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정은]北, 美대표 팔 붙잡던 절박함 남아 있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1월 25일 23시 18분


이정은 부국장
이정은 부국장
2019년 북-미 하노이 회담 후 8개월 만에 스웨덴에서 열렸던 후속 협상. 북측 김명길 대표가 스티븐 비건 미측 대북특별대표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준비해 온 장문의 원고를 읽었다. “모든 책임은 미국에 있다”고 맹비난한 김명길이 일방적으로 협상 결렬을 선언하자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긴장된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 자리를 박찬 북측 대표단이 떠나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머뭇거리던 한 명이 비건 대표의 팔을 붙잡고 급히 한마디를 속삭였다. “제발,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Please, don’t give up).”

美 NSC 2인자에 지한파 앨릭스 웡 임명

예상치 못했던 이 짧은 한마디에 미국 협상팀은 꽤나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난 북측의 강경함 외에 다른 기류나 변수가 있는지 등을 놓고 다양한 분석이 이뤄졌다고 한다. 강경파인 북한 통일전선부와 상대적으로 온건파인 외무성 간의 알력 싸움이 있다고 알려졌던 때다. 협상에 참여했던 한 미측 인사가 전한 당시 장면은 ‘북한 내에도 비핵화를 원하는 이들이 몰래 애태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때때로 해보게 만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에 임명된 앨릭스 웡은 당시 이 자리에 있던 협상팀 중 한 명이었다. 1기 때 국무부 대북특별부대표로, 비건 대표와 함께 가장 집요하게 북한을 공부하고 협상 전략을 고민했던 인사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준비했던 전략들을 끝내 진전시키지 못했던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뒤 자신들이 이끌었던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리뷰에 나섰을 때는 “멍청한(stupid) 접근”이라며 고개를 내젓기도 했다. 공직을 떠난 이후에도 북한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던 그에게 하노이 회담은 ‘미완의 협상’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 웡이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2인자에 임명되면서 북-미 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 섞인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그를 지명하면서 “김정은과 나의 정상회담 협상을 도왔다”고 소개했다. 웡은 한국과도 인연이 많은 지한파다. 비건 대표와 함께 광화문에서 ‘닭한마리’를 즐겼던 그는 이후 쿠팡 임원으로 서울 출장을 올 때면 짬을 내 한국 외교관 친구들을 만나고 함께 한식집을 찾았다.

웡 같은 인사들이 백악관에 들어간다고 당장 한반도 이슈 논의가 재개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중동 전쟁이 우선순위에 올라 있다. 중국 전문가이기도 한 웡은 미중 갈등 현안들도 다뤄야 한다. 무엇보다 북핵 이슈는 일부 참모들의 경험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더 이상 비핵화 협상은 없을 것이라는 김정은과 핵 동결 혹은 군축을 논의하게 되더라도 결국 검증이라는 덫에 다시 걸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으로서는 어떤 방식이든 북-미 협상이 재개됐을 경우 우리가 소외되지 않도록 한미 공조를 유지하는 일이 시급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노골적으로 ‘왕따’ 시도를 당하고, 한국이 포함된 3자 회동을 만들어 보려다가 망신당한 전례가 있다. 더구나 지금은 북한의 통미봉남 의도가 더 노골화하는 시점이다. 한미 간에는 방위비 분담금 같은 민감한 동맹 현안도 예고돼 있다. 웡 같은 인사들을 연결고리로 트럼프 2기 백악관을 ‘넛징(nudging)’할 필요가 있다.

한국, 對美인맥-전략으로 북핵 풀어야

인맥과 전략이 탄탄하게 뒷받침된 세련된 외교로 한국이 이를 매끄럽게 풀어낼 수 있다면 미국과 함께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게 불가능한 장면은 아닐 거라 본다. 또 누가 아는가. 혹시라도 미국 협상 대표의 소맷부리를 절박하게 붙들던 그 북한 외교관과 다시 마주 앉게 될지.

#북-미 협상#앨릭스 웡#비핵화#북한 외교#한미 공조#대북 정책#외교 전략#트럼프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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