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인생 2막]76세 현역 직업상담사 김현 씨
퇴직후 ‘직업’ 화두로 제2의 인생
61세에 직업상담사 국가자격증 취득… 76세에도 강의와 봉사활동에 열심
나이 차별 없는 공모전 도전에 재미… “신중년, 경력 살린 직업훈련교사 강추”
1948년생 김 현 씨는 현직 ‘직업상담사’다. 어딘가에 메인 몸이 아니니 ‘프리랜서’라는 설명을 붙여야겠다. 자유롭고 퇴직 걱정 없는 대신 늘 일거리가 있는 건 아니란 얘기다. 그는 어떻게 현역 생활을 유지하고 있을까. 8일 서울 종로구 다가치포럼 사회적협동조합 사무실에서 만나봤다. 다가치포럼은 시니어들의 재능기부를 위한 비영리단체로 그는 이사를 맡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일자리창출 민간단체인 ‘사회공헌잡정보연구소’의 대표이기도 하다.
● 봉사활동 속에서 아이디어 찾기
그의 루틴은 요일별로 다르다. 월요일에는 임원 정기모임이 있는 다가치포럼 사무실에 나간다. 요즘 주제는 자립준비 중인 청년들을 도울 방안찾기에 쏠려 있다.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에는 성수고등학교 도서관에 가서 4시간 동안 사서로 봉사한다. 격주 토요일 오후에는 한강 시설점검봉사단 활동을 나간다.
이런 일상은 세상과 소통하고 직업이란 주제에 대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통로가 된다. 동료들과 만나 움직이고 대화하면서 직업과 관련된 테마를 찾고 각종 공모전에 낼 아이디어를 구상한다. 교육기관에 강의계획안도 수시로 제안하고 있다.
“지난해 말 고려대에서 퇴직 예정자를 대상으로 강의를 했어요. 올해도 상반기와 하반기 두 번에 걸쳐 16시간짜리 강의가 예정돼 있고요. 수도직업전문학교 강의 요청에 대비해 24시간 대기 중이기도 합니다. 이 정도면 현역이라는 표현이 틀린 건 아니죠.”
● 퇴직 후 ‘직업=인생’에 꽂히다
공고를 졸업한 뒤 방송국 기술직으로 일하다 군에 입대했고 베트남전에 1년 간 파병된 탓에 고엽제 후유증을 얻었다. 32세에 결혼과 동시에 고려대 행정직으로 취직해 만 24년 일한 뒤 2004년 명예퇴직했다.
“쉴 생각뿐이었어요. 당시엔 ‘인생2모작’ 같은 개념도 없었지요. 하지만 조금 쉬다보니 역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차단속원, 시설관리인 등 단순노무직으로 몇 년을 일했어요. 그러다가 딸의 해외취업 관련해 찾아간 직업소개소에서 직업상담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딸의 진로를 함께 고민하며 적성과 직업에 대해 연구했고, 발상의 전환이 인생의 선택지를 넓혀준다는 것을 체감했다.
“당시 딸은 임용고시를 준비 중이었는데 미국에서 수학과학교사 28만 명이 부족하다는 뉴스를 보게 됐어요. 딸은 임용고시 대신 미국행을 택했지요. 영어실력을 늘리기 위해 2년간 국제협력단(KOICA) 봉사도 다녀왔어요. 딸은 결국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수학교사로 일하다가 9년 전 귀국해 경북 문경의 국제학교 교사로 있어요.”
그가 직업에 천착하는 배경에는 평생 여러 직업을 헤맨 경험도 있는 듯하다.
“저희가 클 때는 적성 같은 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던 시절이었죠. 제가 찾는 게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청년이건 퇴직자건 자신의 적성과 직업을 살리는 방법에 대해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 “60대는 보물, 70대는 폐물… 그래도 현역으로 남을래요”
2009년 61세에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따고 서울 대림역 인근에 직업소개소를 열었다. 2010년에는 직업훈련교사 자격을 취득했고 마침 새로 생긴 고용노동부 ‘취업지원관’ 1호로 등록됐다. 한편으로는 직업 관련 강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여기저기 제안했는데, 전국에서 강의 요청이 물밀듯 들어왔다.
“하루 세 곳씩 뛴 시절도 있어요. 새벽에 충남 교육청 가서 오전 내내 강의하고 오후엔 인천 부평, 끝나면 서울의 종로여성인력개발센터로 가는 식이죠.”
