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습관 고치는 법
일상 좀먹는 나쁜 습관 연구 활발
자아고갈 이론 “의지력 총량 한계”… 유혹에 맞서지 말고 상황 피해야
최종 보상 대체할 좋은 습관도 도움… 습관 반복하는 근본적 동기 찾아야
“10분만 보다 자야지.”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 각종 사건 사고 기사부터 연예인 가십, 지인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데이트 소식까지 확인할 게 많다. 아뿔싸! 무심코 쇼츠 영상을 누르고 말았다. 철저히 나만을 위해 준비된 유혹적인 알고리즘의 초대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 역시 10분은 너무 짧다. 20분만 더, 30분만 더…. 어느새 눈이 말똥말똥해져 버리고 말았다. ‘꿀잠’은 멀어지고, 자연스럽게 내일도 피곤한 하루가 예약됐다.
왜 몸과 마음 건강에 그다지 좋지 않은 습관들은 하나같이 즐거울까. 스마트폰뿐만 아니다. 식사 후 커피와 함께 생각나는 케이크의 유혹은 다이어트 다짐을 흔들리게 한다. 출출한 밤 치킨과 라면의 야식 유혹도 치명적이다. 금주·금연 실패 사례는 우리 주변에 셀 수 없이 많다. 안 좋은 줄 알면서도 자꾸 반복하는 나쁜 습관들은 즉각적인 만족감을 주기에 고치기 쉽지 않다.
물론 우리가 항상 유익하고 건설적인 행동만 하며 살 수는 없다. 다만 의지와 관계없이 습관에 끌려다니며 수면 부족, 체중 증가 등 부작용에 힘겨워한다면 얘기가 다르다. 의지박약의 문제일까. 어떻게 하면 끊어버리고 싶은 나쁜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살펴보자.
● 억지로 참는 데도 에너지가 들어간다
마음먹은 대로 한순간에 딱 끊어 버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쁜 습관을 없애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서 심리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의지력과 습관에 관한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해 왔다.
그런데 아직도 인간의 의지력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견해는 학자마다 다르다. 이 가운데 의지력 연구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미국의 로이 바우마이스터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의 의지력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보는 대표적인 학자다. 그는 의지력과 관련해 ‘자아 고갈(Ego Depletion)’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의지력을 많이 쓸수록 심리적 에너지가 고갈돼 다른 일에 쓸 힘이 모자라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우마이스터 교수가 의지력이 유한하다고 주장한 여러 연구 중에 초콜릿과 무 실험이 있다. 연구진은 대학생 67명을 모집해 세 그룹으로 나누고, 두 그룹 학생만 갓 구운 초콜릿 쿠키 냄새로 가득한 실험실로 초대했다. 사전에 한 끼를 굶고 오라고 요청받은 학생들은 무척 배가 고픈 상태였다.
연구진은 학생들 눈앞에 초콜릿 쿠키와 무가 각각 담긴 접시를 놔뒀다. 그리고 얄궂게도 한 그룹 학생들에게만 쿠키를 먹으라고 했다. 나머지 한 그룹 학생들은 눈앞의 달콤한 쿠키 대신 무의 쓴맛만 봤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그룹은 대조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아무 음식도 없는 공간에 따로 불렀다.
그런 다음 종이에서 연필을 한 번도 떼지 않고 기하학적 모형을 한 번에 그려 완성하는 어려운 문제를 풀도록 했다. 문제 풀이 결과를 살펴보니, 세 그룹 중 무를 먹으며 쿠키를 향한 욕망을 꾹 눌러 참았던 학생들만 문제 풀이 의지가 크게 떨어졌다. 이들은 단 8분 만에 포기해 버렸다. 쿠키를 먹은 학생들은 평균 19분, 아무것도 먹지 않은 학생들이 평균 21분을 도전한 것과 비교된다. 연구진은 “무를 먹은 학생들이 쿠키의 유혹을 참느라 정신적 에너지를 써버려 문제 풀 여력이 없었다”고 봤다.
자아 고갈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억지로 참는 의지만으로는 나쁜 습관을 고치기 어렵다. 참을 때마다 에너지가 들어가기 마련인데, 마침 에너지가 부족한 날엔 절제에 실패할 수 있어서다. 그래서 바우마이스터 교수는 “의지력이란 마치 근육과 같아서 일정 시간에 쓸 수 있는 힘이 한정돼 있다”고 했다.
