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의 출범이 두 달 남았는데, 벌써 그 충격이 한국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경제 기초체력을 반영하는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를 넘나들고 한국 기업 실력을 보여주는 증시는 코스피 2,400 선을 위협받다가 소폭 반등했다. 트럼프발 무역 전쟁의 최대 피해국으로 꼽히는 중국보다 하락 폭이 큰 상황이다. 한국 대표 기업 삼성전자는 주가가 4만 원대로 폭락하자 자사주 10조 원 매입을 전격 발표했다. ‘트럼프 포비아’가 과도하다기보다 미중 양대 시장과 특정 산업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의 취약성을 여지없이 드러낸 셈이다.
美中 수출 비중 40% 한국에 고관세 직격타
스스로를 ‘관세맨(Tarriff man)’이라 칭하는 트럼프의 집권 2기가 시작되면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은 타격을 피할 수 없다. 당장 모든 수입품에 물리겠다는 10∼20%의 보편관세와 중국산에 대한 60% 관세 폭탄 공약이 기다리고 있다. 트럼프는 대중국 강경파이자 관세 정책의 열렬한 지지자인 하워드 러트닉 정권인수팀 공동위원장에게 상무장관뿐 아니라 무역대표부(USTR) 사령탑까지 맡기며 더 독해진 보호무역 조치들을 밀어붙일 태세다.
미중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여파로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미국은 21년 만에 한국의 최대 무역 흑자국이 됐다. 트럼프 1기 마지막 해 166억 달러였던 대미 무역 흑자는 지난해 455억 달러로 늘었다. 미국 입장에선 한국이 8위 무역 적자국인데, 이를 빌미로 노골적인 통상 압박을 가하거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틀을 흔들 수 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이 폐지되거나 축소되면 미국 정부의 보조금 약속을 믿고 현지 투자를 감행한 국내 기업들의 피해가 커질 것이다. 모두 반도체·자동차·배터리 등 우리 주력 산업이 대상이다.
무엇보다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가 본격화되면 한국 경제에 연쇄 쇼크가 불가피하다. 예전만 못하더라도 국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올 들어 19.2%로 미국(18.6%)을 앞선 1위다. 중국산 제품에 관세 폭탄을 때리면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는 한국도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대중 수출에서 중간재 비중은 78%에 달한다. 이미 중국의 저가 제품 ‘밀어내기 수출’로 국내 기업들이 몸살을 앓는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으로 수출하지 못하는 물량을 더 밀어내면 전 세계적인 출혈 경쟁이 우려된다.
내년 경제성장률 1%대 추락 위기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내외 기관들이 줄줄이 내년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2%로 낮추면서, 더 나쁘면 1%대로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수출 증가율이 올해 7%에서 내년에 2.1%로 꺾일 걸로 봤는데, 이마저도 미국의 관세 인상이 2026년 시작되는 것을 전제로 했다. 미국이 관세 조치에 속도를 내면 수출은 더 위축돼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도 위태롭다는 뜻이다. 이 와중에 한국이 미국의 환율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돼 환율 방어도 힘들어졌다. 고환율이 물가를 자극하고 금리 인하의 발목을 잡아 내수 침체를 더 심화시킬 수 있다.
이런데도 정부에선 절박한 위기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미 대선 직후 한미 정상 간 통화에서 트럼프가 조선업 협력을 요청했는데, 우리가 먼저 이런 제안을 못 했다는 것 자체가 정부의 준비 부족을 보여준다. 앞으로 온갖 ‘트럼프 청구서’가 날아올 텐데 한국이 미국에 가장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는 점을 내세우며 서로 ‘윈윈’할 거래를 제시해야 한다. 거센 보호무역 파도를 넘으려면 특정 지역과 업종에 편중된 수출 시장과 해외 생산기지를 다변화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규제 혁파와 구조 개혁으로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정공법에도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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