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명봉 타다 집근처 산 300m 오르니 새 세상이 보여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8월 10일 12시 00분


“젊었을 때 산 잘 탄다는 평가에 너무 무리해서인지 이젠 높은 산을 못 타요. 오르는 것는 괜찮은데 내려올 땐 무릎 통증에 시달려요. 수술하지 않고 무릎을 보호하면서 등산을 즐기는 방법을 찾다 평지를 걷거나 낮은 산을 오르고 있어요. 그런데 낮은 산을 타다 보니 그동안 안 보이던 아름다움이 보이네요.”

박경이 전 국립산악박물관 관장이 산을 오르고 있다. 1997년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중 하나인 가셔브룸2봉(8035m)까지 올랐던 그는 이제 무릎 보호를 위해 평지를 걷거나 낮은 산을 타며 건강한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박경이 전 관장 제공.

한때 히말라야 8000m 14좌 중 하나인 가셔브룸2봉(8035m)까지 올랐던 여성 산악인 박경이 전 국립산악박물관 관장(58)은 요즘엔 가급적 낮은 산을 탄다. 무릎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강원 속초시에 사는 박 전 관장은 매일 영랑호 둘레길 8km를 걷거나, 주변 주봉산(331m)이나 청대산(230m)을 오른다.

“젊어서 설악산 오를 땐 못 느꼈던 설악산 전경(全景)의 아름다움을 주봉산 청대산을 타면서 제대로 느끼고 있어요. 솔직히 설악산 등산하면 오르는데만 신경을 쓰다보니 전체적인 경관을 감상하기가 쉽지 않아요. 정상에 올랐을 땐 그 산의 외관이 더 잘 보이죠. 명산 명봉을 오르는 것도 좋지만 집 근처 낮은 산에 올라도 그 주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더군요.”

박 전 관장은 서울교대 1학년 때인 1985년 산악부에 가입해 산을 타기 시작했다. 캠핑을 좋아해 산악부를 찾았는데 당시 산악부는 암벽 등반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잘못 알고 들어갔지만 나하고 잘 맞았다. 야영도 하고 등반도 하고. 암벽 등반에선 또래 중 가장 잘 탔다”고 했다. 북한산 인수봉에서 못 올라가는 코스가 없었고, 전국의 암벽 등반 명소도 많이 올랐다. 방학 땐 설악산 지리산 소백산 등 장거리 능선종주산행을 했다.

박경이 전 관장이 암벽을 오르다 포즈를 취했다. 박경이 전 관장 제공.
한국대학산악연맹 활동도 적극적이었다. 박 전 관장은 “산악부에 들어가니 자연스럽게 다른 대학과도 어울렸고 대학연맹 운영에도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대학 4학년 때 대학연맹 부회장으로 백두대간 종주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완성했다.

“선배들과 함께 백두대간 종주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백두대간 및 조선 시대 지리서 산경표 연구자인 고 이우형 선생님이 ‘산경표에 나와 있는 대로 백두대간을 실제로 답사해야 한다’고 부탁해서 시작했죠. 백두대간 개념이 생소하던 때라 대학연맹 집행부가 약 4달 동안 지도 수십 장을 강의실에 깔아놓고 산경표를 바탕으로 지도의 능선을 잇는 작업을 했었죠. 지금이야 백두대간이 널리 알려졌지만 그때는 정보도 없고 개인이나 산악회 차원에서 실행하기 어려운 프로젝트였어요. 백두대간을 15구간으로 나눈 후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지도를 들고 7월에 4박 5일간의 종주를 시작했죠. 전 이화령에서 속리산까지 내려가는 구간의 대장이었어요. 종주 후에 우리가 쓴 보고서가 발표되고, 1990년대부터 백두대간 종주 붐이 일어났죠.”

박경이 전 관장이 백두산 장백폭포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박경이 전 관장 제공.
히말라야도 올랐다. 1991년 아마다블람(6812m), 1997년 가셔브룸2봉을 올랐다. 가셔브룸2봉 정상에 오를 때 사실상 죽음 문턱까지 갔던 박 전 관장은 “아이 둘 낳은 뒤 올랐는데 ‘딱 죽기 알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모험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후 8000m 봉은 오르지 않았다. 그즈음 고 박영석 대장이 함께 히말라야 8000m 고봉을 등정하자고 했는데 거절했다. 대신 6000m급 봉우리를 올랐다. 2002년 아르헨티나 아콩카과(6962m), 페루의 안데스 쵸피칼키(6354m)와 와스카란(6768m)을 등정했다.

겨울엔 아이들과 스키를 즐겼다. 한창 스키를 탈 때 산악계 선배가 보고 산악스키 아시안컵대회 출전을 권유했다. 2007년 대회에 출전해 3위를 했다. 이를 계기로 국제 산악스키 심판자격증을 획득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박 전 관장은 을지대 스포츠아웃도어학과 교수, 국립산악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했다. 2022년 1월부터 2023년 6월까지 국립산악박물관 관장을 지냈다. 국립산악박물관은 우리나라 산악의 역사를 알리고 등산을 대중화하기 위해 2014년 세워진 국내 유일의 1종 국립박물관이다. 1종 박물관은 100점 이상의 유물과 학예사, 전시실, 수장고, 세미나실 등을 갖춘 시설 중 심사를 통해 국가 인증을 획득한 곳이다.

