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전이에 재발… 4회 수술 모두 이겨낸 비결은?[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10일 13시 00분


태경 한양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구강암 김희상 씨
신장암 포함하면 암 수술만 4회 치러
“의사 친구 절대적으로 믿고 치료 임해”

언젠가부터 잇몸이 붓기 시작했다. 흔한 잇몸 염증이려니 생각했기에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염증약을 먹는 것으로 사실상 치료를 끝냈다.

태경 한양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왼쪽)와 김희상 씨는 고교 동창 사이다. 태 교수는 다른 병원에서 구강암 진단과 수술 불가 판정을 받은 김 씨의 수술을 집도해 암을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김 씨는 “친구 태 교수를 믿고 치료에 임한 게 완치 비결같다”라고 말했다. 한양대병원 제공
태경 한양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왼쪽)와 김희상 씨는 고교 동창 사이다. 태 교수는 다른 병원에서 구강암 진단과 수술 불가 판정을 받은 김 씨의 수술을 집도해 암을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김 씨는 “친구 태 교수를 믿고 치료에 임한 게 완치 비결같다”라고 말했다. 한양대병원 제공
예상과 달리 잇몸 염증은 날이 갈수록 악화했다. 동네 치과에 갔다. 의사의 표정이 심상찮았다. 의사는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그제야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대형 치과 병원에서 조직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입안에 피부암의 일종인 악성 흑색종이 생겼다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그러니까 2017년 7월의 이야기다. 당시 50대 후반이었던 김희상 씨(65)의 구강암 투병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암 극복했는데 다시 암이…
사실 김 씨가 암 판정을 받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2010년 아버지 산소에 갔을 때였다. 소변이 마려워 급히 볼일을 봤는데, 쌀알만큼 피가 섞여 나왔다. 다음날 동네 병원으로 달려가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신장암이라고 했다. 당시 김 씨보다 먼저 그 소식을 들은 아내는 펑펑 울었더랬다.

김 씨도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래도 절망하지는 않았다. 암 덩어리가 커서 신장암의 병기가 3기에 가까웠지만, 다행히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수술만 잘 끝내면 괜찮을 것 같다는 의사의 설명이 큰 위로가 됐다.

곧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암이 있는 왼쪽 신장을 통째로 절제했다. 수술 결과는 좋았다. 암세포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항암치료도 받지 않았다. 그 후로도 경과는 무척 좋았다. 그렇게 5년이 흘렀고, 2015년 김 씨는 신장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암에서 해방된 즐거움을 만끽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 후, 김 씨는 두 번째 암 진단을 받았다. 바로 구강암. 김 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는 “이 암은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아내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말을 잇지 못하는 아내의 모습이 기억난다”라고 말했다.

김 씨가 충격을 받은 이유가 있다. 일단 병기가 4기였다.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됐기에 생존율이 낮다는 뜻이다. 실제로 입안 상태는 처참했다. 잇몸과 입 천장에 암 덩어리가 붙어 있었고, 잇몸뼈는 위쪽 전체가 거의 파괴돼 있었다. 게다가 암세포는 이미 림프절로 전이된 상황. 대형 병원 의사조차도 “암이 너무 진행돼 수술은 어려우니 항암치료부터 시도해 보자”라고 할 정도였다.

당시 의사가 제시한 것은 면역 항암치료였다.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치료비만 약 1억 5000만 원이 든다고 했다. 그러고도 완치 확률은 20% 미만. 김 씨는 당시 운영하던 회사가 쓰러지는 바람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면역 항암치료는 꿈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김 씨는 “솔직히 당시에는 구강암 진단을 사실상의 ‘사형 선고’로 받아들였다”라고 말했다.

태경 한양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태경 한양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친구 믿고 수술대 올랐다
김 씨가 암에 걸린 소식은 얼마 후 고등학교 동문들에게 퍼져나갔다. 고교 친구들이 안부를 물어왔다. 안타까워하는 친구들에게 김 씨는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담담히 말했다.

