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에 빠진다는 것은 뭘 의미할까? 살면서 체육시간에만 운동을 했던 ‘스포츠 문외한’이 핸드볼 마니아가 됐다. 배우 고윤희 씨(27) 얘기다. 그는 2021년 열린 도쿄 올림픽 때 핸드볼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전광석화처럼 진행되는 경기, 과격한 몸싸움, 그리고 짜릿한 다이빙슛…. 그해 말부터 핸드볼코리아리그(현 핸드볼 H리그)를 보러 갔다. 핸드볼 팬이 됐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직접 핸드볼을 시작했다.
“핸드볼에 대한 관심의 시작은 2020년 말부터 한 TV프로그램에 나온 김온아 선수였죠. 그리고 도쿄 올림픽 때 다른 스포츠도 봤는데 유독 핸드볼에 끌리더라고요. 김온아 선수 영향이었나 봐요. 공수가 빠르게 진행되는 속도감이 눈을 즐겁게 했고, 치열한 몸싸움은 심장을 뛰게 했죠. 처음엔 핸드볼리그를 보러 가서 모든 팀을 응원했습니다. 그러다 삼척시청여자핸드볼팀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한국 여자핸드볼대표팀에서 활약한 김온아(36)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동메달, 2014년 인천 및 2018년 자카르-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역이다. 2020년 말부터 골프선수 출신 박세리 등이 출연한 ‘노는 언니’에 나와 솔직 담백한 모습으로 화제를 모았었다. 고 씨는 “핸드볼도 잘하는데 순수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좋았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김온아는 2022년말 고 씨가 응원하는 삼척시청으로 이적해 활약하고 있다.
“제가 삼척시청을 좋아하게 된 것은 당시 최고의 팀(2021~2022, 2022~2023 정규리그, 챔피언결정전 통합 우승)이 었고, 수비에서부터 공격으로 이어지는 플레이가 가장 매끄러운 팀이기 때문입니다. 호흡도 잘 맞고 특히 수비가 정말 잘 돼서 보기 편했던 팀이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삼척시청 김민서 선수입니다. 2022년 청소년 여자핸드볼선수권 금메달의 주역이죠.”
고 씨는 핸드볼 응원 다니다 만난 친구를 통해 대한핸드볼협회(KHF) 핸드볼클럽을 알게 됐고 2022년부터 코트를 누비고 있다. KHF 핸드볼클럽은 KHF가 2015년부터 직접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유치부 초등부가 중점인데 성인반도 운영한다. 은퇴한 핸드볼인들에게는 재능기부의 기회를, 일반인들에게는 직접 배울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핸드볼학교로 시작해 핸드볼클럽으로 바뀌었다. 고 씨는 연간 전반기, 하반기로 나눠 매주말 1회씩 총 15회씩 진행되는 KHF핸드볼클럽에 등록해 핸드볼을 즐기고 있다.
“핸드볼은 엄청 힘든 스포츠였어요. 2시간 동안 몸 풀고 기초 체력운동 하고 기본기를 배우고 핸드볼을 하는데…. 처음엔 죽도록 힘들었죠. 그런데 함께 하는 언니 동생들이 있어 잘 버텼죠. 단체 종목이라는 게 서로 돕고 의지할 수 있어 참 좋은 것 같아요. 학창시절 체육시간에만 운동했던 제가 지금은 탄탄한 체력을 자랑합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국제종합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 대한민국의 ‘효자 종목’ 역할을 해온 핸드볼은 종목 특성상 탄탄한 체력을 키워준다. 순발력과 지구력을 동시에 키워야 하며 다양한 기술까지 활용해야 하다 보니 핸드볼 선수들은 종합 운동능력이 뛰어나다. 한국 스포츠 메달의 산실 서울 태릉선수촌 시절 ‘공포의 불암산 달리기’에서 여자핸드볼 선수들은 늘 상위권에 있었다.
