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마흔 살을 앞두고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숨쉬기 운동이 전부였거든요. 취미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 사이클을 타게 됐습니다. 당시 제가 시간을 마음대로 조율할 수 있는 부서가 아니라 배드민턴이나 테니스 등 다른 사람들과 일정을 맞춰서 하는 운동은 엄두를 못 냈죠. 저 혼자 할 수도 있고, 누군가와 같이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았고, 당시 제 형님도 타고 있어서 사이클을 선택했습니다. 운동하면서 여행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사이클의 장점이 많았어요.”
LG유플러스 보안운영팀 책임 김창우 씨(47)는 대전에서 근무할 때부터 건강과 취미를 위해 사이클을 타기 시작했고, 지금은 하루에 400km도 주파할 수 있는 고수가 됐다. “처음엔 퇴근한 뒤 1~2시간 정도를 거의 매일 탔어요. 주말이나 휴일엔 4대강 등 전국 투어를 다녔죠. 사이클 입문 2년 만에 인천에서 부산 을숙도까지 국토종주를 포함해 전국 12개 자전거도로를 완주하는 1853km 국토종주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죠. 2018년 서울로 발령받은 뒤에는 출퇴근을 사이클로 했죠.”
경기 고양시 일산 집에서 서울 마포구 상암동 회사까지 왕복 50km를 달렸다. 편도로 약 22km인데 퇴근할 때 하늘공원 노을공원을 오르내린 뒤 집으로 가면 하루 50km 정도를 달렸다. 비가 와도 탄다. 눈이 오면 어쩔 수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사이클을 타고 몸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체중에는 변화가 없었는데 지방이 거의 다 빠지고 근육질 몸매가 됐죠. 사이클 타기 전엔 환절기만 되면 몸살로 앓아누웠고, 기침도 많이 했어요. 라이딩을 한 뒤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걸린 것 빼고는 감기 한번 걸린 적이 없습니다. 제가 처음엔 서울에서 부산까지 약 440km를 4박 5일에 갔는데 지금은 하루면 갑니다. 최근 3일간 서울-부산 왕복 1000km로 설계한 대회가 있었는데 첫날 360km, 둘째 날 340km, 마지막 날 300km를 달려 완주하고 왔죠.”
사이클이 유산소운동으로 알려졌지만 근육단련에도 큰 도움이 된다. 사이클을 타다 보면 오르막과 내리막을 달려야 하는데 오르막을 오를 땐 하체와 복근, 상체 등 전신의 근육을 단련시킨다. 이런 이유로 젊은이들은 서울 남산 인왕산 북악산 등 2~3km를 계속 오르는 업힐라이딩을 즐기기도 한다. 전국, 특히 경기 강원 쪽에 업힐라이딩 유명 코스가 많다. 허리가 좋지 않은 사람들도 사이클을 타고난 뒤 허리 부근 근육이 좋아져 통증이 사라졌다는 사례도 많다. 특히 사이클 등 자전거는 무릎 등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유산소 무산소 운동이 돼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좋은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김 씨는 2019년부터 한국란도너스협회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란도너스(Randonneurs·랑도뇌르)는 프랑스어로 ‘한 바퀴를 도는 여행자’라는 의미인데 200~1200km 사이 또는 그 이상의 긴 거리를 외부 도움 없이 자신의 힘만으로 달리는 사이클리스트를 가리키기도 한다. 꼭 사이클이 아니어도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탈 수 있는 것이면 되지만 대부분 사이클을 탄다. 비경쟁 사이클투어가 목적이다.
란도너스가 된 1년 뒤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사이클을 타고 강원도 고성에서부터 지리산 정령치까지 백두대간 줄기 도로를 달리는 것이다. 총 1760km, 상승고도만 4만m가 넘는 지옥의 코스가 4개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구간마다 400~460km의 거리, 상승고도 1만m의 고난도 업힐코스를 규정 시간(15km/1시간) 안에 달리며 4개 코스를 1년 안에 완주하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라간다.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 우회하지 못하도록 주요 체크포인트(CP)에서 인증을 해야 한다. 란도너스 2만여 명 중 백두대간을 종주한 회원은 100명이 되지 않는다.
