려면 테니스를 줄여야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인들과 테니스도 치면서 골프를 즐겼다. 그의 골프 베스트스코어는 이븐파. 요즘엔 다시 테니스에 집중하느라 골프를 가끔 쳐 스코어가 들쭉날쭉 하지만 맘먹으면 80대 초반 스코어도 칠 수 있다고 한다.
한땐 배드민턴에도 빠졌었다. 하지만 네트 앞으로 떨어지는 셔틀콕을 잡기 위해 무리하다 무릎이 상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배드민턴은 잘 치지 않는다.
목 회장은 지나친 승부욕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을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했다. “제가 핸디캡이 있어서인지 너무 승부욕이 강했어요.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이기려는 마음이 강했는데 저한테 진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난 핸디캡이 있어도 너희들에게 지지 않아’라는 생각에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죠. 친구들이 ‘너는 승부욕이 너무 강해’라고 늘 말했는데…. 뒤늦게 그것을 깨달았죠. 거의 예순이 다 돼서. 그때부터는 모든 스포츠를 즐기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목 회장은 자신의 호 ‘아천(雅泉·맑은샘)’을 건 테니스대회도 만들었다. 올해로 16회째를 맞는 아천배시니어테니스대회다. 테니스 치며 희로애락을 경험한 그가 자신의 분신과 같은 테니스의 즐거움을 다른 동호인들과 나누고자 대회를 만들었다. 그는 “바둑에 ‘부득탐승(不得貪勝)’이라는 말처럼 이기는 것에 욕심을 내지 말고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갖고, 기쁜 마음으로 즐겼다 갈 수 있는 대회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김문일 한국시니어테니스연맹 명예회장이 어느 통계를 보고 테니스가 모든 운동 중에 가장 장수하는 스포츠라고 하더군요. 그럴 것 같아요. 운동도 되고 함께 치는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고…. 평생스포츠로는 최고입니다.”
덴마크와 미국 연구팀이 8577명을 대상으로 1991년부터 2017년까지 25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테니스가 장수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기간 중에 4448명이 사망했다. 연령과 성별, 흡연의 영향 등 보정을 해도 운동을 하는 사람은 모두 평균 여명이 길었다. 테니스가 9.9년으로 가장 길었고, 2위가 배드민턴으로 6.2년이었다. 축구는 4.7년으로 3위.
왜 테니스를 하는 사람이 장수 하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운동과 함께 사회적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테니스는 혼자서 못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수명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조사 결과에서도 테니스 등 라켓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의 사망 리스크가 낮았다.
한국시니어테니스연맹 고문인 목 회장은 연맹 정기 모임, 그리고 화요일 목요일 테니스 치는 ‘화목회’ ‘아파트 조기회’ 등에 나가서 테니스를 치고 있다. 가족들하고도 친다. 그는 테니스를 치며 건강의 중요성을 체감한 뒤 1990년대 가족들도 테니스에 입문시켰다. 특히 프로바둑기사인 아들 목진석 씨(44)와도 자주 테니스를 즐긴다.
그는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테니스로 하루를 시작한다. 4년 전부터 살고 있는 경기 남양주시 아파트 단지내 테니스 코트에서 주민들과 테니스를 친다. 비가 오면 탁구장으로 간다. 그는 “요즘 아내하고 치는 탁구도 즐겁다”고 했다. 테니스로 단련된 탄탄한 체력 덕택에 지금도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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