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미 국과수 전 법과학부장 인터뷰
인체 잔류 마약 분석 베테랑…35년 봉직, 이달 말 정년
오직 증거로 진실 밝혀내는 마약 대응과 신설 견인차
마약과의 전쟁 격화 예상…전문 분석 인력 확충해야
마약류 사범이 빠르게 늘고 있다. 2022년 주요 검찰청은 강력범죄수사부를 재구성하고 대검찰청에 마약·조직범죄부를 신설했다. 검찰이 2022년 9월부터 1년간 직접 단속한 마약사범은 112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드라마에서 과학수사로 사건을 해결하는 장면은 짜릿한 희열을 준다. 마약 범죄에서 과학수사의 최일선에 있는 곳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법과학부다. 최근까지 국과수 법과학부장을 지낸 김은미 박사(60)는 마약 분석만 35년 외길을 걸은 마약 분석의 살아있는 역사다. 박유천과 황하나, 로버트 할리 등 유명 연예인과 재벌 3세 등의 마약 투약 사실을 밝혀냈다. 2013년에는 연구진들과 함께 세계 최초로 프로포폴 분석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국과수 마약과 신설에 앞장서고 이제는 정년퇴직을 앞둔 김 박사를 만났다.
―이달 말,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고 들었다. 그동안 굵직한 마약 사건들을 해결했는데, 지금 소감이 어떤가.
“벌써 35년이 됐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마약 사범은 꾸준히 늘어 2015년 1만1916명을 기록하면서 마약 청정국 지위를 잃었다. 마약 사범은 가파르게 늘고 있는데, 전국 국과수의 마약 사건을 전담하는 인력은 25명 내외에 불과하다. 열악한 근무 환경에도 국과수 연구원들은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밝히고자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2월, 국과수에 마약 대응과가 신설됐다. 어떤 의미를 갖는가?
“과거 국과수에 독립 부서로 운영되던 마약과가 2013년 공공기관 지방 이전으로 약독물과로 통폐합되면서 효율적인 마약 대응이 어려워졌다. 2019년 강남 버닝썬 클럽 마약 투여사건을 계기로 마약 문제가 크게 이슈화되면서 마약이 우리 사회에 심각한 문제도 대두됐다. 작년 4월에는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유통사건으로 파장이 일었다. 마약과 신설은 2019년 독성학과장이었던 때부터 준비했다. 2021년 부장이 된 이후에도 마약과 신설의 필요성을 꾸준하게 요구했고 동료들과 함께 과신설을 위해 노력했다. 마침내 원주 본원에 마약(대응)과가 만들어졌고, 마약 범죄에 좀 더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기반을 갖추게 됐다.”
―많은 마약 사범이 처음에는 범죄 사실을 부인한다. 특히 마약에 관해서는 국과수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은데…
“2019년 연예인 박 씨의 마약 투여사건이 생각난다. 의뢰 당시 모발에서는 마약이 검출되지 않았다. 박 씨는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은 마약을 투약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모발과 함께 의뢰된 체모에서 마약이 검출되자 결국 투약 사실을 자백했다. 동일인이라도 모발과 체모(겨드랑이털, 음모, 다리털 등)의 결과가 다를 수 있다. 모발은 염색, 파마, 탈색 등 화학 처리로 마약이 손실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씨의 경우도 잦은 탈색, 염색 등으로 처음에는 마약이 검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체모는 특성상 화학 처리가 어려워 마약이 검출될 가능성이 크다.”
―투약한 시기가 오래된 마약도 검출할 수 있나?
“마약 투약은 일반적으로 소변과 모발이 의뢰되는데 이들은 서로 특성이 다르다. 소변은 최근 3∼5일 이내의 마약 투여 사실을 알 수 있다. 모발은 이발만 하지 않는다면 일 년 전에 투약한 사실도 알 수 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모발은 평균적으로 한 달에 1cm씩 자란다. 최근에 마약을 투여했다면 모근(두피에 박혀있는 부위)에 약물이 머물러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모발의 성장 속도를 따라서 모발의 끝부분으로 이동한다. 따라서 모발을 부위별로 나눠 검사하면 대략 언제 마약을 투약했는지 추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모근에서부터 3cm 떨어진 부위에서 마약이 검출됐다면 모발 채취일로부터 대략 3개월 전에 마약을 투약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신종 마약의 경우 소변이나 모발로도 검출이 어렵다는 말이 있다. 고정밀 분석기를 활용해도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한 달 이상이 소요된다는데, 맞나?
“전 세계적으로 신종 마약은 큰 골칫거리다. UN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1200여종의 신종마약이 보고돼 있으며 새로운 구조의 마약이 계속해서 합성되고 있다. 이 때문에 분석법을 확립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우리나라는 2011년 식약처에서 임시마약류 제도를 도입했다. 신종마약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법령 절차를 간소화 한 것으로 과거 법령 제정에 일 년 이상 소요되던 기간을 4∼6개월로 단축한 것이다. 2014년에 유사체까지 규제 확대함으로써 신종마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신종마약의 투약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표준품 확보뿐만 아니라 대사체(마약류 투약 후 체내에서 분해돼 생성되는 물질)까지 확인해야 하는데 신종마약의 대사체에 관한 연구가 아직 미비하기 때문에 분석에 어려움이 많다. 대사체를 예측하는 프로그램이 많이 상용화돼있긴 하지만 실제 인체에 적용하려면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최근 6년간 국과수에 접수된 마약류 감정 의뢰 건수
연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합계
4만3808건
6만3865건
6만5531건
7만6528건
8만9000건
12만7365건
일별 의뢰 건수
183건
266건
273건
319건
371건
531건
(출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마약 전문가로서 빠르게 늘고 있는 마약 사범에 대처하기 위해 현시점에서 보강해야 할 것들이 있다면?
“가장 필요한 정책은 크게 세 가지다. 규제, 재활 그리고 교육이다. 규제는 수사력 강화다. 경찰청은 2019년 버닝썬 사건 이후 마약 수사 전담 인력을 대폭 늘렸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마약 관리 관제를 신설해 마약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국과수에 마약과가 신설된 것도 정부의 수사력 강화의 일환이다. 둘째는 재활이다. 마약은 한번 중독되면 끊기가 어려워서 재범률이 높다. 이들을 위한 재활 중심의 치료가 필요하다. 마약중독자는 다른 정신질환자보다 치료에 큰 비용이 소요된다. 정부 지원 없이는 지속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재활병원 건립을 추진하고, 치료제 개발 등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교육인데, 청소년이 처음 마약을 시작하는 계기는 호기심 때문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마약의 유해성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 대면 강좌뿐만 아니라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한 교육 프로그램이 많이 개발돼야 한다. 국무총리 산하에 마약류 대책협의회가 있는데 이는 각 부처에서 효율적인 마약 정책 수립을 위한 협의회다. 이를 통해 규제, 재활, 교육의 세 가지 정책이 조화를 이루면서 추진된다면 마약 없는 안전한 국가 구현이 가능할 것이다.”
―은퇴 후 계획은?
“한 분야에서만 바쁘게 살다가 은퇴를 앞두고 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많다. 아직 특별한 계획은 없지만, 나의 재능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흔쾌히 달려갈 것이다. 국과수에서 진행하는 코이카 ODA(공적 원조 개발) 사업에 마약 전문가로 참여할 수 있고, 대학에서 법과학 후학을 양성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디서든 마약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곳에 내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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