송홍선 국립안동대 체육학과 교수(운동생리학)는 “여러 연구 결과 핸드볼이 가진 장점이 많다. 특히 여성들에겐 체력을 키워주고 다이어트 효과가 있는 것에 더해 골밀도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핸드볼을 한 시간 할 경우 610칼로리를 소비한다. 이는 시속 8km로 1시간 달리는 것과 같다. 그만큼 에너지 소비가 많다. 2022년 나온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 시절 핸드볼을 한 여성들의 골밀도가 축구를 한 여성들보다 높았다. 송 교수는 “여성들이 핸드볼을 하면 체력도 키우고 골다공증도 예방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운동”이라고 했다.
고 씨는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겠지만 공격할 때나 수비할 때 한시도 쉴 수 없다. 수비할 땐 좌우 사이드 스텝을 하며 막아야 하고, 공격할 때도 좌우로 공을 돌리며 상대의 틈을 노려야 한다. 공수 전환이 빨라 전력 질주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는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 운동 끝나고 많이 먹는데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고 했다.
고 씨는 중고교 진로상담 강사를 하며 연극도 하고 드라마도 찍고 있어 다른 운동을 하지는 못하지만 매주 토요일 저녁 열리는 KHF 핸드볼클럽은 특별한 일 아니면 빠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는 ‘오리온’이란 여자핸드볼동호회팀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토요일 오전 고대부고에서 그 학교 감독을 지도자로 삼아 훈련하고 대회도 출전하고 있다. 생활체육 핸드볼대회 여자부의 경우 서울시 대회엔 3~5개팀, 전국대회엔 10개팀 이상 나온다고 했다.
“오리온은 학생들도 있지만 대부분 직장인입니다. 핸드볼 하자고 모인 팀이라 주말에 시간 빼는 것에 개의치 않습니다. 열정인 넘치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이젠 토요일에 핸드볼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일주일을 버팁니다.”
“처음엔 공도 제대로 던지지 못했는데 지금은 점프 슛도 하죠. 아직 마음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예전엔 슛도 안 들어가고 자주 빗나갔는데 이젠 골도 잡아냅니다. 골이 들어갈 땐 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좋아요. 최근에 서울시 대회에 나가서 준우승도 했어요.”
뭐든 잘하면 재미가 붙는 법. 고 씨는 “조금씩 했지만 하디보니 실력도 늘고 더 재미있다”고 했다. 핸드볼을 더 잘하기 위해 클라이밍을 하기도 한다. 그는 “친구가 클라이밍을 하면 악력이 좋아져 핸드볼을 잘 할 수 있다고 해 가끔 따라 간다”고 했다. 그는 “핸드볼을 잘하기 위해 헬스도 하고 크로스핏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했다.
핸드볼은 그에게 탄탄한 체력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에너지도 줬다. 고 씨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줄었다. 그리고 건강해지고 자신감이 생기니 사고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이젠 뭐든 못할 게 없다는 자세로 살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 19때도 부산 삼척 등 전국을 당일치기로 돌아다니며 핸드볼을 봤어요. 그러면서 두려움도 없어졌어요. 핸드볼 보려고 홍콩에도 갔죠. 핸드볼 때문에 겁 없이 적극적으로 살았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하고도 쉽게 말을 트고, 어울렸죠. 그러면서 제 사고도 긍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고 씨는 핸드볼 마니아가 된 뒤 “정말 재밌고 매력적인 핸드볼이 왜 비인기 스포츠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는 “훈련 끝날 때마다 우리끼리 ‘왜 핸드볼이 인기가 없나’에 대해 얘기한다. 결국 많은 사람에게 핸드볼의 매력을 알려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고 했다.
고 씨는 7월 개막하는 파리 올림픽에 한국 구기 종목으로 유일하게 출전하는 여자 핸드볼이 일을 내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럼 ‘제2의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바람이 불지 않을까요?” 우생순은 2004 아테네 올림픽 때 은메달을 딴 여자핸드볼대표팀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로 큰 화제를 모았었다.
“솔직히 여자 핸드볼대표팀만 올림픽에 출전해 부담도 적지 않을 겁니다. 유럽의 큰 선수들에 비해 체격도 작고…. 하지만 2022년 세계청소년선수권(18세 이하)에서 우승했듯 못할 것도 없잖아요. 선수들이 부담 없이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