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 메디컬 현장]‘사람유두종바이러스 암’ 30년 뒤 사라지게 하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1월 7일 03시 00분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는 전 세계 암 원인의 5%가량을 차지한다. HPV로 생기는 질환 중에는 여성의 자궁경부암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는 남녀 모두에게 두경부암, 항문암, 생식기 사마귀 등 다양한 질환을 일으킨다. 지난해 한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15세 이상 남성 3명 중 1명으로부터 최소 한 종류의 HPV가 검출됐으며 5명 중 1명은 암을 유발하는 고위험군 HPV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중에도 남성 두경부암은 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 세계 의학계에서 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미국에선 남성의 HPV 관련 두경부암 발생률이 여성의 자궁경부암 발생률을 앞섰다. 국내에서도 지속적으로 증가해 남성 두경부암 환자는 2013년 611명에서 2023년 1222명으로 2배 이상이 됐다.

2016년부터 국가필수예방접종의 일환으로 시행 중인 HPV 백신 접종은 현재 여성 청소년만을 대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현재 중학교 입학을 앞둔 여아 대상 HPV 백신 1차 접종 완료율은 80%에 육박한다. 반면 같은 해에 태어난 남성 청소년의 접종률은 0.2%에 불과하다. HPV 백신이 남성에게도 필요한데 말이다.

국가필수예방접종 18종 중 특정 성별에만 지원하는 백신은 HPV가 유일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통령선거 때 9가 HPV 백신을 남성 청소년에게도 지원하겠다고 했다. 지난달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이 HPV 백신의 남성 접종 필요성을 질의하기도 했다.

남성 청소년 대상 HPV 백신 접종은 전 세계적 흐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8개국 중 33개국이 이미 남성에게도 접종하고 있다. 한국은 멕시코, 코스타리카와 함께 여성 청소년에게만 접종을 지원하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국가 차원의 HPV 예방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캐나다와 호주의 경우 9∼26세를 대상으로 남녀를 가리지 않고 예방 범위가 넓은 9가 백신 접종을 권고하고 있다. 호주는 2035년까지 세계 최초로 자궁경부암을 종식시킬 것이라고 선언한 상태다. 한국보다 10년 앞서 HPV 예방 사업을 시작했기에 가능한 목표다.

이달부터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심의를 진행하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가 한 달가량 운영되고 있다. 예결위에서 여야 의원 모두 중요성을 강조하는 HPV 백신의 접종 확대가 정부 예산안에 포함되길 바란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도 30년 뒤 HPV로 인한 질병과 암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다.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자궁경부암#국가필수예방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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