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만에 막내린 볼리비아 쿠데타… 주동자 “대통령 자작극”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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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참모총장 “약탈서 국민 보호”
장갑차 등 동원 대통령궁 진입했다… 대통령 철군명령에 순순히 물러나
체포된 참모총장 “대통령 지시” 주장… 진입-대통령 대면 장면 생중계 돼

‘수상한’ 쿠데타 
26일 볼리비아 행정 수도 라파스 대통령궁에 무력 진입해 쿠데타를 시도한 군인들이 3시간 만에 물러나자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이 궁
 앞에서 지지자 수천 명의 환호를 받으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라파스=AP 뉴시스
‘수상한’ 쿠데타 26일 볼리비아 행정 수도 라파스 대통령궁에 무력 진입해 쿠데타를 시도한 군인들이 3시간 만에 물러나자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이 궁 앞에서 지지자 수천 명의 환호를 받으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라파스=AP 뉴시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집권당 분열로 극심한 정치 혼란을 겪고 있던 볼리비아에서 군부가 무력으로 대통령궁에 진입하는 쿠데타가 벌어졌다. 그런데 발발 3시간 만에 철군하며 해프닝처럼 끝나버렸다. 쿠데타를 주동했던 후안 호세 수니가 육군 참모총장은 현장에서 체포된 뒤 “현직 대통령이 지시한 자작극”이라고 주장해 후폭풍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 ‘강제 진입, 대통령 맞대면’ 전부 생중계

AP통신 등에 따르면 26일 오후 3시경 수니가 참모총장은 탱크와 장갑차를 이끌고 대통령궁과 정부청사 등이 밀집한 행정 수도 라피스의 정치 중심가 ‘무리요 광장’에 집결했다. 무장 군인들은 최루탄 등을 사용해 광장에서 시민들을 해산시켰으며, 장갑차로 대통령궁 출입문을 들이받아 강제로 개방했다.

수니가 참모총장은 직후 현장에서 “육해공 참모총장 일동은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기 위해 왔다”며 “엘리트가 자행한 약탈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건 군인의 의무”라고 주장했다. 이후 대통령궁으로 들어가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과 각료들을 만났다.

그런데 이후 상황은 묘하게 흘러갔다. 볼리비아 통신 ANF에 따르면 아르세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로서 불복종을 용납할 수 없다”고 호통치며 철군을 명령했다. 그는 별도의 대국민 연설에서도 “쿠데타 시도에 직면했지만 국민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굳건히 서 있겠다”고 밝혔다. 쿠데타에 가담한 참모총장 3명도 전부 경질했다.

그러자 쿠데타는 오후 6시경 발발 3시간여 만에 그대로 종료됐다. 현지 일간 티엠포스에 따르면 수니가 참모총장은 철군 결정을 내린 뒤 무리요 광장에서 연설을 하다가 경찰에 순순히 체포됐다고 한다.

일단 남미의 이웃 국가들은 쿠데타를 성토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도 아르세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 “위기 빠진 대통령의 자작극”

‘수상한’ 쿠데타 
같은 시간 쿠데타를 주동한 후안 호세 수니가
 육군참모총장은 철군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돼 이송됐다. 라파스=AP 뉴시스
‘수상한’ 쿠데타 같은 시간 쿠데타를 주동한 후안 호세 수니가 육군참모총장은 철군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돼 이송됐다. 라파스=AP 뉴시스
이날 쿠데타는 여러모로 이상한 점이 많았다. 현지에선 최근 좌파 분열로 내년 대선에서 우파에 정권을 넘길 위기에 처한 아르세 대통령이 측근을 동원해 저지른 자작극이라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수니가 참모총장도 체포 직전 “최근 아르세 대통령이 ‘(자신의) 인기를 높이기 위한 사건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쿠데타 배후로 대통령을 지목한 것이다.

1982년 이후 42년 만에 벌어진 이날 쿠데타는 마치 미리 짠 듯 언론과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됐다. 대통령궁 복도에서 아르세와 수니가가 대화하는 장면도 담겼다. 무리요 광장에는 쿠데타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 8명이 경상을 입었을 뿐이다.

2020년 당선된 아르세 대통령은 13년간 장기 집권 후 2019년 부정 선거 의혹으로 물러난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다. 군부가 지지하는 반(反)모랄레스 성향 자니네 아녜스 상원 부의장이 임시 대통령을 지냈으나, 결국 모랄레스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내년 대선에서 아르세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는 상황에서, 모랄레스 전 대통령 또한 출마 의사를 표명하며 좌파 진영에 큰 균열이 생겼다. 재무장관 출신인 아르세 대통령은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부각시켜 당선됐지만, 최근 경제난이 심화하고 연료 부족 현상까지 겪으며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졌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볼리비아 집권당의 극심한 분열로 정부 운영이 마비됐다”며 “정권 교체 가능성이 20년 만에 가장 큰 상황”이라고 전했다.

수니가 참모총장은 그간 모랄레스 전 대통령의 출마를 공개적으로 반대해 왔다. 이 때문에 이번 쿠데타를 벌인 배경에 현 대통령과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거란 추정도 나오고 있다. 야당 소속 안드레아 바리엔토스 상원의원은 “국가의 존망 위기를 걸고 이 같은 쇼를 벌인 것인지 투명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볼리비아 쿠데타#대통령 지시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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