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에세이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북하우스)를 펴낸 일본 소설가 사이토 뎃초(32‧사진)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일본 지바현에서 태어난 그는 루마니아는커녕 한 번도 해외로 나간 적이 없다. 하지만 말 그대로 ‘방구석’에서 루마니아어를 독학으로 익혀 2019년부터 루마니아어로 쓴 단편소설 30여 편을 문예지에 발표했다.
신간 에세이는 ‘루마니아어로 글을 쓰는 일본 소설가’가 된 그의 독특한 인생 경로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그는 본인의 에세이가 한국어로 출판된 것에 대해 “내 책이 다른 사람에 의해 번역돼 다른 나라에서 출판된 것은 처음이라 감동”이라고 했다.
그는 2015년 일본의 메이지대 일본문학과를 졸업했지만 취업에 번번이 실패했다. 앞서 학교생활에도 잘 적응하지 못했다. 좌절에 빠져 졸업 후 그는 집에 틀어박혔고,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됐다. 암담하던 그의 일상을 바꿔놓은 것은 루마니아 영화 ‘경찰, 형용사’(2009년). 보고 또 봤고 자연스레 루마니아어에도 흥미가 생겼다. “싫어하는 것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거나 게임을 하는 것처럼 루마니아어를 공부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학교에서 하는 공부를 싫어할 뿐, 스스로 찾아서 하는 공부는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루마니아어 교재를 몇 권 사서 읽었지만 부족했다. 그래서 페이스북 프로필에 ‘나는 루마니아를 좋아하는 일본인’이라고 적은 뒤 무턱대고 루마니아인 3000여 명에게 친구 신청을 보냈다. “이렇게 ‘루마니아 메타버스’를 만들면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이 루마니아어로 채워져요. 일본 만화를 좋아하는 ‘야미’ 등 루마니아인 절친과의 인연도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소설가 데뷔도 페이스북을 통해 이뤄졌다. 루마니아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지 약 4년 만인 2019년 인터넷 문예지 ‘리터노티카(LiterNautica)’의 편집장 미하일 빅투스로부터 투고 제안을 받은 것. 그의 첫 단편소설 ‘평범한 일본인(Un japones ordinar)’은 아빠, 남편으로서는 존경할 만한 인물이 어떤 측면에서는 무시무시한 인종차별적 심리를 드러낸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그는 소설가 한강의 작품도 여럿 읽었단다.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기쁘다는 그는 한강의 ‘희랍어 시간’에 가장 큰 애착을 느낀다고 했다. “한강의 작품은 고대 그리스어라는 미지의 언어를 배우며 주인공이 변해 가는 걸 그리고 있는데, 제가 루마니아어를 배운 경험과 통하는 게 있습니다.”
그는 루마니어를 익히면서 외국어 공부가 자신의 내면을 바꿀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나와 전혀 다른 문화권의 언어를 배우면 그 과정에서 자신이 변하는 감각을 맛보게 된다”고 했다. “예전에는 낯을 가리고 내성적이었는데, 루마니아어를 배운 지금은 오히려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즐겁다고 느낍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데는 그런 막강한 힘이 깃들어 있거든요.” 그는 최근 루마니아어에 이어 몰타어, 룩셈부르크어도 공부하는 중이란다.
그는 히키코모리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루마니아 철학자 시오랑은 ‘고독이 가르쳐주는 것은 당신이 혼자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외로움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분명 자신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때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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