어느 날 친구 한 명이 그를 찾아왔다. 그는 “우리 동창 중에 태경 한양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가 있다. 그 친구가 잘한다니까 가 보자”라며 김 씨를 설득했다. 김 씨는 “친구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다. 친구가 그를 강제로 끌다시피 해서 태 교수에게 데리고 갔다.

태 교수는 김 씨를 보자마자 바로 검사부터 진행했다. 태 교수는 “만약 목 밑까지 암이 전이됐다면 이비인후과 진료 영역을 넘어서기 때문에 내가 수술할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수술에 도전해 보자”라고 말했다.

구강암 진단을 받고, 2개월이 흐른 뒤였다. 그동안 구강암은 7㎝ 크기까지 자라 있었다. 림프절로 전이된 사실을 재차 확인했다. 다행인 점은, 폐나 다른 장기로까지 전이되지는 않았다는 것. 태 교수는 수술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태 교수는 “악성 흑색종은 수술이 최고의 치료법이다. 다만 친구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수술이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김 씨는 누가 집도하냐고 물었다. 태 교수는 자신이 직접 집도할 것이라 했다. 김 씨는 “그렇다면 믿고 수술대에 오르겠다”라고 했다.

고난도 수술이 시작됐다. 태 교수가 먼저 구강암을 제거하는 수술에 돌입했다. 코의 옆선을 따라 인중 부위까지 10㎝를 절개했다. 혹시 남아있을지 모르는 암세포를 없애기 위해 안쪽의 뼈와 입 천장은 모두 들어냈다. 이어 성형외과 의료진이 텅 비어버린 입안을 채우기 위한 2차 수술을 시작했다. 의료진은 김 씨의 허벅지에서 살을 떼어내 입안에 이식했다. 이 모든 수술에 꼬박 12시간이 소요됐다.

수술이 끝난 후 조직 검사를 진행했다. 미세한 암세포도 보이지 않았다. 태 교수는 “그 순간 수술의 성공과 완치를 확신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후 김 씨는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받지 않았다.

김희상 씨
김희상 씨


●10년 만에 재발한 신장암
의학적으로 수술 후 5년이 지나도 암이 발견되지 않으면 ‘완치’로 규정한다. 이에 따라 김 씨는 2015년 신장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같은 방식으로 2022년이 되면 구강암도 완치 판정을 받게 된다.

정말로 그렇게 될 것 같았다. 수술은 잘 됐고, 3개월 혹은 6개월마다 추적 검사를 했는데 암세포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당연히 2년만 더 있으면 완치 판정을 받을 거라 여겼다.

현실은 기대와 다르게 흘러갔다. 2020년, 폐에서 암이 발생했다. 태 교수와 김 씨 모두 가슴이 철렁거렸다. 구강암이 폐로 전이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태 교수는 “구강암이 원래 폐로 전이가 잘 된다. 특히 악성 흑색종은 재발하는 일도 잦다. 이런 상황이라면 생존율은 30%가 안 된다”라고 말했다.

