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검진에서 혈당 수치가 높다고 재검이 나온 겁니다. 제가 명색이 의사이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안 하고 있었죠. 건강 검진 받는 사람들에게 주당 몇 번이나 땀을 흠뻑 흘릴 정도 운동하느냐고 설문하잖아요. 정작 제가 안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등산을 시작했죠.”
이범구 가천대 길병원 정형외과 교수(70)는 2019년부터 산을 타기 시작했다. 주중에 병원 일을 하면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 등산이었다. 매 주말 산을 올랐다. 2022년 대한민국 100대 명산도 완등했다. 지금도 주말엔 어김없이 산을 오른다.
“주기적이진 않지만 가끔 등산을 했었죠. 공기 좋고 풍광 좋은 산을 오르며 운동도 할 수 있어 좋았죠. 바로 산을 타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수도권의 관악산과 북악산, 북한산 등을 올랐어요. 그리고 길병원 산악대장 이래성 행정팀장에게 등산을 배웠고, 100대 명산도 함께 올랐죠. 지난주에도 방태산(강원도 인제)에 다녀왔어요.”
국내에선 전국의 명산을 오를 기회가 많다. 지리산의 경우 동서울터미널에서 밤 12시 버스를 타고 내려가 새벽 4시 좀 넘어 산을 타기 시작할 수 있고, 하산한 뒤 오후 늦게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올 수 있다. 체력에 자신 있는 사람은 천왕봉까지도 다녀올 수 있다. 오를 산을 정해서 버스를 전세한 뒤 남은 자리를 비회원들에게 유료로 제공하는 산악회도 많다. 마음만 먹으면 자가용 차를 이용하지 않고도 전국의 명산을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 이 교수는 “지방자치단체가 등산로도 잘 정비해 놓아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고 했다.
“전 버스나 KTX를 타고 가기도 하지만 자가용 차를 자주 이용합니다. 현지에 가서 다시 버스나 택시를 갈아타고 가야 해 좀 번거롭거든요. 물론 버스에 내려 바로 등산하는 곳은 버스를 이용하고요.”
등산으로 체력이 좋아진 그는 히말라야와 킬리만자로, 북알프스 트레킹까지 다녀왔다. 6~7시간 산행을 해도 거뜬하다. 등산은 그에게 많은 혜택을 줬다.
“혈당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고 무엇보다 매년 건강 검진할 때 혈관 나이가 5~6년은 젊게 나와요. 그리고 체력이 좋아지니 수술도 더 집중해서 할 수 있게 됐죠. 산을 오를 때 힘들지만 정상을 찍고 내려오면 환자 수술을 잘 마친 것과 비슷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요.”
주말 등산만으로 건강해질 수 있을까? 미국의학회지(JAMA)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주말 전사(Weekend Warrior·격렬한 운동을 주말에 몰아서 하는 사람)’도 국제보건기구(WHO)의 가이드라인을 따른다면 건강을 유지하며 다양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WHO는 주당 75~150분 이상의 격렬한 운동이나 150~300분 이상의 중강도 운동을 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격렬한 운동은 수영이나 달리기, 테니스 단식 경기, 에어로빅댄스, 시속 16km이상 자전거 타기를 말한다. 중강도 운동은 시속 4.8km로 걷기나 시속 16km 이하 자전거 타기, 테니스 복식경기 등을 말한다.
‘스포츠 천국’ 미국 헬스랭킹에 따르면 WHO 기준에 맞게 운동하는 사람은 23%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엔 주말만 등산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직장인들의 경우 매일 운동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주말을 활용에 산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등산은 한번 하면 1,2시간에 끝나지 않는다. 보통 4~6시간 걸린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는 중강도 이상의 운동을 240분 이상 하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말 산행만으로도 건강을 지킬 수 있으니 등산 인구가 많은 것이다.
