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간 결혼 생활을 유지해 온 네덜란드 70대 부부가 동반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BBC 등에 따르면 네덜란드 부부 얀 파버(70)와 엘스 반 리닝겐(71)는 지난달 3일 의사로부터 안락사 약물을 투여받고 함께 숨을 거뒀다.
얀과 엘스는 유치원 시절 처음 만났고, 이후 20대 때 결혼해 아들을 한 명 낳았다. 얀은 유년시절 네덜란드 청소년 국가대표팀에서 하키 선수로 활약하다 스포츠 코치가 됐다. 엘스는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이들은 바다에 관심이 많아 결혼 생활의 대부분을 보트에서 보냈고 화물선을 구매해 화물 운송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하지만 10년 넘게 화물을 옮겨온 얀은 허리 통증으로 2003년 수술을 했지만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엘스 또한 2018년 교사직을 은퇴한 뒤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고 2022년 11월 치매 진단을 받았다.
고통에 시달리던 두 사람은 상태가 더 나뻐지기 전에 동반 안락사를 논의했다고 한다. 얀은 생전 “약을 많이 먹으면 좀비처럼 살아야 했다”며 “내가 겪고 있는 고통과 아내의 병(치매)을 생각했을 때 이걸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부부의 자녀는 “병을 고칠 수 있는 더 나은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기대했지만, 얀과 엘스는 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결론을 내고 안락사를 결정했다.
네덜란드는 2002년부터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개인이 자발적으로 요청한 경우 △요청자의 신체적 또는 심리적 고통이 의사로부터 ‘견디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평가된 경우 △개선 전망이 없는 경우 등의 기준이 충족됐을 때 안락사를 시행할 수 있다.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는 여전히 많지 않다. 한편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의사의 도움으로 멈추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다른 한편에선 안락사의 부작용과 생명 윤리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다.
한국의 경우, 환자의 요청에 따라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으나, 아직까지 약물 투여 또는 처방을 통한 적극적인 안락사는 불법이다. 지난해 말에는 한 불치병 환자가 조력 사망의 합법화를 요구하면서 존엄사에 관해 또 다시 치열한 논쟁이 일고 있다.
최재호 동아닷컴 기자 cjh12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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