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사전에 등재한 열 단어[고수리의 관계의 재발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1월 7일 22시 57분


올해가 50일 남짓 남았다는 사실이 믿기 어렵다. 하루가 이르게 저물고 빠르게 추워지는 계절에는 마음이 갈피 없이 흔들린다. 한 해의 끝자락을 제대로 붙잡지 못하고 흘려보내고 놓쳐버리는 것 같은 기분. 올해 나는 어떻게 살았더라. 나는 행복했던가. 자꾸만 돌아보아도 뭔가 중요한 걸 잃어버린 기분이 들 때, 나는 멈춰 서서 발치에 굴러다니는 단어들을 줍는다.

고수리 에세이스트
고수리 에세이스트
교육학자 레오 버스카글리아는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라는 책에서 인생에 필요한 열 가지 단어를 정리했다. 평생 사랑과 인생을 연구했던 그는 때때로 열 가지 단어를 상상하고 자기만의 정의로 정리해 ‘인생 사전’처럼 두고 펼쳐보았다.

지혜로운 노학자를 따라서 나도 ‘내 인생에 필요한 열 단어’를 정리해 보았다. 달라지는 계절과 변덕스러운 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단어들은 대체로 굳건하다. ‘지혜, 여유, 진심, 염치, 친절, 슬픔, 기쁨, 사랑, 자아, 힘.’ 오늘 주워본 내 인생의 열 단어.

지혜,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와 현재가 나누는 긴 대화. 다독, 다작, 다상량으로 부지런히 탐구할수록 올바른 방향을 알려줄 삶의 나침반이 된다. 여유, 선의와 아량과 감사가 마르지 않고 솟아 흐르는 너그러운 내면의 샘. 가꿔야만 한다.

진심과 염치, 나를 똑바로 지킬 수 있는 깨끗한 마음과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의 기준. 내가 하는 일이 충분한지 모호할 때는 진심을, 내가 하는 일이 괜찮은지 의문일 때는 염치를 고민하며 올곧게 살고 싶다.

친절, 사람과 사람이 마주해야만 행할 수 있는 자발적 기회. 타인에게 아름다운 꽃을 건네듯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물 같은 행위.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가치이지 않을까.

슬픔, 매일 아침을 감사히 맞이할 수 있는 겸허한 마음. 도처에 서성이는 슬픔을 헤아리고 서로에게 기댈 수 있다면, 가장 약한 순간에도 우리는 다시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기쁨, 매일 새로 태어나는 사람처럼 작은 것들에 감탄할 줄 아는 작은 마음. 커다란 힘은 언제나 작은 마음으로부터 채워진다.

사랑, 모든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 내 인생의 진리. 자아,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진실을 기억한다. 끊임없이 성찰하고 탐구하며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야지. 힘, 나머지 모든 단어를 가능하게 만드는 나를 움직이는 힘. 부지런히 단련해야만 하는 몸과 마음의 기본. 날마다 걷는 사람이 될 것.

내가 집필한 인생 사전을 찬찬히 읽는다. 중요한 건 이미 나에게 있었다. 내 인생의 의미를 응축하여 모은 알맹이들을 공깃돌처럼 쥐고서 다글다글 굴리며 걷는다. 잃어버린 적 없는 인생의 단어들. 자주 꺼내 가지고 놀 나만의 가치들. 흔들릴 때마다 나를 지켜주는 힘이 된다.

오늘 당신에게 필요한 열 단어는 무엇일까. 떠밀리듯 흘러가지 말고 잠시 멈춰 서서 발치에 굴러다니는 인생의 보석부터 주워보기를. 레오 버스카글리아가 세상을 떠난 다음 날, 그의 타자기에서 발견한 문장을 당신에게 선물한다. “불행 속에서 흘려보낸 모든 순간은 바로 잃어버린 행복의 순간이다.”
#인생사전#열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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