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불안’에 대처하는 단계적 해결법[김지용의 마음처방]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2일 23시 03분


“이런 문제도 정신과에서 진료를 해요?”라는 질문을 종종 듣게 되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발표 불안’이다. 직종을 가릴 것 없이 남들 앞에 설 때의 불안 증세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호흡이 가빠지고, 얼굴은 하얗게 질리며 입이 바싹 마르고, 자신 있는 목소리를 내고픈 기대와 다르게 염소처럼 떨리는 작은 목소리만 나온다. 고치려 노력해도 쉽지 않다. 거울 보며 연습할 때의 당당한 모습은 발표 현장에선 연기처럼 사라진다. 반복된 실패 속에 자신의 소심함만 탓하며 치료 가능한 문제로 길게 고통받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원래 발표 자리는 힘든 것이 당연하다. 극도로 사회적 동물인 사람에게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인정받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그렇기에 우리 뇌에서는 발표를 위험 상황이라 받아들이며 맞서 싸우려 교감신경계를 활성화시키고, 위에 기술한 신체 증상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내 의지와 무관하게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생리적 변화들을 어떻게 조절할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심호흡’이다. 마음대로 심박동을 조절할 수 없지만, 호흡은 어떤 상황에서도 조절 가능하다. 발표 전 3분 정도라도 의도적으로 천천히 심호흡하면 즉각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며 신체 긴장이 풀리고 편안함이 찾아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다만 이것만으로 깨끗이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발표 불안을 키우고 있을 잘못된 심리 몇 가지와 대처법을 말해보겠다.

발표를 앞두면 자동적으로 찾아오는 두근거림을 느낄 것이다. 그 순간 ‘오늘도 떨리네, 망했구나’라고 생각하면 실제로 망한다. 그 대신 ‘지금 내가 발표를 앞두고 설레는구나’라고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말해주어야 한다. 그래도 너무 떨릴 땐 그 떨림을 드러내는 것이 낫다. “긴장되어서 목소리가 떨리네요”라고 솔직히 고백하고 발표를 시작하는 것이 청중의 마음을 얻는 데 더 낫고, 긴장도를 낮추는 데도 도움이 된다.

또한 발표는 완벽한 공연을 펼쳐야 하는 무대가 아니라 정보 전달을 하는 자리라는 사실을 상기해야만 한다. 남들이 내 발표에 엄청 열심히 집중하고 혹독하게 평가할 것이란 믿음과 달리, 대부분의 타인은 생각보다 내게 큰 관심이 없다. 그런데 별다른 의미 없는 청중의 표정이나 반응에 과도하게 의미 부여하며 스스로 긴장을 키운다. 말하면서 주위를 둘러보기는 하되, 긍정적 반응을 해주는 사람과만 주로 눈 맞추며 진행하는 것이 좋다.

이런 노력들로 잘 해결되지 않을 땐 교감신경 차단 작용을 하는 약물을 사용하기도 한다. 두근거림을 포함한 신체적 불안 증상을 막아주어 확연한 효과를 보시는 경우들이 많다. 다만 혈압저하 등의 부작용 위험성도 있으며, 사용 불가능한 신체 질환도 있기 때문에 꼭 의사와 상의하에 사용해야 한다.

발표 불안은 분명 해결 가능한 문제이며,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혼자만의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을 땐 꼭 전문가와 상의해 보길 바란다.

※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2017년 팟캐스트를 시작으로 2019년 1월부터 유튜브 채널 ‘정신과의사 뇌부자들’을 개설해 정신건강 정보를 소개하고 있다. 8월 기준 채널의 구독자 수는 약 23만 명이다. 에세이 ‘빈틈의 위로’의 저자이기도 하다.


#발표#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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