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대비 mRNA 백신 개발 전폭 지원
국내 기술 보유 기업 있지만 정체…2028년까지 기술 완성 목표
지난 6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전 국장이었던 로버트 레드필드는 미국의 한 뉴스 채널에 출연해 전 세계가 공포에 떨 만한 이야기를 던졌다. 감염되면 2명 중 1명은 사망에 이르게 할 무시무시한 감염병이 조만간 대유행할 것이란 경고였다.
전 세계를 패닉에 빠지게 한 코로나19 사망률은 0.6%. 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인 50%에 이르는 사망률의 감염병이 인류를 위협할 거라는 것이다.
CDC 전 국장의 경고는 전 세계 전문가들도 공감하고 있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전 세계 전문가들은 10년 내 코로나19 수준 팬데믹 가능성에 대해 경고해왔다”며 “57개국 전염병 전문가 187명 설문조사 결과 인플루엔자 팬데믹 가능성이 가장 클 것으로 예측했다”고 말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조류인플루엔자에 주목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는 조류가 아닌 포유류에서 조류인플루엔자 A(H5N1)형 감염 사례가 늘어나면서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한 새로운 변이의 출현 위험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젖소 간 조류인플루엔자 감염이 전파된 데 이어 젖소에서 사람으로 바이러스가 전파된 사례도 9월까지 4건 보고됐다.
문제는 사람이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된 경우 치명률이 높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질병청 관계자는 “지난 9월 기준으로 보면 A(H5N1)형인체 감염은 전 세계 909명에게서 발생했는데 그중 464명이 사망해 사망률이 51%에 이르렀다”며 “대유행할 경우 300일 만에 인구의 41.8%가 감염되고 중증환자가 약 29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를 이미 경험한 세계 각국은 팬데믹이 다시 올 경우 조기 종식을 위한 방법 찾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해답은 빨리 찾을 수 있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백신이 사망률을 낮추고 중증화를 예방하는 것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질병청 관계자는 “여기서 떠오른 것이 mRNA(메신저리보핵산) 백신”이라며 “전통적인 방법으로 백신을 개발하면 1~2년이 소요되지만 mRNA 백신 기술을 보유한다면 개발 속도는 3~6개월로 획기적으로 단축되기 때문에 이 기술 확보 여부가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mRNA는 바이러스의 스파이크(돌기) 단백질 유전 정보를 담고 있어 우리 몸속 세포에 스파이크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해 바이러스 표면엔 사람의 세포를 뚫고 들어가는 역할을 하는 스파이크 단백질이 있는데, mRNA 백신은 바이러스와 동일한 스파이크 단백질이 체내 세포 표면에 생성되도록 하는 mRNA를 주입해 면역을 형성한다.
따라서 바이러스를 직접 체내에 주입해오던 기존 백신과는 달리, mRNA 백신은 바이러스의 유전정보가 담긴 mRNA를 투여하고 인체는 면역반응을 통해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항체 단백질을 생성하기 때문에 신속하고 더욱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다.
감염병뿐만이 아니다. mRNA 백신 개발 주요 기술 기반이 구축되면 암 백신, 희귀질환 치료제 등까지도 확장이 가능하다.
질병청 관계자는 “이론적으로 mRNA는 모든 종류의 단백질을 암호화하여 생산할 수 있어 치료제를 만들 수 없었던 단백질에 대한 치료제도 개발이 가능하다”며 “감염병은 물론 암백신, 에이즈,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개발 등에도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유전정보를 기반으로 한 치료제이기 때문에 유전정보만 알면 신속한 후보물질을 도출할 수 있다”며 “실례로 모더나, 화이자의 경우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mRNA 기술을 활용해 약 16주 만에 코로나19 백신 초기 개발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백신 기술 역량은 곧 국가 경쟁력과도 연결된다. 빠르게 백신을 보유한 국가는 감염병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때도 백신 생산국의 수출제한 등 자국 우선주의로 많은 국가들이 백신 수급 불안에 직면했었다.
이에 ‘백신 주권’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세계 각국은 ‘팬데믹 발생 100일 이내 백신 개발’을 목표로 차세대 mRNA 백신 혁신기술 투자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일본과 중국은 이미 지난해 mRNA 백신 개발에 성공하고 팬데믹에 대비한 mRNA 백신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으며, 미국은 지난 7월 조류인플루엔자 mRNA 백신 개발을 위해 모더나에 약 2442억 원 지원을 발표했다.
더불어 mRNA 기술은 감염병뿐만 아니라 암 백신, 희귀질환 치료제 등 첨단 고부가가치 기술로도 발전 가능한 유망 기술로 급부상하면서 이미 모더나는 mRNA 기술을 이용해 암 백신 등 12종을 개발하고 있다.
차순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장은 “2000년대까지 수입에 의존했던 독감 백신도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대유행을 겪으면서 국내 개발·생산이 본격화됐고, 그 결과 우리나라는 여러 국내 기업이 국내 독감 백신 시장의 70% 이상을 공급할 정도로 자립했다”며 “코로나19 mRNA 백신 수입에 매년 수천억 원의 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경쟁력 있는 국산 제품이 개발된다면 독감 백신과 같이 상당한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2020~2023년 코로나19 mRNA 백신 구매를 위해 해외 기업에 지불한 돈만 7조 6000억 원에 달한다. 우리 스스로 백신을 개발하기 전까진 매년 수천억 원의 예산을 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mRNA 백신 기술 개발에 뛰어들지 않은 건 아니다. 이미 국내 기업들이 mRNA 핵심기술을 분산 개발·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자본력의 한계와 글로벌 기업 시장 선점 등으로 대부분 비임상 또는 임상시험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질병청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이미 대규모 임상 및 국산화 성공 경험 등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현장의 전문가·기업들은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mRNA 백신 개발에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우리나라도 ‘신종감염병 대유행 대비 중장기계획’에 따라 유행 100일, 200일 내 개발 가능한 mRNA 백신 플랫폼 확보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엔 국가 정책적 추진 필요성을 인정받아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받고, 2025년 질병청 예산안에 290억 원을 신규 편성받았다.
질병청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 코로나19 기간 3개 민간 기업에 9300억여 원을 투자해 지난해 9월 코로나19 mRNA 백신 개발 및 플랫폼 구축에 성공했다”며 “우리도 일본 등과 같이 기술력·가능성 있는 민간 기업이 개발을 주도하고 정부는 재정·제도·인프라 지원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 팬데믹이 오더라도 더 이상 해외 제약사 도움 없이 우리 스스로 100일, 200일 만에 백신을 개발해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2028년까지 기술 완성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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