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해양 환경운동가 찰스 무어가 태평양에서 거대한 쓰레기 지대를 발견한 후 해양으로 배출된 폐플라스틱에 의한 생태계 파괴 및 미세플라스틱에 의한 인체 위협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며 플라스틱 오염이 세계적 이슈가 됐다. 이후 유엔은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과 사용량 억제, 폐플라스틱 회수 등에 관한 국제협약 체결을 목표로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를 가동했다.
지난달 25일 부산에선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위한 제5차 INC가 열렸다. 7일간 이어진 협상은 당초 12월 1일 종료 예정이었지만 마지막 날 밤을 새우고 2일 오전 3시까지 치열하게 이어졌다. 그럼에도 협약 성안에는 이르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협상 결렬은 매우 아쉽지만 한국 정부를 포함한 국제 사회의 노력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제5차 INC 개최국인 한국은 협상 전부터 국제사회의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다. 올해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기회가 생길 때마다 부산에서 국제 플라스틱 협약이 성안될 수 있도록 협력하자는 목소리를 내며 각국의 관심을 환기시켰다.
부산에서 INC가 열리는 기간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우루과이, 케냐, 프랑스, 캐나다 등 지난 INC 개최국 수석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고 협력을 논의했다. 자체 절충안을 마련해 루이스 바야스 발디비에소 의장에게 제출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 대표단이 브라질과 논의한 끝에 만든 플라스틱 제품 관리 조항 문안은 미국, 영국, 러시아 등 많은 국가의 지지를 얻어 의장 제안문에 반영됐다.
산유국과 유럽연합(EU), 도서국 등 각국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경제적 상황이 복잡하게 맞물린 데다 물리적 시간까지 부족해 협상 타결은 2025년 이후로 미뤄졌다. 그러나 핵심 쟁점에 대한 각국의 구체적 입장을 확인할 수 있었고, 추후 협상에서 절충안 중심으로 논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세계 최대 플라스틱 원료 생산국인 중국은 그동안 경직된 태도를 보였지만, 이번엔 생산 감축에 있어 산유국들보다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국제사회가 협력과 연대 정신을 바탕으로 합의할 수 있다는 희망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은 기후변화협약 이후 가장 중요한 다자 간 환경협약으로 평가된다. 국가 간 다양한 이해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성안을 위해선 고차원적 해법과 접근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초심불망 마부작침(初心不忘 磨斧作針)이란 옛말처럼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도끼를 계속 갈면 언젠가 바늘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2022년 유엔환경총회에서 결의했던 뜻을 잃지 않고 여러 쟁점들을 하나씩 합의하길 바란다. 또 각국이 협상 타결 전이라도 플라스틱의 소비 감축 목표와 폐플라스틱 물질 순환 목표를 설정하며 실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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