조직 검사를 해 보니 예상외의 결과가 나왔다. 10년 전 발병했고, 이미 완치 판정을 받았던 신장암과 조직이 같았던 것. 신장암이 10년 만에 폐로 전이됐다는 뜻이다. 김 씨는 다시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한양대 병원 흉부외과 의료진이 폐 일부를 절제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2년 후인 2022년 12월, 제거했던 신장 부위에 암이 재발했다. 김 씨는 다시 수술대에 올라 해당 부위에 있는 림프절을 제거하는, 네 번째 암 수술을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구강암은 재발하거나 전이되지 않았다. 덕분에 신장암이 재발하기 얼마 전, 김 씨는 구강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신장암은 지금까지도 김 씨를 괴롭히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멀쩡했던 오른쪽 신장에서 암이 발견됐다. 신장암이 재발한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수술까지 가지는 않았다. 김 씨를 진료하고 있는 박성열 한양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면역항암 효과가 잘 유지되고 있어 추적 검사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궁금한 대목이 있다. 10년이 훨씬 지났는데 암이 재발하는 경우가 많을까.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신장암에서는 10~20년 후에도 재발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다만 대부분 김 씨처럼 무증상이기 때문에 매년 추적 검사만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신장암에 걸린 상태이긴 하지만 관리만 잘 하면 수술이나 다른 치료 없이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김 씨는 매년 1회 정도 병원에 와서 추적 검사를 하고 있다. 현재 암세포는 쌀알 크기보다 작은데,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김희상 씨의 재발 신장암 수술을 담당한 박성열 한양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신장암은 10년이 지나도 재발이 잦은 병이지만 무증상이 많다”라고 말했다. 한양대병원 제공
김희상 씨의 재발 신장암 수술을 담당한 박성열 한양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신장암은 10년이 지나도 재발이 잦은 병이지만 무증상이 많다”라고 말했다. 한양대병원 제공


●“긍정적 자세로 의사와 소통하라”
몇 번의 위기를 넘겼지만 김 씨는 되레 여유로워졌다. 10년 만에 신장암이 전이되고 재발했는데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김 씨는 “짓궂은 친구 하나가 다시 찾아온 거라 생각하기로 했었다. 위기의식을 느끼거나 그러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오랜시간 병마와 싸우면서 오히려 여유를 찾은 것이다. 김 씨는 “수술 세 번을 무난히 견뎌냈고, 네 번째 면역 항암치료도 잘 이겨내고 있는데 무엇이든 못할까, 그런 생각을 했다. 게다가 든든한 의사 친구도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라며 웃었다. 암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고, 의사 말을 충실히 따르면서 치료에 전념하는 것만으로 이미 최선을 다했다는 것. 다음은 하늘의 뜻이란다.

태 교수는 “이 친구는 사람들과도 잘 사귀고 매사에 긍정적이다”라며 “이런 긍정적인 자세가 암 극복에 큰 도움이 됐다”라고 평가했다. 태 교수는 “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환자의 긍정적인 마음이다. 긍정적인 환자가 의사와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치료가 그만큼 더 수월해진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김 씨는 “내 주치의가 고교 동창이라 그런지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또 비뇨의학과 진료를 받을 때도 그러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의사의 말을 듣지 않고 이상한 약물이나 음식을 먹는 경우가 주변에 더러 있는데, 쓸데없을 뿐 아니라 시간도 버리고 몸도 악화시킬 거라 생각한다. 그런 것을 철저히 배격했다.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여러 번의 암 수술과 치료를 받으면서 김 씨도 많이 달라졌다. 이미 말한 대로 훨씬 여유로워졌다. 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 그전에는 사업이 잘 안 풀리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화를 많이 냈었다. 지금은 거의 화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남을 더 배려한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듣는다.

건강 관리에도 신경을 쓴다. 매일 만 보 이상 걷는다. 물론 암에 걸리기 전에는 운동과 담을 쌓았었다. 이제는 운동하지 않고서는 맘이 불편해진단다. 또한 매사에 조심하는 습관이 생겼다. 매일 술을 마시던 사람이 거의 술을 입에 대지도 않는다. 김 씨는 “이러니 오히려 더 건강해지는 것 같다”라며 웃었다.

<김희상 씨의 신장암-구강암 투병기>
2010년 신장암 발견, 왼쪽 신장 절제
2015년 5년 경과에 따라 신장암 완치 팥정
2017년 7월 구강암(악성 흑색종) 진단
2017년 9월 구강암 제거 및 구강 재건 수술(12시간)
2020년 2월 신장암 폐 전이 발견, 폐 일부 절제술 시행
2022년 9월 5년 경과에 따라 구강암 완치 판정
2022년 12월 왼쪽 신장 부위 암 재발, 림프절 제거
2023년 7월 오른쪽 신장암 재발 확인.
다만 크기가 작고 안정돼 있어 추적검사만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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