지난 14년간 그는 직업상담사로서 평생교육원이나 직업전문학교, 대학 등에서 총 5200시간을 강의했다. 이와 별도로 서울시50+지원센터, 사학연금공단, 공무원연금공단, 노사발전재단 등 기관 강의도 300시간에 이른다. 그의 수업을 한번이라도 들은 ‘제자’가 1000여 명, 이중 수백 명이 직업교육기관의 컨설턴트나 상담원으로 일하고 20여 명은 강의를 다닌다.
하지만 그에게 들어오는 강의요청은 점차 줄어들었다.
“70세가 넘으면서 확 줄더군요. 제가 ‘60대 초반까지는 보물(寶物)이고 65세부터는 고물(古物), 70세 넘으면 폐물(廢物)이더라’고 말하는 이유죠. 고물은 고쳐서라도 쓸 수 있지만 70세 이상은 일을 시킬 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지난해부터는 수도직업전문학교 강좌도 끊겼어요. 학교 측이 강좌를 여는 손익분기점이 5명인데 모이지 않는 거죠.”
―왜 그렇게 됐을까요?
“몇가지 이유가 있어요. 우선 (직업정보사) 소득이 생각보다 적다, 둘째 너무 많이 배출됐다, 셋째 인터넷 등에 무료 강의가 있다…. 설상가상으로 직업전문학교 수강료는 자비 부담 비중이 늘었거든요.”
―직업상담사는 이미 레드오션이라고 봐야 할까요.
“생계를 걸기는 좀 어렵죠. 다만 자격증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본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운전면허 딴 사람이 어디서 어떤 차를 모느냐가 각자 다르듯이 말이죠. 이를테면 저는 이 나이에도 여전히 일하고 있잖아요. 체력이 받쳐주는 한, 적어도 80까지는 뛰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녁마다 헬스장에 가서 2시간씩 근력운동합니다.” ● 굽히지 않는 도전정신
그는 끊임없는 암중모색을 이어간다. 2018년 대통령직속 일자리 위원회가 주최한 대한민국 일자리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신중년의 맞춤형 일자리 직업훈련교사로 재취업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 아이디어는 한국기술교육대에서 채택돼 2019년 이래 매년 신중년 직업훈련교사 600여 명을 배출하고 있다.
―신중년 맞춤형 일자리란….
“직장에서 퇴직 예정자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면서 이분들의 진로대책이 너무 없다는 걸 발견했어요. 그들이 가진 수십년간의 노하우와 경력이 퇴직과 동시에 무용지물이 되는 건 본인은 물론 사회에도 큰 손실입니다. 그런데 자기 경력을 살려 자격증을 받고 직업전문학교나 평생교육원에서 가르칠 수 있는 길이 있어요.”
그가 강력히 추천하는 퇴직자들의 일자리는 직업훈련교사다.
“중장년이 퇴직 후 가질 수 있는 가장 멋진 직업 중 하나예요. 어느 직종의 7년 이상 경력자가 한기대 직업능력개발교육원에서 200시간 정도 교육 받으면 자격증이 나와요. 전부 무료예요. 은행 지점장이니 회사원, 교사 출신인 제 제자들이 지금 프리랜서나 평가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 분들이 절 만나면 평생 점심을 사지요. 하하.”
고용노동부는 국민평생직업능력 개발법(구 근로자직업능력개발법)에 따라 직종별 직업능력개발훈련교사를 두도록 돼 있다. 이중 ‘신중년 교직훈련과정’은 고숙련 기술자의 노하우 확산을 목적으로 만 40∼70세의 7년 이상 경력자가 대상이다.
“이런 게 있다는 걸 잘 모르는 분이 많아요. 퇴직 예정자들 대상으로 강의하다가 이 얘기를 하면 갑자기 질문이 쏟아지고 분위기가 활기를 띠죠.”
자격증을 받으면 직업훈련 포탈인 HRD-Net에 경력을 올려 국가직무능력(NCS) 확인 강사로 등록해둬야 한다.
