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 씨(63)는 7월 27일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500회째, 8월 4일 100km 이상 울트라마라톤을 100회째 완주했다. 20년간 대회에 출전해 달린 거리만 3만1000km가 넘는다. 이 씨는 8월 17일부터 18일까지 부산 해운대에서 열리는 제20회 부산썸머비치울트라마라톤 100km에 출전한다. 100km 100회를 완주하고 2주 만에 다시 달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100km를 100회 넘게 달린 사람은 그가 국내 36번째라고 했다.
이 씨는 등산을 즐기다 2004년 마라톤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동문들이 주축이 된 휘문교우마라톤동호회(휘마동)를 만나면서다. “산을 타다 2003년 우연한 기회에 10km 단축마라톤에 출전했어요. 기록이 52분대였는데 다른 사람들이 기록이 좋다고 마라톤을 해보라는 겁니다. 그래도 막상 할 엄두를 못 내다 휘마동을 알게 됐죠. 2004년 1월부터 함께 달렸습니다.”
휘마동은 매주 둘째 넷째 토요일 오후 3시에 서울 한강 여의도공원이나 남산에서 만나 달린다. 2002년 결성된 휘마동은 회원 수가 100여 명에 매번 참석하는 인원은 30명가량이다. 백두대간 종주를 할 정도로 산을 많이 타서 하체가 잘 발달한 덕분인지 그는 마라톤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2004년 3월 풀코스에 처음 도전해 4시간 56분에 완주했다. 그해 말 4시간30분, 2005년 10월 3시간 58분으로 ‘서브포(4시간 미만 기록)’를 달성했다. 최고 기록은 2012년 3월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서 세운 3시간 32분. 동아마라톤은 2005년부터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달렸다. 이 씨는 2012년이 개인적으로 마라톤으로 최고의 해였다. 마라톤 풀코스를 약 50회 달려 100회째를 완주했고, 울트라마라톤 100km 2회 완주에 대한민국 횡단 308km도 성공했다. 대한민국 횡단 308km는 인천시 강화에서 출발해 강원도 강릉 경포대로 골인한다.
“2009년 울트라마라톤을 처음 달렸습니다. 풀코스를 완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울트라마라톤이 보이더라고요. 그해 4월 서울 남산에서 열린 50km를 완주했고 6월 처음 100km를 13시간 50분에 완주했어요. 풀코스와 병행하며 1년에 100km 이상을 2~3차례 달렸는데 2017년 1961년생 소띠울트라마라톤모임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달리게 됐습니다.”
‘소띠모임’은 훈련을 함께하는 게 아니라 전국 울트라마라톤대회를 함께 출전하는 전국 단위 동호회다. 대한울트라마라톤연맹(KUMF)에 가입한 회원들 중심이다. 그는 “전국에 흩어져 있어 모여 훈련하기는 힘들다. 대회에서 만나 즐겁게 달리고 회포를 푸는 모임”이라고 했다. 이 씨는 2017년 8회, 2018년 17회, 2019년엔 무려 25회나 100km 이상 대회를 뛰었다. 2019년 6월엔 200km도 34시간 42분에 완주했다. 100km 개인 최고기록은 2018년 11월 세운 11시간33분. 하지만 13시간에서 16시간까지 천천히 달리고 있다.
“사람들이 울트라마라톤하면 겁부터 먹습니다. 그런데 마라톤 풀코스보다 더 쉬워요. 전 오르막은 걷고 평지와 내리막에서만 달립니다. 중요한 것은 기록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입니다. 힘들면 쉬었다 갑니다. 10시간 이내에 들어오려고 열심히 달리는 분들도 있는데 그럼 몸이 망가질 수도 있습니다. 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다친 적이 없습니다.”
이 씨는 마라톤 시작 초반에는 훈련을 체계적으로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훈련하지 않고 대회 출전만 하고 있다. 이 씨는 “풀코스를 4시간 이내로 들어오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데 훈련하는 게 스트레스가 됐다. 매일 달리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폴코스 50번 완주한 뒤부터는 훈련하지 않고 대회만 뛰고 있다”고 했다. 휘마동 모임을 나가며 거의 매 주말 대회에 출전했다. 전국의 마라톤대회는 거의 다 달렸다. 마라톤 풀코스도 기록이 아닌 완주 그 자체가 목표다.
스포츠 과학적으로 주말 마라톤 대회 출전만으로도 충분히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미국의학회지(JAMA)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주말 전사(Weekend Warrior·격렬한 운동을 주말에 몰아서 하는 사람)’도 국제보건기구(WHO)의 가이드라인을 따른다면 건강을 유지하며 다양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WHO는 주당 75~150분 이상의 격렬한 운동이나 150~300분 이상의 중강도 운동을 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격렬한 운동은 수영이나 달리기, 테니스 단식 경기, 에어로빅댄스, 시속 16km이상 자전거 타기를 말한다. 중강도 운동은 시속 4.8km로 걷기나 시속 16km 이하 자전거 타기, 테니스 복식경기 등을 말한다.
이 씨는 풀코스의 경우 4시간 안팎, 100km의 경우 14시간 정도를 달린다. 거의 매주 대회에 출전했으니 WHO 기준을 훨씬 초과한다. ‘스포츠 천국’ 미국 헬스랭킹에 따르면 WHO 기준에 맞게 운동하는 사람은 23%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엔 주말만 마라톤에 출전하는 사람들과 등산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직장인들의 경우 매일 운동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주말을 활용에 마라톤대회에 출전하거나 산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마라톤은 풀코스의 경우 최소 4시간 이상, 등산도 보통 4~6시간 걸린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는 중강도 이상의 운동을 240분 이상 하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말 산행만으로도 건강을 지킬 수 있으니 등산 인구가 많은 것이다. 주말 대회만 참가하는 마라토너들이 많은 이유기도 하다.
3년전 다니던 회사를 정년퇴직하고 2년 전부터 개인택시를 모는 이 씨는 택시를 운전하면서 하루 600~700보 밖에 걷지 못해 훈련이 필요한 상태가 됐다고 했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이후 마라톤대회가 크게 준 것도 그의 경기력을 떨어뜨렸다. 대회 출전 수가 적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최근 풀코스에서 ‘서브포’ 기록을 내기 힘들고, 100km도 16시간을 훌쩍 넘어섰다. ‘펀런(즐겁게 달리기)’도 기본적인 체력이 돼야 할 수 있다.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 풀코스 ‘서브포’를 만든 뒤 다시 즐겁게 대회 출전만 할 계획이다.
등산과 마라톤 풀코스, 울트라마라톤의 차이는 뭘까?
“산행은 좋은 공기 속에서 멋진 경관을 구경하면서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있고요. 마라톤 풀코스는 일정 시간 안에 들어와야 한다는 생각에 달리는 데만 집중해야 합니다. 대신 잡념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울트라마라톤은 언뜻 보기에 힘들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전 울트라마라톤이 더 쉬워요. 거리만 길지 난이도는 더 낮아요. 전 지인들하고 얘기하면서 즐겁게 달립니다. 생각의 차이입니다. 기록을 포기하고 여유를 찾으려 합니다. 완주하면 몸 안의 온갖 찌꺼기가 빠져나간 느낌이죠. 이 재미로 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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