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혐오스러운 존재? 기생충 없인 못 살걸요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0월 26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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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세상을 구할 기생충/스콧L.가드너·주디다이아몬드·가버라츠 지음·김주희 옮김/272쪽·1만9000원·코쿤북스


지금은 사라진 학교 풍경이 됐지만 1970, 80년대 초중고교생들에게 채변봉투는 참 유쾌하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다. 직접 자신의 변을 채취하는 것도 낯선 경험인 데다 등교 시간은 다가오는데 ‘신호’가 없으면 더욱 초조해지기 마련. 더 난처한 것은 며칠 뒤다. 선생님이 몇몇 아이를 직접 호명해 약을 나눠준 것. 따로 몰래 줘도 됐을 텐데 당시 선생님들은 왜 그러셨을까. 여하튼 기생충 하면 안 좋은 기억부터 떠오르는 것은 이런 유년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이런 관점을 조금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해만 끼치는 존재’라는 우리의 인식과 달리 생물학 교수이자 기생충학자인 저자들은 기생충이 숙주에게 심각한 피해를 미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한다.

숙주가 죽으면 자신도 죽기 때문에 기생충과 숙주는 운명공동체이고, 오히려 환경 변화로 혼란하고 예측 불가능한 세계에 숙주가 적응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또 기생충은 숙주의 면역계를 자극해 낯선 미생물을 물리치거나, 숙주가 먹은 낯선 먹이가 에너지로 전환되도록 돕는 등 숙주의 생존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저자들은 오늘날의 환경 오염과 기후 변화로 연구는 물론이고 식별도 되지 않는 수많은 기생충 종이 멸종되고 있는데, 이는 제목과 내용도 아직 파악하지 못한 책이 가득한 도서관에 불이 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기생충은 사실상 지구를 지배하는 생물인데 아쉽게도 그들의 다양성과 진화, 생태 등에 대해서는 연구된 것이 적기 때문. 인간 등 숙주의 생존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기생충에 관한 연구는 곧 지구상의 모든 자연 생태계에서 생물군집이 더불어 사는 방법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가혹한 환경 변화에 우리가 적응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준다고 말한다. 원제 Parasites: The Inside Str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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