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7월 15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한 영국 노동당 정부가 처음 내놓은 예산안에서 연간 400억 파운드(약 71조4500억 원)의 증세 계획을 밝혔다.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1.25%에 이르는 규모로 1993년 보수당 정부 이후 가장 큰 폭의 증세안이다. 누적된 재정 적자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지만, 기업 부담이 커져 장기적으로는 근로자들의 임금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레이철 리브스 영국 재무장관은 지난달 30일 예산안을 발표하며 “공공 재정의 안정을 복구하고 공공 서비스를 재건하겠다”며 기업과 부유층을 겨냥한 대규모 증세 계획을 발표했다.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4월 새 회계연도부터 근로자 건강보험, 연금 등 기업의 국민보험(NI) 부담금이 급여액의 13.8%에서 15%로 인상된다. 이 밖에 자본이득세 인상과 상속세 감면 혜택 축소, 사립학교 학비 및 전자담배 세금 인상 등도 포함됐다.
대신 국민보건서비스(NHS) 투자를 증대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해 약 700억 파운드 규모의 재정 지출도 예상된다. 특히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12.21파운드(약 2만1850원)로 6.7% 인상할 방침이다. 리브스 장관은 “성장을 이끌 유일한 길은 투자”라며 국부펀드(National Wealth Fund)를 통해 700억 파운드 규모의 투자를 촉진할 뜻도 내비쳤다.
리브스 장관은 같은 날 BBC와의 인터뷰에서 31년 만의 가장 큰 규모의 증세 조치를 결정한 게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번 같은 증세안은) 반복하고 싶지 않다”며 “하지만 전임 보수당 정부 시절 악화된 상황을 개선하고 공공 재정을 확고한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선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증세안이 노동당이 원하는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영국 예산책임청(OBR)은 “기업들이 증세 부담을 근로자에게 전가해 180억 파운드에 이르는 임금 감소를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사지 이코노미스트는 “지출 확대나 증세가 변화를 가져오려면 야심 찬 세제 개혁 등이 뒤따라야 한다”며 “하지만 이번 무거운 예산안은 개혁 측면에선 심각하게 가볍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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