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 여제’ 린지 본(40)이 은퇴 5년 9개월 만에 선수 복귀를 발표했다. 스포츠 스타의 은퇴 번복은 왕왕 있는 일이다. 다만 본의 복귀가 유독 더 큰 파장을 일으킨 까닭은 본의 주 종목이 활강이기 때문이다. 활강은 속도를 다투는 알파인 스키 중에서도 가장 빠른 종목이다.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에 나서는 활강 선수들의 평균 스피드는 시속 130km가 넘는다.
이 속도로 급경사를 내려오는 선수들은 자기 몸무게의 3, 4배를 무릎으로 버틴다. 기록을 0.01초라도 줄이려면 코스를 더 공격적으로 공략해야 한다. 이러다 무릎이 버티지 못하면 중심을 잃고 쓰러진다. 달리던 속도가 있기 때문에 한번 넘어지면 크게 다친다. 본이 2019년 은퇴를 결심했던 이유도 무릎 부상이었다. 본은 활강 선수 중에서도 가장 과감한 성향의 선수다. 양쪽 무릎 모두 인대가 수차례 파열됐고 골절 수술도 여러 번 받았다.
그럼에도 본은 올 4월 무릎뼈 재배치 수술 후 무릎 통증이 사라지자 바로 선수 복귀를 결심했다. 일각에서는 “마흔에 활강 경주에 나서는 건 미친 짓” “슬로프에서 죽겠다는 거냐”는 우려가 쏟아졌다. 이런 반응에 본은 “활강 선수 중에 위험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커리어 내내 늘 위험과 함께했다. 기꺼이 감수할 것”이라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본은 자신의 복귀 결정에 “엄마가 늘 남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본 게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본의 어머니 린다 크론 씨는 본을 낳으며 뇌졸중이 와 그 후유증으로 오른 다리가 부분적으로 마비됐다. 운동신경이 남달랐던 어머니는 출산 후에는 이 장애 때문에 제대로 뛰지 못했다. 자전거를 탈 수도, 딸과 함께 스키를 탈 수도 없었다.
본은 “매일이 도전이었지만 엄마는 늘 다시 일어났다. 역경은 엄마를 더 강하고, 친절하고, 겸손하게 만들 뿐이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다치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는 늘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됐다”며 “매일 모든 것을 쏟아내고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고 했다.
2년 전 어머니가 근위축성측색경화증(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본은 “내가 할 수 있는 건 엄마가 그랬듯이 미소를 잃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것이다. 삶을 한순간도 낭비할 수 없다. 후회는 조금도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본은 이번 복귀 발표 때도 “도전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며 2년 전 은퇴한 테니스 전설 로저 페더러와 나눴던 대화를 전했다.
“페더러가 자기는 레몬을 하도 탈탈 짜서 ‘이제는 한 방울도 더 나올 게 없다’고 하더라. 나도 내 커리어가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내 레몬에는 아직 더 짜낼 즙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살다 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불행을 맞는다. 그중에서도 당연하게 누리다 빼앗기는 상실은 특히 쓰리다. 하지만 상실 이후에도 삶을 사랑할 줄 아는 태도가 불행과 행복을 가른다. 본의 어머니는 삶이 시큼한 레몬을 던져줄 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레모네이드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자란 본에게는 이미 훌륭한 레모네이드 레시피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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