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칼럼]응급의료 위기 심화… 비응급 경증환자, 제도적 관리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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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필자는 언론에서 응급의료 문제가 보도될 때마다 나와 내 가족에게 닥치지는 않을 사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규모 의대 증원 등 정부 의료 정책 추진으로 발생한 의료 혼란 상황에서 응급의료의 위기는 가장 먼저 노출됐고 이제 평일 야간과 주말, 공휴일에는 제대로 된 응급의료를 받기 어려운 지경까지 내몰리고 있다.

최근 해결책 중 하나로 비응급 경증 환자에 대한 진료 제한이나 119구급대 유료화와 같은 주장도 나온다. 예를 들어 인구 880만 명의 일본 오사카부에는 구급구명센터 16곳과 2차 병원 응급실 284곳 등 응급 관련 시설이 모두 300곳 있다. 이에 비해 인구 5000만 명인 한국에는 권역응급의료센터 44곳, 지역응급의료센터 136곳, 지역응급의료기관 228곳 등 응급 관련 시설이 모두 408곳뿐이다. 이렇게 ‘마른 수건 짜기’ 식으로 운영되는 국내 응급의료 현실에서 권역 및 지역응급의료센터에 비응급 경증 환자에 대한 진료 제한이 이뤄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전에는 매년 1000만 건을 넘던 응급의료 이용 가운데 40∼50%가 비응급 경증 환자들이었다. 현 상황에서 이들을 모두 지역응급의료기관에서 수용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만약 그렇게 하면 일반 환자 의료 이용에 심각한 제한을 받게 될 것이다. 또 현재의 저수가 구조에선 응급실 수익이 거의 없다 보니 병원들은 경영 관점에서 응급실 인력과 장비, 시설 등을 줄이고 있다.

결국 비응급 경증 환자들이 권역 및 지역응급의료센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조절해야 한다. 응급실 이용 본인 부담 비율을 높이거나 응급의료관리료의 2∼3배 정도로 ‘비응급 경증 환자 관리료’를 신설해 100% 본인이 부담하게 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 단기간에 응급의료 수가를 대폭 인상할 것으로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응급의학과 전공의(인턴, 레지던트)에 대한 수련 보조 수당 지급, 응급의료 공공정책수가 신설, 한시적 중증응급환자 전문의 진찰료 100% 인상 등의 정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응급 의료 형사적 처벌 면제와 민사 배상 최고액 제한과 같은 법률 제정 및 개정도 추진돼야 한다.

현재의 의료 공백은 위기 상황인 만큼 국민과 의료계, 정부가 허심탄회하게 지혜를 모으고 서로 양보 타협해야 한다. 경제도 복지도 의료도 ‘공짜 점심’은 없다.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응급의료 개선을 위해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응급의료#의료 공백#비응급 경증 환자#119구급대 유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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