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현지 시간)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 도심에서 만난 시민 알론 씨가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와의 전쟁 가능성을 우려하며 한 말이다. 지난해 10월 7일 발발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의 전쟁이 약 9개월째로 접어드는 와중에 최소 15만 기의 미사일과 로켓을 보유한 헤즈볼라까지 상대할 여력이 없다는 의미다. 그는 “헤즈볼라와 전면전이 벌어지면 레바논과 가까운 북쪽 국경지대는 물론 텔아비브 등 이스라엘 전역에 미사일이 날아올 것”으로 우려했다.
같은 달 23∼27일 방문한 텔아비브는 곳곳에 고층 빌딩이 가득하고 밤늦도록 해변가에 인파가 북적이는 대도시였다. 다만 식당, 상점, 버스 정류장 등 어디를 가도 하마스에 납치된 사람들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가자지구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기준 전쟁으로 최소 3만7718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숨지고 1만 명 이상이 실종됐다.
“이, 2개의 전쟁 치를 여력 안돼”… 인질 가족들은 애타는 反戰시위
헤즈볼라, 미사일-로켓 15만기 보유, 이 전역 사정권… 이란 개입 가능성도 인질 가족들, 귀환협상 지연 우려… “네타냐후 사퇴, 새 총리가 지휘해야” 가자지구 사망자 3만8000명 육박
헤즈볼라와의 전쟁 가능성은 이미 하마스와의 전쟁으로 타격을 입은 경제에도 추가 악영향을 끼칠 것이 확실시된다. 택시 기사 엘라이 씨는 “전쟁 발발 후 관광객 등이 줄어 수입이 반으로 감소했다. 또 전쟁을 치르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이스라엘 재무부에 따르면 정부는 하마스와의 전쟁 발발 후 올 5월까지 최소 697억 셰켈(약 26조 원)을 썼다. 국방비 급증, 하마스로부터 공격당한 지역의 재건 비용 등을 감안하면 추가로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하다. 같은 달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 또한 7.2%로 지난해(4.2%)를 큰 폭 웃돌았다. 이에 정부 일각에서 세금 인상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나오나 국민 반발이 예상된다.
● “헤즈볼라 미사일·로켓에 안전지대 없어”
수니파인 하마스와 달리 헤즈볼라는 종파가 같은 이란으로부터 무기, 자금 등을 직접적으로 지원받고 있다. 스스로도 ‘이란 대리인’을 자처한다.
이런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이 전쟁을 치른다면 이란의 개입을 불러와 전선을 확대시킬 가능성이 크다. 유엔 주재 이란대표부 또한 지난달 28일 소셜미디어 ‘X’에 “시온주의 정권(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전면 공격하면 ‘말살 전쟁(obliterating war)’이 일어날 것”이라고 이스라엘을 위협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와의 전쟁 발발 후 북부 국경지대를 소개하고 약 6만 명의 주민을 대피시켰다. 이후 헤즈볼라와는 국지전만 이어 왔다. 그러나 지난달 11일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최고위 지도자 탈렙 사미 압둘라 등을 공습으로 사살하고 헤즈볼라 또한 맞보복에 나서면서 전면전 우려가 고조됐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 등은 거듭 “헤즈볼라와의 전면전을 피하지 않겠다”는 뜻을 강조한다. 이에 미 정보 당국이나 몇몇 유럽국은 향후 며칠 안에 양측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가 지난달 27일 전했다.
텔아비브와 북부 국경지대의 거리는 약 102km. 이스라엘 싱크탱크 국가안보연구소(INSS)에 따르면 헤즈볼라가 보유한 15만 기의 미사일과 로켓 중 절반이 넘는 8만 기는 최대 사거리 100km의 중장거리 로켓이다. 이들로도 얼마든지 타격이 가능하다. 텔아비브, 예루살렘에 이은 제3도시 하이파는 국경에서 불과 27km 떨어져 헤즈볼라가 보유한 사거리 20km의 단거리 로켓 4만 기로도 위협할 수 있다. 최대 사거리 300km인 장거리 미사일 3만 기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이스라엘 전 국토가 헤즈볼라의 공격 대상인 셈이다.
● 인질 가족 “우리는 더 뒷전”
인질 가족은 헤즈볼라와의 전쟁 가능성이 그렇지 않아도 지지부진한 귀환 협상에 타격을 미칠까 우려한다. 하마스는 전쟁 발발 당시 240여 명의 이스라엘 민간인을 납치했고 절반만 풀어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남아 있는 120여 명 중 70여 명이 이미 숨졌고 50여 명만 생존해 있다. 헤즈볼라와 전쟁을 벌이면 이 50여 명의 생사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크다.
지난달 27일 텔아비브 예술미술관 앞 ‘납치자 광장(Kidnapped Square)’에서 만난 군인 인질 님로드 코헨 씨(20)의 아버지 예후다 씨(55)는 “네타냐후 총리가 빨리 사퇴하고 새 총리가 인질 귀환 협상을 지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곳은 전쟁 후 매주 토요일 인질 귀환, 전쟁 중단을 외치는 시위가 벌어져 일종의 시민 성지(聖地)로 부상했다. 인질 가족을 돕는 각종 단체 또한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또 다른 시민 요시 코헨 씨는 “한때 네타냐후 총리를 지지했지만 전쟁 장기화, 부패 의혹 등으로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과 이름이 같은 요시 코헨 전 모사드 국장이 인질 귀환 협상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새 총리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 가자 주민 고통도 계속
가자지구 주민의 고통 또한 개선될 기미가 안 보인다. 3만8000여 명에 육박하는 사망자는 물론이거니와 고질적인 경제난 또한 심화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전쟁 전 45.1%였던 가자지구의 실업률은 79.1%로 치솟았다. 이들 대부분은 전쟁 전 가자지구 밖에서 건설 근로자 등 육체 노동을 담당했다. 전쟁으로 가자지구를 벗어날 길이 없어지자 꼼짝없이 실업자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네타냐후 정권은 가자지구 내 지상전을 중단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지난달 29일 WSJ는 네타냐후 정권이 가자지구 북부에 주민들을 격리할 ‘외딴섬’ 같은 구역을 조성하고 남부에서는 하마스 소탕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상전 지속으로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망자가 더 늘면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 또한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 구호품을 받으려던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발포, 해외 구호단체 직원에 대한 오폭, 지난달 인질 4명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274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상황에서 추가 민간인 희생은 결국 이스라엘에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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