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멸’ 주장했던 英석학 “저출산 해소하려면 ‘자녀=토큰’ 인식 사라져야” [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1월 22일 14시 00분


세계적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 인터뷰
한국, 소멸하진 않겠지만 긍정적 상황은 아냐
여성 고용 안정, 정책 일관성 중요해

경쟁사회 갈수록 부담스러워지는 출산
자녀 성공을 가족·부모 성공과 동일시하면서
청년들 ‘완벽한 부모 증후군’…“못 키울 바에 안 낳아”
모두 ‘상위 5%’ 지향해선 저출산 해소 못해
명문대 할당 늘리고 지방 분산으로 다양성 키워야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12일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인구학과 명예교수가 12일 서울 동대문구 DDP 아트홀에서 기자와 만나 인터뷰에 답하고 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78)는 몰라도 “한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하는 국가가 될 것”이라 한 그의 말을 들어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약 20년 전 한 이 발언으로 이역만리 타국에서 유명 인사가 된 콜먼 교수는 아마도 근래 한국을 가장 자주 찾는 해외학자 중 한 명일 것이다. 합계출산율이 떨어지다 못해 0명대에 이르면서 그의 발언이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다시 한국을 찾은 콜먼 교수를 12일 서울 동대문구 DDP 아트홀에서 만났다.

콜먼 교수는 옥스퍼드대 명예교수이자 영국 내무부, 주택부, 환경부 특별 고문을 역임하고 인구 관련 8권의 책과 150편 이상의 논문을 저술한 인구학 분야 세계적 석학이다. 가장 먼저 그가 지난 세월 수없이 들어왔을 질문부터 던졌다. “한국이 정말 가장 먼저 소멸할까요?”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팔순을 앞둔 노학자가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내가 오래전 했던 말은 ‘조건부’였어요. 한국이 낮은 출산율 경향을 이어가고 이민자도 별로 늘지 않는다면 수학적으로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었죠.” 그러나 콜먼 교수는 한국의 상황이 결코 긍정적인 것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최근 몇 달간 한국에서 전년 동월 대비 출생아 수가 오르고 ‘아이 낳는다’는 청년이 늘었다긴 합니다. 좋은 신호일까요?

“출산율이 상승할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한국의 출생아 수는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추세고 지난해에는 합계출산율이 0.72명을 기록했습니다. 이건 분명 좋은 상황이 아닙니다.”

―당신은 한국 저출산 원인으로 ‘압축적 근대화’를 지목해 왔습니다. 특히 전통적 가족 문화가 급격한 경제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남녀 격차가 벌어지고 육아가 여성에 집중된 점을 꾸준히 지적했는데요.

“여성들의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고용 안정성이 출산과 가정생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건 이미 많은 사회과학 연구가 입증한 사실입니다. 자녀를 갖는다는 것은 장기 투자입니다. 15~20년간 지출과 시간을 묶이게 되는데 이는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죠. 당연히 안정적인 고용 상태가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고용이 안정적일 뿐 아니라 정책도 안정적이고 일관돼야 합니다. 프랑스가 높은 출산율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프랑스 사람들 누구나, 대통령이 누가 되든 관계없이 가족을 지원하는 정책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실제 프랑스의 지원 정책은 갈수록 나아지고 있고요.”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포드대 인구학과 명예교수(78).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그런데 프랑스와 달리 한국에선 가족과 자녀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도 많이 옅어진 것 같습니다.

“그건 사실일 수도 있지만 서유럽이라고 그런 변화가 없는 건 아닙니다. 가족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는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거든요. 한국과 프랑스의 가족관에 있어 큰 차이점을 꼽으라면 저는 프랑스에서는 태어나는 아이의 절반이 혼외출산일 정도로 결혼 밖 가족이 많다는 점을 꼽을 겁니다. 내가 어렸을 때인 1950년대 그러니까 60, 70년 전 영국의 혼외출산율이 4~5% 정도였는데 지금 한국의 혼외출산율과 비슷합니다(※영국의 혼외출산율은 2022년 영국 통계청 기준 51.4%다).”

―결혼해야만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이 한국에서 출산을 더욱 부담스럽게 만드는 건 사실입니다. 결혼은 단순한 형식을 넘어 많은 문화적 구속과 억압을 내포하니까요.

“지금 서구에서 여성의 가족 내 지위와 인식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여성이 남성에게 복종해야 한다거나 여성이 육아를 전담해야 한다는 식의 인식은 이제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여성만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남성도 가장으로서 가정을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을 집니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요즘 한국에선 부모조차도 하나의 ‘자원’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잘 지원해야 한다는 부담이 전보다 더 커진 거죠.

“그건 굉장히 흥미로운 지적이네요.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세계 모든 부모가 자녀로부터 보상을 얻고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보통 그 보상이란 자녀를 키우며 느끼는 사랑, 즐거움 같은 것입니다. 물론 자녀가 부유하고 유명해지면 좋겠지만, 그게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보상은 아닐 겁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그것이 최우선적인 문제가 된 것 같군요. 그런 생각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데이비드 콜먼 교수가 12일 서울 동대문구 DDP에서 열린 SBS D포럼(SDF)에서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SBS 제공

―부모와 자녀를 동일시하는 전통적 가족관 영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부모가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 사회경제적으로 성공시키고 싶어 하고, 이를 자신의 성공으로 여깁니다.

“자녀의 성공이 가족과 부모의 성공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는 건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부모는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자녀가 문제를 일으키거나 실패했을 때 그것이 부모의 평판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제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은 (한국에선) 자녀가 (가족의 성공을 보장하는) 일종의 ‘토큰(token)’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 인식을 벗어나는 게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겁니다. 모두가 상위 5% 대학에 가고 최고 직업을 얻을 수는 없기 때문이죠. 대부분은 승리하지 못할 싸움에 에너지와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됩니다.”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인구학과 명예교수.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그래서 제가 만난 한국 청년들은 “잘 키우지 못할 바에야 낳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일명 ‘완벽한 부모 증후군’입니다. 이런 부담이 저출산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상위 5%를 향해 모두가 달리는 경쟁은 자멸적이고 무의미합니다. 교육과 성공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줄이고 조금 덜 경쟁한다면 지금처럼 많은 에너지와 시간, 돈을 쓰지 않아도 될 텐데요.”

―가능할까요?

“매우 어려운 일일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효과적인 방법을 고민해 봐야겠죠. 명문대학 입학 인원에 할당량을 부여하는 방법이 있을 겁니다. 이미 한국에서 일부 시행 중이지요? 오늘 아침 포럼에서도 누군가 언급했는데, 중앙 정부의 기능을 지방으로 이전하여 지역에 고급 일자리를 만들고 인구를 분산하면 주택 문제와 각종 비용 압박이 줄어들 겁니다. 다양한 취향과 선호를 가진 사람들이 늘어날 수도 있겠죠. 나는 자녀가 세 명입니다. 당신보다는 한 명이 적군요. 당신은 어떻게 네 명을 키우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다음에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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