박경이 전 관장이 스키를 타고 있다. 박경이 전 관장 제공.
박경이 전 관장이 스키를 타고 있다. 박경이 전 관장 제공.
2021년 ‘영혼을 품다, 히말라야’란 책을 쓴 박 전 관장은 최근 다섯 명의 저자와 함께 ‘우리가 몰랐던 백두대간’이란 책을 냈다. 서울교대 산악회 선배인 김광선(76학번) 김우선(77학번) 신인수(78학번), 차성욱(00학번) 씨 등이 공동으로 책을 썼다. 그는 “‘히말라야’는 고산등반을 알리고 싶었고, ‘백두대간’은 사람들이 종주를 하면서도 백두대간에 대해 너무 몰라 설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등반엔 다양한 스토리가 있다. 6000m, 7000m, 8000m 등판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 7500m 그 위를 죽음의 지대라고 부른다. 죽음의 지대에서 발생하는 여러 신체적 위험요소와 산악인들은 여기에 어떻게 대응하면서 오를까?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어떤 일들이 발생하는가. ‘히말라야’에서 이런 궁금증을 설명하고 있다.

‘백두대간’은 백두대간에 얽힌 모든 스토리가 담겼다.

“백두대간 종주가 버킷리스트라는 사람들이 많아요.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있고, 하려는 사람들은 너무 많은데 백두대간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백두대간의 모든 것을 설명했습니다. 알고 종주하면 더 의미 있는 산행이 될 수 있습니다.”

박경이 전 관장이 설산에 올라 포즈를 취했다. 박경이 전 관장 제공.
‘백두대간’에는 조선시대에 백두대간으로 통했던 한 나라의 지리 체계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은 한 민족이나 사회의 무관심, 또는 집단 기억상실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 책자로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70여년간 잊혀졌다가 되찾은 백두대간’이라는 말의 허구를 필자들은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그게 결코 자발적으로 잊은 것이 아니라 식민통치기구에 의한 금지령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러면서 들이댄 1910년 11월 19일자 조선총독부 관보에는 금지되고 몰수당한 지리, 역사, 국어 교과서 목록이 빼곡히 들어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박 전 관장은 산악과 관련한 다양한 연구도 하고 있다. 이미 ‘고산등반의 의미에 관한 문화기술적 연구’, ‘산악연구의 동향 분석 및 미래연구 방향’, ‘국립산악박물관 체험프로그램 이용에 대한 만족도가 재방문에 미치는 영향’, ‘미래 산악관광 연구 방향에 관한 탐색적 연구’… 등 다양한 논문을 발표했다. 지금도 산악 연구와 저술을 하며 즐거운 산행을 하고 있다.

박경이 전 관장에 카약을 타고 있다. 박경이 전 관장 제공.
지난해 여름 일본 후지산(3776m), 올 6월엔 백두산(2744m)을 다녀온 박 전 관장은 최근 카약도 타기 시작했다. 카약은 호수나 강에서 타는데 캠핑을 하며 등산도 할 수 있다.

“집 근처 영랑호가 있어 카약을 시작했는데 정말 색다른 묘미를 줘요. 호수나 강 근처에는 산이 있어요. 캠핑 도구를 챙겨 카약을 타고 가다 보면 좋은 캠핑 장소가 나옵니다. 그리고 산도 오를 수 있죠. 산악 선진국에서는 카약을 산악스포츠로 부르고 있어요. 그 이유를 카약을 타 보니 알겠습니다.”

박 전 관장은 무릎을 최대한 보호하는 운동에 신경을 쓰고 있다. 무릎이 망가진 것은 젊었을 때 20~30kg의 배낭을 매고 고산을 올라서다. 그는 “무거운 짐을 지고 설악산 지리산 능선을 타다 보면 어느 순간 무릎이 펴지지 않기도 한다. 그땐 몰랐는데 나이 드니 고스란히 고통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무릎을 살살 사용하려고 노력하죠. 오래전부터 자전거를탔어요. 자전거는 무릎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전신 운동을 할 수 있어 좋았죠. 거의 매일 피트니스센터에서 무릎 주변 근육 강화운동도 많이 하고 있죠.”

박경이 전 관장이 자전거를 타다 포즈를 취했다. 박경이 전 관장 제공.
박경이 전 관장이 자전거를 타다 포즈를 취했다. 박경이 전 관장 제공.
박 전 관장은 거의 매일 운동한다. 주중 4~5일 걷거나 집 근처 낮은 산을 오른다. 헬스클럽도 자주 찾는다. 주말엔 고산의 능선을 천천히 오르거나 카약을 탄다. 그는 “고산 등반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낮은 곳을 찾으니 새로운 세상이 보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명산 명봉도 좋지만 집 근처 낮은 산을 올라도 건강도 챙기며 등산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등산#히말라야#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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