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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혼자가 좋아.”
어린이책 ‘가끔은 혼자가 좋아’에서는 혼자 자전거를 타고, 바닷가를 산책하고, 낙엽을 밟고, 독서할 때 찾아오는 평안함을 이야기한다. 물론 이따금 친구와 같이 보내는 시간에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는 것도 함께 전달한다. 궁극적으로 인생은 ‘혼자’와 ‘함께’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은연중에 혼자 보내는 시간은 외롭다는 부정적인 느낌을 연상한다. 사교적이고, 친구가 많으면 좋은 성격이고, 조용하고 친구가 많지 않으면 뭔가 아쉬운 성격으로 여길 때도 있다. ‘혼자’와 ‘함께’ 사이에서 유독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에만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개인에 따라 혼자 있는 시간에 휴식, 자유 같은 긍정적 느낌부터 지루함, 우울까지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런데 우울하고, 불안한 ‘나쁜 고독’의 해로움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졌지만, 휴식과 자유, 창의성이 증가하는 ‘좋은 고독’의 이로움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지난주 기사(친구 없어도 행복한 사람들의 특징? “자발적 고독을 추구하는 중입니다”)에 이어 ‘좋은 고독’을 누리는 사람들이 가진 내면의 힘에 대해 알아보자.
● 친구 수와 외로움은 반비례?
친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덜 느낄까. 물론 어느 정도 영향이 있겠지만, 연구에 따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친구가 별로 없다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것도 아니고, 친구가 많다고 안 외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좋은 고독’을 즐길 수 있는 힘은 친구의 숫자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심리학과 연구팀은 어떤 사람이 혼자 있는 시간을 잘 즐길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성인 150명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이들에게 하루 3번씩 스마트기기 알람을 울려 당시 누구와 무엇을 하는지, 지금 진짜로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기분이 어떤지 등을 기록하게 했다. 연구팀은 특히 혼자 있는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기분이 어땠는지 등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들의 친구나 지인의 수(규모)와 이들과의 관계의 좋고 나쁨 정도, 사회적 지위 등을 추가로 조사했다.
안타깝게도 150명 중 절반은 혼자 있을 때 늘 ‘나쁜 고독’을 경험했다. 25% 정도만 늘 ‘좋은 고독’을 경험했다. 나머지 25%는 때에 따라 나쁜 고독과 좋은 고독을 번갈아 경험했다.
연구팀은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며 ‘좋은 고독’을 경험하는 25%의 특징을 분석해 봤다. 놀랍게도 친구, 지인의 수나 이들과의 관계의 좋고 나쁨은 ‘좋은 고독’을 경험하는 것과 큰 관계가 없었다.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낮은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즉, 사이좋은 친구가 많건, 적건, 사회적 지위가 높건, 낮건 간에 혼자 있을 때 외로워할 사람은 외로워했다는 의미다.
● “나는 사회성 떨어지는 사람” 인식 버려야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들의 심리적 공통점은 높은 ‘사회적 자기효능감’에 있었다. 쉽게 말하면, ‘나는 좋은 대인관계를 맺을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주관적인 인식이다. 이때 ‘괜찮은 대인관계’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므로, 친구의 숫자나 친함 정도 등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소수의 친구나 지인만 알고 지내도 충분하다고 여길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친구가 많아도 자신의 대인관계 능력을 못마땅해할 수 있다. 결국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내부에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대인관계 능력이 부족하기에 만날 사람이 없어서 혼자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괴로워져서다. 그래서 이들은 혼자 있을 때 의기소침해지고, 우울, 불안감을 느끼는 특징이 있다. 연구팀은 “자신의 대인관계 능력에 대해 얼마나 자신감이 있느냐에 따라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지 여부가 달려있다”고 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혼자 있는 시간에 자기반성을 많이 하는 사람도 고독을 즐기지 못했다. 생각을 곱씹으며 후회하고 잘못된 일에 대해 자기 탓을 하다 보면 불쾌해지기 쉬워서다.
● 외향적인 사람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 없을까?
주로 내향적인 사람들이 혼자 있는 시간을 선호하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받는 피로와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는 한계점이 외향적인 사람들에 비해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 레딩대 심리학과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외향적인 사람들도 이와 같은 이유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연구팀은 자발적으로 고독을 즐기는 성인(19~80세) 60명을 1년 4개월에 걸쳐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격 특성에 대해 가장 많이 언급한 내용은 내향성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혼자 있는 시간에 에너지를 회복해서 다른 사람들과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들 중에 외향적인 사람들도 똑같은 이유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평소 활발한 사회생활을 유지하려면 혼자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즉, 성격이 내향적이든, 외향적이든 혼자서 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외향적인 사람이 자발적 고독을 택했을 때 이 시간에 훨씬 더 만족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또 단순히 외향성, 내향성과 관계없이 혼자 있고 싶은 욕구가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지가 갈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 웨이크포레스트대 심리학과 연구팀에 따르면, 외향성이나 사교성이 높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혼자 있고 싶은 욕구가 강하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성격과 관계없이 혼자 있을 때 발휘할 수 있는 창의력이나 통찰력을 얻기 위해 혼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욕구가 강했다.
● 나는 혼자 있을 수 있는 사람인가
앞서 지난주 기사에서는 고독을 즐기는 핵심에는 자발성이 있다고 했다. 자발적으로 혼자 있기로 결심한 다음엔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 이 시간을 나를 위한 헌신, 관리, 회복, 자유의 시간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필요하다. 앞서 소개한 영국 레딩대 연구팀의 연구 참여자 중 일부는 혼자 지내는 시간을 ‘사치’ ‘특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자주 반복되면 외로움과 함께 “난 왜 매번 혼자 놀까?” 하는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올지 모른다. 외로움은 내가 원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지 못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혼자 있는 시간에 우울하거나 불안하다면, 우선 내가 자발적으로 혼자 있는 상황인지, 혼자 있을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있는 상태인지 돌아봐야 한다.
내면의 힘은 사회적 자기효능감 외에도 어렸을 때부터 쌓인 고독의 경험에 의해서도 좌우될 수 있다. 어린 시절 혼자 보내는 시간에 블록 쌓기, 그림그리기 등에 고도로 집중하며 재미있게 보낸 경험이 있다거나, 청소년기 이후 혼자 여행을 떠나 자립심을 배운 경험 등이 도움이 된다. 혼자 있어도 재미있고,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학습을 통해 주어진 상황에 잘 적응하고, 낙천적으로 보는 힘이 생겨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고독을 보내는 시간에도 골디락스(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이상적인 상황)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혼자 있는 것이 괜찮다고 느껴지는 적정시간은 사람마다 전부 다르다. 누군가는 잠깐만 혼자 있어도 금방 우울해지고, 누군가는 종일 혼자 있어도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적어도, 너무 많아도 불만족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나에게 맞는 최적의 ‘고독 시간’을 찾아야 한다. ‘혼자’와 ‘함께’ 사이에서 나만의 균형을 찾을 때, 혼자 있는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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