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요양원에 어르신 20만 명이 입소해 있어요. 하지만 구강 검진은 40년 전 일본처럼 사실상 방치하고 있습니다.”(국내 요양원 관계자)
“덴마크 요양원에는 치과 의사가 상주해 노인들이 수시로 구강 관리를 받을 수 있습니다.”(덴마크 요양원 ‘홀메가드스파켄’ 린 후빈 소장)
지난달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한민국 치매 장기요양 어르신 식사는 하셔야죠’라는 제목의 공청회가 열렸다. 대한치과협회와 대한치과위생사협회 등이 한자리에 모여 요양원 등 장기요양시설에 입소한 노인의 구강 건강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구강의 건강은 전신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치아가 좋지 않으면 잘 씹지 못해 영양 불량, 심혈관 위험, 감염성 심내막염, 당뇨병 악화, 관절염 등 질환이 발생하고 심하면 흡인성 폐렴으로 숨질 수도 있다. 치아가 많이 빠질수록 인지기능 저하 위험도 높아지기 때문에 구강의 건강은 치매와도 관련이 크다. 나이가 들수록 구강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구강 상태가 가장 취약한 이들이 바로 요양원에 입소한 노인이다. 진보형 서울대 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장기요양시설에 입소한 노인 250명을 조사한 결과 절반가량이 심한 치주병이 있었고 충치 상태도 심각했다”며 방치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진 교수에 따르면 틀니를 착용한 경우 매일 저녁 빼 깨끗한 물로 세척하고 다음 날 아침에 다시 껴야 하는데 조사에선 2, 3년 동안 한 번도 빼지 않아 틀니 안쪽이 각종 균으로 뒤범벅인 경우도 있었다. 임플란트 일부 구조물이 빠져서 구강 점막에 붙어 자칫하면 흡인성 폐렴으로 위중해질 뻔한 사례도 발견됐다. 박태근 대한치과협회장은 “노인은 구강위생 관리만 제대로 해줘도 삶의 질과 건강이 많이 개선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는 요양원 입소 노인에 대한 구강 관리 시스템이 전무하다”고 말했다.
노인 구강 관리에 대한 지원이 없다 보니 결국 가족들이 나설 수밖에 없다. 요양원에 입소한 노인들은 거동이 불편한 경우가 많아 치과를 방문하려면 가족들이 모시고 가거나 구급차를 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치료비보다 교통비가 더 많이 드는 게 현실이다.
요양원 입장에선 촉탁의(계약의사) 제도를 활용해 치과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전국에서 촉탁의 치과의사는 9명에 불과할 정도로 활용 사례가 많지 않다. 촉탁의 제도의 기준이 되는 건 내과인데 내과의 경우 환자 50명을 2시간에 진료하고 1인당 약 1만 3000원 정도를 받는다. 반면 치과의사는 환자 1명당 최소 20분 정도 진료해야 하니 같은 방식으로 하라고 하면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현실적인 대안은 의사들이 요양시설에 방문해 진료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아직 국내에는 구강 질환 방문진료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다. 반면 일본은 방문진료가 활성화돼 수의사가 반려견 구강 관리를 해줄 정도다. 최근 기자가 방문한 덴마크 요양원도 치과의사들이 직접 노인들을 살펴보는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었다.
일본과 덴마크 등이 어르신 구강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것에는 삶의 질 향상 외에 의료비 절감 효과 역시 크다는 이유도 있다. 일본의 한 요양시설이 매주 한 차례 입소자 69명을 대상으로 구강 관리를 한 결과 폐렴 입원일이 4분의 1로 줄고 의료비는 4억2000만 원 절감한 사례도 있었다.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도 있다. 지금 추진 중인 요양기관 평가 지표에는 구강보건위생이 평가 항목으로 들어가 있고, 2026년부터 시행되는 돌봄 통합 지원법에는 방문구강진료가 포함돼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서울요양원과 시립동대문실버케어센터, 한국치매가족협회가 운영하는 청암노인요양원의 경우 전국에서 유일하게 구강보건실을 운영하고 있다. 요양원 노인 치아 정책의 필요성을 주장해 온 임지준 스마일돌봄 운영위원장은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더 이상 요양원 어르신 치아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며 “문제 해결을 위한 치과의사와 보건 당국의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