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는 과육의 주름이 뇌와 똑 닮았다고 해 기억력이나 인지능력 향상에 좋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한의학에서 말하는 호두의 효능은 전혀 다르다. 동의보감에는 “호두 속살이 쭈그러져 겹친 것이 폐의 형체와 비슷한데 이것은 폐를 수렴시키므로 숨이 가쁜 것을 치료한다”는 기록이 있다. 실제 영조 재위 4년의 기록을 보면 “대비와 세자가 감기에 걸려 기침이 그치지 않자 호두로 차를 만들어 복용시켰다. 증상은 심하지 않고 기침이 그치지 않는 증상에 (호두를) 사용하였다”는 대목이 나온다.
호두(胡桃)는 원래 오랑캐의 복숭아라는 뜻이다. 당나라 때 장건이 서역 정벌을 하고 난 후 들여온 과일이라는 뜻에서 유래됐다. 고려 중엽 천안 출신 고관인 류청신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들여와 고향에 뿌린 게 천안 호두의 시초라는 설이 있으나 신라 경덕왕 14년에 작성돼 일본에 있는 민정 문서에 당시 신라에 있던 잣나무, 호두나무의 숫자가 자세하게 기록된 것으로 보아 그 전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크다.
한의학에서 인정한 호두의 또 다른 효능은 허리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었다. 승정원일기 영조 32년의 기록에는 실제 대비의 요통과 하지방사통을 치료한 내용이 있다. “대비가 넘어지면서 복부와 등을 다쳐 허리와 다리가 당기는 증상이 생겼다. 어혈을 없애는 소목이라는 약에 호두육을 더해서 놀란 피를 삭여 주는 치료를 했다.”
동의보감은 이와 관련해 “머리와 수염을 검게 하고 허리와 무릎을 덥게 해준다. 신허(腎虛)로 오는 요통과 허리와 무릎에 힘이 없는 증상에 보골지(補骨脂), 두충과 함께 쓰는 것이 좋다”고 적고 있다. 호두와 함께 쓰이는 약재 보골지는 한방에서 신장 질환을 치료할 때 쓰는 대표적인 약물이다. 동의보감에 “신장이 차가워 정액이 절로 흘러나오고 허리가 아프며 무릎이 차고 음낭이 축축한 증상을 치료한다”고 쓰여 있다.
“호두, 보골지와 함께 쓰라”고 한 약재 두충은 10년 이상 된 두충나무의 껍질을 사용하는데 반드시 볶아서 사용한다. 볶으면 두충의 교질이 녹아 나와 유효성분이 잘 나오기 때문이다. 두충 껍질 속을 보면 빽빽하게 얽혀 서로 당기고 있는 하얀 실을 볼 수 있는데, 이 실이 근골과 피육을 척추 속에 붙이는 작용을 한다. 보통 생강즙에 적셔 함께 볶은 후 가루를 내서 먹는다.
동의보감에는 실제 호두에 두충과 보골지를 넣어 만든 처방, ‘청아환(靑娥丸)’이 나온다. 효능은 신허로 인한 요통을 치료하는 것이다. 한의학은 신장을 인체의 가장 기본 요소인 체온을 36.5도로 유지하는 보일러 기능을 한다고 본다. 그 기능이 떨어지면 인체가 식어 가는데 특히 허리 아래쪽이 약해진다. 신허와 비슷한 말로 ‘하초가 허하다’ ‘허리 아랫부분이 시원찮다’ 따위의 표현이 나온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호두는 바로 이 신장, 즉 명문에 힘을 보탠다. 단, 효능이 강력해 신체의 보일러인 신장을 덥힐 정도로 성질이 뜨거운 만큼 여름철 과식은 피해야 한다. 북한의 임상자료에는 “요로결석 환자에게 호두육을 기름에 튀겨 여러 번 복용시켰더니 결석이 분해돼 배출됐다”는 기록도 있는 걸 보면 약재로서의 자격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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