김 씨는 한국란도너스협회에서 주는 ‘R12상’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1년간 매월 200km 이상 대회를 한 번 이상 완주하면 메달을 준다. 김 씨는 4년 연속 이 메달을 받았고 5년 연속 수상을 눈앞에 두고 있다. 김 씨는 한국란도너스협회에서 제공하는 챌린지 중 어드벤처를 특히 좋아한다. 어드벤처 챌린지는 험난하고 오지의 작은 길을 달려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
“어드벤처 챌린지는 산속 깊이 들어가 임도를 달립니다. 자갈길을 달리기도 하고, 아스팔트가 아닌 시멘트길을 달리기도 하죠. 차도 없고 사람들도 없어 고요하죠. 무엇보다 자연의 멋진 경관을 관람하며 달리는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김 씨는 24개의 어드벤처 코스 중 매년 6개 이상의 어드벤처 코스를 완주하면 주는 ‘어드벤처 시리즈’상을 2020년부터 3년 연속 받았다. 2020년엔 12개 코스를 완주했고, 2022년엔 24개를 모두 완주했다.
김 씨는 백두대간 종주는 현재까지 단 한 번만 했다. 너무 힘들어서다. “란도너스 대회는 200, 300, 400, 600, 1000km 등이 있습니다. 그중 저에게는 400km가 가장 힘들어요. 400km 제한시간이 27시간인데 저는 빨리 마치자는 주의라서 20~22시간에 끝냅니다. 그런데 백두대간은 상승고도도 높은 데다 한번 끝내는 코스가 400~460km로 설정돼 있어요. 그렇다 보니 저로선 몸을 극한으로 몰아가게 됩니다. 한 번 했으니 나중에 천천히 다시 하려고 합니다.”
김 씨는 지난해 6월 부산을 출발해 전남, 전북, 충남, 충북, 서울, 강원, 경북, 경남을 지나 부산으로 돌아오는 2030km를 달렸다. 부산시가 2030년 엑스포 유치를 기원하며 203시간 안에 완주하는 사이클 대회에 참가해 8일 만(192시간)에 완주한 것이다. “사실 지난해에 프랑스 유명한 란도너스 대회인 PBP(파리에서 브레스트 왕복 1200km)에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부산 2030km를 완주하기 위해서 다음 기회로 미뤘죠. 4년에 한 번씩 열리니 3년 뒤엔 꼭 PBP를 완주할 겁니다.”
김 씨는 3년 전부터는 아내와도 함께 사이클을 탄다. 지금까지 200km 이상 챌린지를 3회 함께 완주했다. 하지만 아내는 장거리 챌린지 보다는 가볍게 달린다. 그는 “긴 거리를 안 달릴 땐 아내와는 가까운 거리를 즐겁게 산책하듯 달린다. 커피도 한잔하고 맛난 것도 먹으면서. 나도 란도너스로 해야 할 것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즐겁게 사이클을 탈 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꾸준하게 사이클을 즐기는 게 목표다. “마라톤과 같이 사이클도 정직한 운동입니다. 최소 주 3일 이상은 안장 위에 올라 페달을 밟아야 합니다. 즐기려면 200~400km를 타도 아무렇지 않은 몸을 만든다면 20~60km는 즐기면서 탈 수 있잖아요. 시속 30~40km를 달릴 수 있으면 시속 25km로 달리면 훨씬 덜 힘들죠. 늘 그런 몸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70, 80세가 넘어서도 란도너로 살고 싶습니다.”
김 씨는 3년 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제 주위에 사이클을 잘 타시는 분들을 보니 다 달리고 있더라고요. 1km를 4분 30초에 달리시는 분도 있고요. 저도 사이클을 더 잘 타고 싶어 달리기 시작했죠. 처음엔 1km를 7분에 달렸죠. 그런데 유산소 운동인 사이클을 오래 타서인지 바로 페이스가 떨어지더라고요. 지금은 1km를 5분 페이스로 달릴 수 있죠.”
점심시간에 피트니스센터로 가 20~30분 달린다. 사이클 장거리 투어가 없는 날엔 10~20km를 달린다. 마라톤 21.0975km 하프 코스도 여러 차례 완주했다. 최고 기록은 1시간43분. 그는 “내년엔 풀코스를 완주할 계획”이라고 했다.
“달려보니 왜 사람들이 달리는지를 알게 됐습니다. 하체부터 상체까지 우리 몸의 기초 근육을 잘 만들어주더라고요. 잘 달리면 다른 운동도 더 잘하게 됩니다. 제가 이렇게 운동하는 이유는 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는 동안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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