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이 2011년 출간한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문학동네) 속 한 문장이다. ‘어둠 속의 대화’라는 소제목이 말해주듯, 그와 그녀는 지금 어둠 속에 있다. 학원에서 고대 그리스어를 가르치는 그는 선천적 질병으로 시력을 잃어간다. 하필 이날 저녁 학원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희미하게나마 사물을 가늠하게 해주던 안경마저 잃은 참이다. 그에게 어두컴컴한 계단 아래는 다시 일어설 힘마저 삼켜버리는 어둠이다.
그런데 이때 피 흘리며 쓰러진 그에게 한 여자가 다가온다. 그녀는 그가 가르치는 고대 그리스어 수업을 듣는 수강생이다. 그녀는 이혼 후 아이의 양육권을 빼앗기고 말을 잃어버렸다. 말을 할 수 없는 그녀가 어둠 속에 놓인 그를 일으켜 세운다. 온몸으로 그를 부축해 그가 사는 단칸방으로 이끈다. 어둠이 내려앉은 방에서 그는 그녀에게 자기 삶의 이야기를 터놓기 시작한다. 침묵 속에 놓인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은 기척을 내는 것뿐이다. 조심스럽게 발을 움직이고, 머리를 쓸어 넘기는 식으로. 그러면 끊어질 듯했던 이야기가 자꾸만 이어진다.
진정한 어둠 속에서 우리는 볼 수 있을까. 말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말할 수 있을까. 말의 부재는 사랑마저 침묵 속으로 삼켜버릴까. ‘희랍어 시간’은 한 사람이 한 사람의 삶을 관통하는 데 꼭 한마디 말이 필요한 건 아님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저 누군가의 곁을 지키며 내어주는 기척이면 된다. 볼 수 없는 남자와 말할 수 없는 여자가 ‘어둠 속의 대화’를 나눈 것처럼. “나 여기 있다”는 몸짓만으로 서로에게 닿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엄마가 말을 하지 못하게 됐을 때 침묵을 견딜 수 없었다.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던 엄마는 1년간의 투병 끝에 다다랐을 무렵 말을 하지 못했다. 식도까지 암이 전이돼 물조차 삼킬 수 없었던 탓이다. 당시 중학교에 갓 입학했던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급식으로 스파게티가 나왔는데 맛있었다는 둥 교복 치마 밑단을 조금 줄이고 싶다는 둥 미주알고주알 떠들면 엄마는 말없이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그때 나는 제풀에 지쳐 입을 다물고 병실에 놓인 TV를 틀었다. 무거웠던 병실 안의 침묵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엄마와 작별할 순간이 찾아왔을 땐 막막함이 밀려왔다. 내가 질문했을 때 답을 주던 사람이 사라지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답을 들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임종 직전 엄마의 귀에 대고 내가 가까운 미래에 해낼 수 있는 일들을 해내기로 약속했다. “중간고사 잘 볼게. 밥 잘 챙겨 먹고 동생이랑 잘 지낼게. 교복도 잘 다려 입고 다닐게.”
그때 엄마가 내게 할 수 있는 일은 두 눈을 깜빡이는 것뿐이었다. 눈꺼풀을 가까스로 깜빡이는 엄마의 붉은 두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물 한 방울 목으로 넘길 수 없는 사람의 눈에서 흘러나온 물이었다. 엄마에게 듣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았던 것 같은데, 듣고 싶은 답을 모두 들은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언어가 있기 전 태초에 기척이 있었고, 돌이켜 보면 엄마와 나 역시 기척으로 만났다. 10개월은커녕 9개월도 못 채우고 세상에 나왔던 나는 엄마 품에 안기기도 전에 인큐베이터에 머물러야 했다고 한다. 1993년 31세 늦은 나이(당시 기준)에 첫 아이를 낳은 초보 엄마가 울며불며 나를 찾아온 어느 날, 나는 이마에 주삿바늘을 꽂은 채로 인큐베이터 안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고 한다. 엄마는 그때의 기척을 기적이라 생각했는지 내 이름을 밝을 소, 그럴 연 “그렇게 밝게 자라라”고 지었다.
‘작가의 말’에서 한강은 “소설 속 그와 그녀의 침묵과 목소리와 체온, 각별했던 그 순간들의 빛을 잊지 않고 싶다”고 썼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소설을 원서로 읽는 기쁨을 누리며, 나는 오래전 어두컴컴한 병실을 밝혔던 희미한 빛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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