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자살률에도 항우울제 소비 낮아… 등잔 밑이 어두운 국가자살예방정책 [기고/심세훈]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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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세훈 순천향대 천안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심세훈 순천향대 천안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다는 오명을 가진 지 오래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2020년 연령표준화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4.1명으로 OECD 평균(10.7명)의 2배 이상이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올해 1∼5월 자살 사망자 수는 총 637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1% 증가했다. 응급실 기반 자살 시도자 사후관리 사업을 해왔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다.

필자는 2004년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자살 시도자가 내원하는 병원에서 그들을 치료했다. 누군가는 자살 문제는 일자리와 주거를 제공해 희망을 주면 해결된다고 한다. 하지만 ‘貧家之賙 天子其憂(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라고 했다. 일선에 있는 나 또한 이런 제안이 현실감 없이 느껴진다.

OECD 국가별 항우울제 소비량을 보면 한국은 2021년 기준으로 31개국 중 세 번째로 낮게 나타났다. 이는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약물 처방 등 치료율이 상대적으로 낮고 이력이 남지 않도록 비급여로 처방받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OECD 제출 의약품 소비량 산출 단위인 DID(DDD·1000명·일)는 인구 1000명 중 매일 의약품을 사용하는 사람의 수다. 10 DID는 1%의 인구 집단이 매일 해당 의약품을 복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DDD(Defined Daily Dose·일일 상용량)는 의약품 주성분의 주요 적응증에 대해 성인 한 명이 하루 동안 복용해야 하는 평균 유지 용량을 말한다. 2016년 OECD 평균 국가별 항우울제 소비량이 62.2에서 2022년 79.0으로 상승했지만 한국은 19.9에서 31.1 정도로 높아졌다. 이 수치는 우리나라보다 항우울제 소비량 순위가 하나 앞서는 리투아니아보다 낮은 수치여서 자살률의 순위와 항우울제의 소비량은 반비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20년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서는 심리 부검 면담 결과 보고서를 통해서 6년간(2015∼2020년) 수집된 심리 부검 자료를 바탕으로 자살 위험군을 도출하고 위험군별 자살 경로를 분석했다. 그리고 자살 경로의 길목마다 활용할 수 있는 자살 예방 대책을 제안했다. 취업난, 직장스트레스, 경제 위기, 신체 질환, 알코올중독 등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하기 바로 앞서 공통으로 겪는 경로 단계는 우울증, 공황장애, 불면증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였다.

그렇다면 자살 시도가 발생하기 직전의 길목을 차단하는 것이 가장 좋은 예방법이 아닐까?

정부는 7월 286억 원의 예산을 들여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우울, 불안 등 정서적 어려움이 있는 이들에게 전문적인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마음 건강 돌봄, 자살 예방, 정신질환 조기 발견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사업 내용을 세세히 살펴보면 오히려 치료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항우울제 소비량을 줄여 정신건강 문제가 악화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심신을 단련해 마음을 평온하게 하면 좋겠지만 이것은 너무 이상적인 관점이고 실제 뇌과학에서는 항우울제를 복용해 뇌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백약 처방이 무효인 현실에서 진짜 약(항우울제)은 제대로 한번 못 써본다. 차라리 예산을 항우울제 처방에 보태는 것이 그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지 않을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이라도 정부와 관련 기관은 항우울제 소비량 순위를 높이기 위해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해소와 정신건강의학과 접근성을 높이는 데 주력해 주기를 바라본다.

#헬스동아#건강#의학#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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