물론 이러한 견해에 대해 인간의 의지력을 너무 단순한 구조로 바라봤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그러나 자기 의지력을 과신할수록 유혹에 잘 넘어간다는 연구 결과를 참고하면, 오히려 ‘내 의지력엔 한계가 있다’는 겸손한 마음이 도움 된다. 로런 노드그렌 미 노스웨스턴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자기의 의지력을 과대평가하고 ‘나는 유혹에 끄떡없는 사람’이라고 과신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배고픔이나 금연 중 흡연 충동에 굴복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 이길 수 없으면 피해라
이 실험에서 주목할 점이 또 있다. 쿠키의 존재를 몰랐던 세 번째 그룹 학생들은 쿠키를 먹은 그룹과 비슷한 수준으로 끈기 있게 문제 풀이에 도전했다. 즉, 애초부터 유혹이 없으면 심리적 에너지를 쓸 일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 실제로 의지력이 강한 사람들은 남들보다 유혹을 잘 참는다기보다 애초부터 참아야 하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다.
빌헬름 호프만 독일 보훔 루르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진은 어떤 사람들이 나쁜 유혹에 잘 넘어가는지 살펴봤다. 여기서 나쁜 유혹이란 다이어트나 금연, 금주 다짐 등을 흔드는 상황을 말한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 205명을 모집해 일주일 동안 실험용 호출기를 나눠줬다. 그리고 알람이 울릴 때마다 당시에 가장 유혹적인 욕구는 무엇인지, 잘 참아 냈는지, 어떤 상황에 누구와 있었는지 기록하도록 했다.
자료를 분석해 보니 원래 유혹을 잘 참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누구나 유혹적인 상황에 놓이면 심하게 갈등했다. 그런데 유혹에 굴복한 횟수가 적은 사람들을 살펴보니, 이들은 애초부터 유혹을 느낄 만한 환경을 만들지 않는 특징이 있었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 중에는 집에 있는 과자를 전부 버리거나, 먹음직스러운 디저트가 전시된 카페에 가지 않는다. 반면, 유혹에 잘 넘어가는 사람들은 집에 여전히 과자가 널려 있고, 맛있는 케이크를 파는 카페를 지나가면서 사 먹을까 말까 치열하게 고민한다. 이들은 유혹을 이겨내 보려고 심리적 에너지를 훨씬 많이 쓰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할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나쁜 습관을 고치려면 유혹에 맞서 싸우기보다 도망치는 게 훨씬 도움 된다. 의지력은 순간을 잘 모면하는 것뿐 아니라 환경을 조성하는 전략적인 능력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담배를 끊으려면 담배 가게를 멀리 돌아서 가야 하고, 스마트폰 의존 습관을 고치고 싶다면 자주 접속하는 SNS 앱 알림을 끄거나 삭제해 버리는 것도 방법이다.
● 내가 진짜 원하는 것? 습관 바꿔치기의 열쇠
습관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유혹을 원천 봉쇄하는 것만큼 추천하는 다른 방법은 나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과연 말만큼 쉬운 일일까.
핵심은 나쁜 습관을 반복하는 근본적인 동기를 살펴보는 데 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찾아보는 것이다. ‘습관의 힘’의 저자 찰스 두히그는 습관이 ‘신호→반복적 행동→보상’ 순서로 이어진다고 봤다. 특정 환경은 습관을 부르는 신호로 작동하고(예를 들면 ‘밤늦게까지 TV를 본다’), 습관 행동이 따라오면(‘맥주와 치킨을 시켜 먹는다’), 그에 따른 보상(‘일탈감’)을 얻게 된다. 마지막에 보상으로 얻는 것이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다.
브래드 듀프린 미 서던미시시피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 원리를 이용해 손톱이 거의 다 없어질 때까지 병적으로 손톱을 물어뜯는 학생을 치료한 과정을 ‘손톱 물어뜯기 치료의 기능적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소개했다.
그는 여러 차례 상담을 통해 ‘학생이 혼자 있거나 TV를 보며 지루할 때(신호) 손톱을 물어뜯고(반복적 행동), 신체적 자극을 느끼면서 만족감을 느낀다(보상)’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보상은 유지한 채 다른 행동으로 손톱 물어뜯기를 대체해 보기로 했다. 손톱을 물어뜯고 싶을 때마다 얼른 주먹을 꽉 쥐거나 물건을 손에 잡는 습관으로 바꿨더니 손톱을 훨씬 덜 물어뜯게 됐다.
자, 그러면 보상은 유지한 채 나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바꿔 보자. 자기 직전 스마트폰을 보면서 얻는 보상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자기 전 아무 생각 없이 이완되고 싶은 게 진짜 목적이라면 명상이나 독서 같은 건설적인 습관으로 바꿀 수 있다. 또 점심을 잘 먹고도 오후에 초콜릿이나 과자를 먹는 습관이 있다면, 이로 인해 잠을 깨고 싶은 건지, 쉬고 싶은 건지, 진짜 배가 고픈 건지 살펴보자. 목적에 따라 바람 쐬기, 커피 마시기 등 뱃살 걱정 없이 대체할 행동이 얼마든지 있다. 진짜 배가 고픈 거라면 건강한 음식으로 바꿔 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아, 그렇다고 꼭 무를 먹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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