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 끝 76세로 세상 떠나
NFL 스타-영화배우로 승승장구
차량 도주 생중계-피묻은 장갑에도
인종차별 이슈화로 형사 무죄 받아
당대 최고의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선수이자 영화배우로 화려하게 살았으나 전 부인 살해 혐의로 기소돼 무죄를 받는 과정에서 미국 사회에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던 O J 심프슨이 10일(현지 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76세.
심프슨 측 유가족은 11일 소셜미디어에 “아버지는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심프슨은 약 2개월 전에 전립샘암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947년 샌프란시스코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구루병으로 다섯 살 때까지 다리에 보조기를 착용하는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역 갱단과 어울리던 비행청소년이었으나 탁월한 달리기 재능이 눈에 띄며 미식축구에 입문해 삶의 전기를 맞았다. 뉴욕타임스(NYT)는 “NFL 각종 기록을 세우며 미식축구를 전국구 인기 종목으로 이끈 슈퍼스타”라고 평했다. 1985년 NFL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됐다.
역경을 이겨낸(rags-to-riches) 흑인 스포츠 스타는 할리우드에서도 사랑받았다. 주요 방송사 스포츠캐스터로 활동하고 영화 ‘총알 탄 사나이’(1990년) 등에 출연하며 승승장구했다. 차분한 훈남 이미지로 인기를 끌며 당시 흑인에겐 좁은 문이었던 대기업 광고도 여럿 찍었다.
하지만 1994년 벌어진 사건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심프슨은 고교 시절 여자친구와 첫 결혼에 실패하고 1985년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18세 웨이트리스 니콜과 재혼했다. 하지만 1992년 배우자 학대 등으로 이혼한 뒤, 1994년 6월 13일 니콜과 그의 애인이 심프슨 자택 인근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용의자로 지목된 심프슨이 친구의 차에 타고 도주극을 벌이던 모습이 TV로 생중계되며 미국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심프슨은 이후 ‘세기의 재판’으로 또 한번 미국을 흔들어 놓았다. 피 묻은 장갑 등 여러 증거가 그를 향했지만, ‘드림 팀’이라 불린 초호화 변호인단은 미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인 인종차별을 무기로 무죄를 주장했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의 여진이 남아 있던 상황은 이를 더욱 부채질했다. 심프슨은 결국 경찰의 인종차별적 발언과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심프슨 재판은 미 형사 사법체계에 대한 논란도 불러일으켰다. 당시 배심원단 12명 가운데 흑인이 9명인 점도 심프슨에겐 유리하게 작용했다. NYT는 “정황은 물론 과학적 증거도 충분했지만 배심원들은 감정에 휩쓸려 무죄 평결을 내렸다”고 했다. 이후 민사재판에선 심프슨이 유족들에게 배상금 3350만 달러를 지급하도록 하는 모순적인 판결도 나왔다.
심프슨은 이후 무장강도·납치 사건에도 가담해 33년 형을 받기도 했으나, 9년만 복역한 뒤 2017년 가석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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