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란 케이벨로(K-velo) 대표(54)는 산후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고, 산악자전거(MTB) 국가대표까지 지낸 뒤 지금은 자전거 문화 콘텐츠 사업을 하고 있다.
“아이를 낳고 우울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체중이 급격히 늘고 힘도 없었죠. 걷는 것조차 힘들어 1km 거리도 차를 타고 다녔어요.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는데 검진받아도 뚜렷한 병명이 나오지 않았죠. 한의사가 수영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 보라고 권했죠. 제가 수영 강사 자격증이 있었지만 애를 키우고 있어 자전거를 택했어요. 실내수영장엔 소독약을 많이 뿌리는데 샤워해도 젖먹이에게 안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수영을 피했죠.”
1995년이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많이 했지만 자전거 타기는 쉽지 않았다. 운동장에서 배운 뒤 탈 만하다고 생각해 길거리로 나왔더니 사람은 물론이고 차와 전봇대에 부딪힐까 무서웠다. 그래서 사람들이 없는 산자락으로 갔다. 익숙해지다 보니 산도 올랐다. 자연스럽게 몸이 건강해졌고 우울증도 사라졌다. 그는 “건강을 회복하면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건강이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고 했다. 동아대 체육대 경기지도학과를 졸업한 이 대표는 사실 건강엔 자신이 있었다.
“전 어릴 때 유난히 몸이 약했어요. 초등학교 2학년까지 운동장에 나가 뛰어놀지도 못했죠. 건강한 사람이 부러웠어요.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땐 육상부, 중학교 땐 배구부, 고등학교 땐 카누부에 들어가 운동을 했고 체육대학까지 갔죠. 결혼하고 아기를 낳기 전까지 건강했어요.”
이 대표는 자전거에 큰 매력을 느꼈다. 틈만 나면 탔다. 자전거는 특히 무릎 등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도 코어 근육 운동은 물론 유산소 운동까지 됐다. 자전거를 타며 체중을 30kg 이상 줄였다. 그는 “자전거는 내게 건강과 행복을 줬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의미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잘 배우면 남녀노소가 평생 즐길 수 있는 스포츠다. 이 좋은 자전거를 널리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늦은 나이에 MTB 선수가 됐다. MTB로 산을 타면서 대회에 출전했고 두각을 나타내면서 선수로 자전거를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MTB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뒤엔 자전거 교육에 매진했다. 이 대표는 대학 졸업 후 터를 잡은 울산에 자전거 교실을 만들었다. 그는 “자전거는 위험해 제대로 배워야 하는데 가르쳐 주는 곳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안전하게 타는 법에 초점을 뒀다. 이 대표는 “빨리 달리는 것보다 안전하게 잘 서는 게 더 중요하다. 제일 먼저 균형을 잡고 브레이크 잡는 법을 가르친다”고 했다.
2008년 서울로 올라온 이 대표는 자전거 교육 강사로 활동하다 2010년부터 LS네트웍스 바이클로 서울 송파점장으로 일했다. 자전거를 판매하면서 회사 도움으로 바이클로아카데미를 만들어 원장도 맡았다. 2016년엔 자전거 문화와 여행 콘텐츠를 개발해 운영하는 케이벨로를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4대강 주변에 자전거길이 생겼고 지방자치단체들도 자전거길을 만들어 전국 어느 곳이든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시대가 됐어요. 자전거 인구는 늘어날 것이고 그럼 올바른 자전거 문화와 다양한 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하루 당일치기, 1박 2일 등 국내 여행도 가능해졌어요. 해외로 나가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시대도 됐죠.”
이 대표는 행정안전부가 전국 자전거길을 만들 때 자문위원을 했다.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전국의 아름다운 자전거 여행길 30선도 만들었다. 그는 “직접 가서 타보고 그 지역 관광지, 휴식처, 음식점 등을 소개했다”고 했다. 공모를 통해 전국 130여 개의 자전거길을 다양하게 평가해 엄선했다. 조만간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업그레이드된 아름다운 자전거 여행길 60선도 선보일 예정이다.
사업으로 바쁜 중에도 자전거를 타며 건강을 지키고 있는 그는 “자전거를 일찍 배워두면 80, 90대에도 탈 수 있다. 그럼 활동 반경이 넓어져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건강한 노년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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