좋은 공기를 마시며 나무와 숲, 바위, 개울 등을 보며 산을 오르는 것 자체로 즐겁다. 이 교수는 “솔직히 가파른 산을 오를 때는 힘들다. 하지만 정상에 서면 산밑에서 보는 것이랑 완전히 다른 경관이 펼쳐진다. 스트레스가 확 날아간다”고 했다. 그는 “전국의 명산이 다 좋지만 계절 별로 끌리는 산이 따로 있다. 여름엔 계곡이 좋은 대야산, 가리왕산, 방태산 등이 좋다. 겨울의 설산은 한라산과 설악산이 환상적이다. 남덕유산도 좋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늦게 등산을 시작한 이 교수는 철저한 준비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산을 적게는 4시간, 많게는 7,8시간 타야 하는 등산은 준비를 잘해야 부상 예방도 하고 생명도 지킬 수 있다. 그는 “등산화에 배낭, 스틱 등 기본 장비를 잘 갖춘 뒤 어느 산을 어느 코스로 갈지, 산행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당일 날씨에 따른 복장 등을 미리 체크해 준비한다. 다양한 정보를 주는 등산앱도 활용한다. 의사는 수술 전에 준비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에 따라 수술의 성과가 달라진다. 등산도 마찬가지다”고 했다. 그는 “유산소 운동인 산행 자체로 치매 예방이 되는데 등산 준비에도 머리를 많이 써야 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등산이 몸에는 좋지만 조심할 게 많다”고 강조했다.
“하산할 때는 체중의 5~6배의 하중이 실리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무릎과 발목 관절에 무리를 줄 수 있죠. 특히 나이가 들어서 등산을 시작할 경우에는 관절 부위 근력이 떨어져 있어 더 조심해야 합니다. 낮은 산부터 올라 하체 근력을 키운 뒤 높은 산에 도전해야 합니다.”
이 교수는 산을 오르내리는 속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등산하다 보면 뒤에서 누가 추월할 경우 경쟁심이 발동해 빨리 가는 경우가 있는데 절대 그럴 필요가 없다. 자신의 페이스에 맞게 천천히 풍광을 즐기며 오르면 된다. 힘들면 쉬었다 가야 한다”고 했다. 등산 스틱을 잘 활용하면 하체가 받는 하중의 20~30%를 줄여줄 수 있다. 또 스틱 활용은 상체 근육을 키워줘 조화로운 몸매를 유지시켜준다.
스틱(폴)을 활용한 노르딕워킹이라는 운동이 있다. 노르딕워킹은 노르딕 스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걷기 방법으로 ‘폴 워킹(Pole walking)’이라고도 한다. 낮은 언덕과 평지가 대부분인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발달한 노르딕 스키는 평지와 언덕을 가로질러 긴 코스를 완주하는 거리 경기 등으로 나뉘는데 평지와 언덕을 걷는 것으로 발전시킨 것이 노르딕워킹이다. 폴을 사용해 걷기 때문에 자세가 좋아지고 전신의 근육을 쓰기 때문에 운동량도 배가 된다. 걸을 때 허벅다리 장딴지가 가동하는데 폴을 잡고 밀면서 걸으면 팔과 어깨 근육은 물론이고 대흉근과 견갑근, 광배근, 척추기립근 등 상체의 큰 근육도 힘을 쓰게 된다. 이 교수는 “스틱을 제대로 쓴 뒤부터 건강 검진 때 상체 근육이 향상된 것으로 나왔다”고 했다.
이 교수는 관절염이 심한 경우가 아니면 등산을 권한다. 그는 “등산하게 되면 특히 허벅지 근력이 아주 좋아진다. 근력이 좋아지면 관절염을 예방할 수 있고 관절염이 있어도 덜 아프다”고 했다.
이 교수는 가급적 산행을 혼자 한다. “함께 하면 서로의 페이스를 맞추지 못해 당황하는 경우가 많아요.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하고…. 한번은 친구들이랑 산행을 하는데 갑자기 한 친구가 가슴이 답답해 내려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서로 당황했죠. 과거엔 혹 사고가 날 경우를 대비해 몇 명씩 어울려 다녀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산악구조대도 잘 갖춰져 있고, 특히 등산앱이 안전까지 책임져 주기 때문에 혼자 산행을 해도 큰 어려움이 없어요.”
이 교수는 매일 1만5000보 이상 걷는다. 퇴근한 뒤 서울 집(용산) 근처 한강 공원을 1~2시간 걷는다. 병원(인천 남동구) 출퇴근도 가급적 전철을 이용한다. 그는 “출퇴근 시간에 막혀 낭비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전철을 타면 더 많이 걷게 된다”고 했다. 등산으로 건강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생활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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