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고령화’ 비상사태 선언에 모두의 마음이 급해졌다. 지난달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의무 가입 상한 연령을 64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달 행정안전부는 공무직 근로자의 정년을 65세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개편했다. 국회에는 이미 다수의 정년 연장 법안들이 발의돼 있다.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해 보기도 전에 정년 연장 논의가 성급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인구 감소 시대에 경험이 풍부한 고령자가 더 오래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이는 없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일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노사 입장 차가 크다. 노동계는 국민연금 수급 시기에 맞춰 모든 근로자의 법정 정년을 65세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경영계는 법으로 정년을 일률적으로 연장하면 사회적 부작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정년 후 근로계약을 다시 맺는 재고용 중심으로 고령자를 고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률적인 법정 정년 연장이 어떤 파장을 가져오는지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2013년 정년 60세가 법제화된 후 정년 퇴직자보다 조기 퇴직자가 더 늘었고, 원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쉬는 청년’도 늘어났다. 고육지책으로 도입한 ‘임금피크제’는 사건마다 엇갈린 판결이 나오면서 산업 현장에 혼란을 낳고 있다.
일본은 1994년 정년 60세를 법제화했다. 당시 일본 기업의 80% 이상은 이미 60세 정년제를 도입한 상태였다. 대다수 기업이 법제화 이전에 노사 합의로 60세 정년을 시행했다. 이것이 일본이 큰 부작용 없이 60세 법정 정년을 안착시키고 이후 65세 고용 확보 논의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결정적 차이다.
이후 일본은 2004년에 65세까지 ‘고용 확보 조치’를 의무화하면서 기업이 정년 연장, 재고용, 정년 폐지 중 하나를 선택해서 운용하도록 했다. 2020년에는 70세까지 취업 기회를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할 의무를 명시했다. 중요한 사실은 고령자 고용 연장을 위한 일련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일본의 법정 정년은 여전히 60세로 고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본도 법정 정년을 65세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65세 정년제를 실시하는 기업 비중이 20%대 수준에 불과해 정년 연장 법제화는 무리라는 판단을 내렸다.
일본 정부는 65세 고용 확보 조치를 시행할 때 기업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취했다. 재고용된 근로자의 임금 수준이 저하될 경우 정부가 임금의 일부를 보전해 줬다. 또 노사 협약으로 재고용할 대상자의 기준(건강, 근무 태도 등)을 정해 기업이 선별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사회적 합리성이 있을 때는 노동조합의 동의 없이도 취업규칙 변경이 가능토록 법제화했다.
여기에 더해 상당수 일본 노조는 정년을 연장하면 회사 재정이 감당할 수 없다는 사측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재고용에 동의했다. 저출생·고령화라는 사회적 난제를 앞에 두고 노사 상생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