“첫째, 직업훈련교사 자격증을 따고 둘째, NCS등록을 했다면 완벽합니다. 자신의 콘텐츠로 40시간 이상의 강의계획을 만들어 평생교육원이나 직업학교에 제안하세요. 한국에는 평생교육기관이 7000개 있고 이중 4000개가 직업전문학교에요. 국비지원되는 ‘내일배움강좌’도 많죠. 강의안이 채택되면 교사일을 시작할 수 있고 반응이 좋으면 계속할 수 있어요.” ● 4시간에 1만 3000원… ‘노인 일자리’의 현실
그가 매주 나가는 도서관 사서 자원봉사는 서울시 교육청, 한강 시설점검봉사단은 서울시 소속인데, 4시간 일하면 교통비 조로 1만 3000원을 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달이면 10여 회니 합치면 13만 원 가량 될 것이다. ―이런 돈을 받고도 일하는 게 좋으신가요?
“시간을 유익하게 활용하니 좋고 일 자체도 의미가 있죠. 인생 후반전도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자원봉사를 한 1년 하고 나면 이것저것 느끼는데, 수기 공모전이 많거든요. 그럼 거기 또 도전을 하는 거예요.”
―기관 쪽에서는 ‘노인 일자리 창출’ 업적이 되겠죠.
“당연하죠. 예산이 나가는데. 경쟁이 치열해요. 고령자들도 각종 세금에 건강보험료, 아파트 관리비 등으로 월 100만 원은 훌쩍 나가요. 이렇게 10만 원이라도 벌어 보태고 싶은 거죠.”
―자원봉사라 해도 인건비도 안 되는 액수를 주는 이유는 당초에 필요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고령자들의 처지를 악용하는 걸까요. 서울시 50플러스 지원센터 일자리들도 어떻게 해도 월 30만 원을 넘지 않게 세팅해 놨더라고요.
“50플러스센터는 본래 교육하는 곳이지 일자리 만들어주는 곳은 아니예요. 제가 초기 멤버거든요. 처음 교육받았을 때 수강생 90%가 기업 임원 출신들이었고 그 분들이 퇴직후 원하는 자리는 다 강의였어요. 그런데 자리는 그만큼 없으니 경쟁이 치열해지는 거죠.”
―고령자 일자리 대부분은 돈을 쓰는(주기 위한) 일자리인 것같습니다. 고령자들의 경륜과 경험, 커리어 등을 살리면서 생산성도 도모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쉽지는 않지요. 하지만 틈새 시장을 찾다보면…” ● 고령자가 공모전에 끝없이 도전하는 이유
언제부턴가 그는 각종 공모전에 참가해 크고작은 상을 타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고령자라 해도 나이 차별 받지 않고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모전은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어요. 정부도 문제의식이 있으니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아이디어를 모집하는 거거든요.
어떤 공모전이 있는지 수시로 검색하고 제안서를 만들어 제출한 뒤 합격을 기다리는 게 즐겁습니다. 입상하지 못하면 다시 도전하는 재미가 있죠. 그러다보면 인지능력도 좋아집니다. 시니어들끼리 동아리를 만들어 함께 응모하기도 합니다. 저는 일자리 아이디어에 관한 한 계속 도전할 생각입니다.”
● 자립준비 청년들의 멘토 역할도 준비 그가 매주 참여하는 다가치포럼에서는 소속 시니어 600여 명을 자립준비 청년들의 멘토로 매칭해주기 위한 작업을 추진 중이다. 여기서도 그는 직업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시설에서 나와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정착금 등 지원금이 나가는데, 문제는 돈만 주지 사전 사후관리가 없어요. 돈을 주기 전에 진로와 직업에 대해 먼저 교육을 시켜줘야 해요. 금융교육도 시켜주면 금상첨화죠.
예컨대 남들이 안 가는 직업에서 성공해 1인자가 되는 것도 가치있다는 걸 가르쳐줘야 해요. 요즘 매스컴에 소개되는 여성 도배공이나 용접 배우는 의사가 좋은 예죠.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남들이 좋다는 게 꼭 좋은 직업은 아니라는 걸 알려줘야죠. 인공지능(AI) 시대에는 사무직 화이트칼라가 제일 위험하고 몸 쓰는 블루칼라가 귀해진다는 얘기도 있잖아요.”
궁극에는 자립준비 청년들 내에서 직업상담 교사를 양성해 자신들끼리 상담과 정보교환이 이뤄지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한다.
그의 생활담을 들어보면 큰 능력이나 요행수, 배경이 없는 보통사람이 열심히 산다는 게 무슨 뜻인지 돌아보게 된다. 그는 치열하게 나의 일거리를 찾아 도전하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매순간 열심히 살았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노년, 이 정도면 풍족하지 않은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