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돌아가는 승리[임용한의 전쟁사]〈342〉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1월 25일 23시 03분



손자병법에 우직지계(迂直之計)라는 말이 있다. 불리한 상황에서 조급하게 승리를 추구하다가는 큰 희생만 내고 패배할 수 있다. 느리고 멀리 우회하는 것처럼 보이는 전술이 실제로는 가장 빠른 길일 수 있다는 말이다.

한니발이 로마를 침공하자, 집정관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당시 로마의 병사들로는 실전으로 단련된 한니발의 군대를 이겨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한니발을 고사시키는 전술을 채택했다. 한니발이 이탈리아에서 장기간 주둔하려면 로마에 반감을 가진 도시들로부터 병력과 물자 지원을 얻어야 했다.

파비우스는 동맹시들에 선심을 베풀어, 이들이 한니발의 편에 서는 것을 막는 전략을 제시했다. 그러나 같은 집정관인 플라미니우스는 파비우스의 전술이 비겁하다고 주장했다. 로마 시민들은 플라미니우스를 지지했다. 플라미니우스는 군대를 이끌로 한니발을 토벌하러 나갔다가 트레비아 전투에서 처참하게 패배한다. 플라미니우스도 전사했다.

로마인들은 반성하고 현명한 파비우스에게 전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이 인내도 오래가지 못했다. 한니발의 군대는 약화되고 있었지만, 시민들의 인내는 더 빨리 바닥이 났다. 그러자 새 집정관인 바로가 파비우스의 소극적인 전략을 비난하고 자신은 전쟁을 바로 끝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민들은 다시 바로에게 환호했다.

바로는 전에 없던 대군을 편성해서 한니발을 치러 나갔다가 칸나이 전투에서 대패한다. 한니발의 승리에 놀란 도시들은 즉시 그의 편에 서기 시작했다. 로마인들은 후회하고 파비우스 전략을 다시 지지했지만, 성급함의 대가는 컸다. 지원 세력을 얻은 한니발은 이후 10년 이상 이탈리아에 머물며 로마를 괴롭혔다.

유혹은 언제나 달콤하다. 전쟁이든 경제든 고통받는 대중이 유혹을 이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시민도 현명하고, 지도자도 현명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운이 따르는 나라는 언제나 희귀하다.

#전략#전쟁#한니발#로마#파비우스 막시무스#우직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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