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 환율이 다시 오르면서 엔화 가치가 38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급격한 엔화 환율 상승에 일본 정부가 서둘러 구두개입에 나섰지만 오름세를 꺾진 못했다. 엔화 환율 상승은 일본 경제의 기초체력 약화를 드러내는 지표라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일본의 수출가격 경쟁력을 높여줘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수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27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60.84엔에 거래됐다. 이는 일본 거품경제가 한창이던 1986년 12월 이후 3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엔-유로 환율은 유로당 171.79엔까지 상승하며 1999년 유로화 창설 이후 가장 높았다. 엔화 대비 외화 환율 상승은 그만큼 엔화 가치가 떨어졌다는 걸 의미한다.
엔화 가치 추락으로 아시아 통화 가치도 1년 7개월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이날 블룸버그 아시아 달러 인덱스는 89.98로, 2022년 11월 3일(89.09)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아시아 달러 인덱스는 원화, 중국 위안화, 싱가포르 달러화, 인도 루피화, 대만 달러화, 태국 밧화 등 9개 아시아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보여준다.
엔-달러 환율이 160엔을 돌파한 건 올 들어 4월 이후 두 번째다. 당시 일본 정부는 역대 최대 규모인 9조7000억 엔(약 83조 원) 어치 달러를 푸는 강한 개입으로 달러당 151엔까지 끌어 내렸다.
하지만 미국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잡히지 않으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금리 인하 시기가 늦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자 엔화 가치는 다시 꺾였다. 외환 시장에서 가치가 떨어진 엔화를 팔고 달러화를 사 들이는 움직임이 강해지면서 역대 최대 규모의 일본 당국 개입조차 ‘언 발의 오줌누기’ 수준이 됐다.
스즈키 슌이치(鈴木俊一) 일본 재무상은 급격한 엔화 환율 상승에 대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강하게 우려하고 있다”며 “필요에 따라 대응을 취할 것”이라며 구두개입성 발언을 했다.
엔화 환율이 오르면 일본 수출에 득이 된다. 달러화로 표시되는 수출가격을 낮게 매길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도 호재다. 외국인이 환전하면 더 많은 엔화로 바꿀 수 있어서다.
하지만 만성화된 초(超)엔저는 일본 경제 기초체력을 약화시킨다. 휘발유, 원자재, 식료품 등 수입품 가격을 끌어올려 물가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물가 상승에 따른 경제 악영향 때문에 엔저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는데도 정부는 휘발유, 전기요금 보조금을 지급하며 엔저를 오히려 부추기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판했다.
엔저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증권은 올 9월까지 달러당 163엔까지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 일각에서는 170엔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일본은행이 올 하반기(7~12월)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있지만, 움직임이 지나치게 신중해 추세를 바꾸진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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