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당 예측 AI로 당뇨-비만 환자 돕는 랜식
의사의 길 대신 창업 결심… 음식 사진으로 혈당 예측 AI 개발
식습관-운동법 등 관리방안 제시
“혈당 데이터는 건강한 삶 토대”
의사의 길 대신 의학 지식으로 창업하는 진로를 택했다. 스타트업 랜식의 혈당 및 비만 관리 인공지능(AI)은 그 결과로 생겼다. 랜식의 양혁용 대표이사는 올해 31세다. 2022년 6월에 창업을 했을 때는 29세. 의사가 되고 난 후 군대를 갔다. 2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난 양 대표는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던 창업의 길을 정말 가야 할지를 군대에서 수많은 인문학 책을 읽으며 확신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목소리가 크지 않고, 빠르지도 않다. 뭔가를 거창하게 장담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약해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는 ‘차가운 열정’의 소유자로 보였다.
랜식은 글루코핏이라는 서비스로 혈당 관리와 비만 관리를 돕는다. 혈당을 연속으로 측정하는 기술을 이용해 혈당 예측 AI를 만들었다. 연속혈당측정기를 계속 사용하지 않더라도 섭취하는 음식의 사진을 찍으면 언제쯤 얼마나 혈당이 오르는지 알려준다. 양 대표는 “AI 기술 덕분에 음식 사진만으로도 95%의 정확도로 혈당을 예측한다”고 했다. 당뇨병이 있거나 당뇨 전 단계인 사람들은 물론이고 살을 빼서 더 건강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대상이다. 그는 “혈당이 급격하게 오르지 않도록 하고, 평균 혈당을 적절하게 관리하면 살은 1개월에 3∼4kg 정도는 빠진다”고 했다.
● “혈당을 관리하면 적절한 체중이 된다”
체중 감량에는 운동보다 섭취하는 음식이 70∼80%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섭취한 칼로리보다 빠져나가는 칼로리가 더 많으면 살은 빠진다. 섭취하는 음식과 탄수화물의 양이 적절한지를 점검하는 데 혈당은 유용한 수단이다. 음식을 많이 먹으면 기본적으로 하루 혈당 평균치가 높다. 이는 비만으로 이어지고 당뇨병 진단 지표인 당화혈색소 수치도 높인다.
사람들이 허기를 느끼는 것은 혈당 수치가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수치가 낮아졌을 때다. 식사를 하고 나면 1시간 30분쯤 후에 혈당이 최고치를 기록하고, 다시 1시간 30분쯤이 흐르면 최저치로 떨어진다. 급하게 먹으면 더 가파르게 오르고 가파르게 떨어진다. 혈당이 너무 많이 떨어지면 배고픔이 심해져 간식을 더 간절히 원하게 된다.
당뇨 환자에게는 혈당 관리가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당뇨병성 망막병증 같은 당뇨 합병증을 막아주는 생명의 파수꾼이다.
연속혈당측정기가 나오면서 인류는 이제 자신의 24시간 혈당 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혈당 측정을 위해 손가락 부위를 찔러 피를 짜내서 측정할 필요가 없다. 24시간 내내 자신의 혈당 수치를 아는 것만으로도 혈당 관리는 좀 쉬워졌다. ● 대체 음식 추천 등 실천 가능한 피드백 주효
랜식의 기술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양 대표는 “저희의 핵심 기술은 AI 기반 개인화 실시간 예측 모델링”이라고 했다. 2000만 건의 혈당 데이터와 30만 건의 식단 데이터가 예측 모델의 기반이 됐다.
사용자들이 먹는 음식의 사진만 앱에 올려도 AI는 혈당이 얼마나 오를지 예측해 준다. 더 중요한 것은 예측된 혈당이 너무 높다면 고생을 덜하면서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예컨대 먹는 음식에서 밥의 양을 한 숟가락 줄이고, 닭가슴살을 한 조각 더 먹으면 하루 섭취 열량은 유지하면서도 혈당은 dL당 10mL 낮출 수 있다고 안내하는 식이다. 양 대표는 “연속혈당측정기로 혈당만 측정하면 ‘아, 혈당이 너무 높게 나오네. 왜 이런 거지?’라고 하기 십상이지만 글루코핏 서비스를 이용하면 먹은 음식 중에서 뭐가 원인인지, 섭취 비중을 어떻게 조절하면 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고 했다.
연속혈당측정기는 주로 한 번 부착해서 14일가량 쓸 수 있다. 그런데 계속 부착하기에는 1개 10만 원 안팎의 가격이 부담스럽다. 양 대표는 “개인마다 혈당에 반응하는 민감도가 달라서 초기 데이터로 몇 번은 착용해야 하지만, 그 이후에는 글루코핏 서비스를 통해 음식 사진만으로도 자신의 혈당 변화를 알 수 있어 경제적이다”라고 했다.
글루코핏 서비스는 여기에 더해 사용자의 운동 습관과 수면 시간 등을 파악해 최적의 혈당 관리를 위한 방안도 제시해 준다. 언제 몇 보가량 걸으면 되고, 수면 시간을 최소 몇 시간 확보해야 한다는 식이다. 양 대표는 “3개월이면 자신에게 잘 맞는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 최적의 공복 시간 등을 종합해 평생 갈 수 있는 새로운 식습관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식사 후에 졸음을 느끼거나 피로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혈당 수치가 너무 급격하게 변하는 식습관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랜식에 따르면 지금까지 1만5000명의 누적 사용자 중 65%가 혈당 개선 효과를 봤다. 4주간 평균 3kg 정도를 감량했다. 사용 후기에는 3∼4kg 살을 뺀 뒤 건강하게 잘 유지하고 있다는 글이 많다. 양 대표는 “혈당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삼성전자와 강북삼성병원, 현대모비스 등 대기업 임직원들도 사용했다”고 했다. 랜식은 현재 외국 브랜드의 연속혈당측정기를 활용하는데, 점점 더 많은 연속혈당측정기와 웨어러블 헬스기기를 연동할 계획이다.
● 하고 싶은 일을 좇아 묵묵하게 창업 준비
단국대 의대를 졸업한 양 대표는 예과 2학년 때 아이티로 의료봉사를 다녀오면서 창업을 생각하게 됐다. 기본적인 영양제조차 없어 기형아를 출산해야 했던 산부들을 보며 진료실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방법을 찾고 싶었다. 의대 졸업 후 바로 군대를 갔다. 그는 “군에 있으면서 창업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 창업은 힘든 길이어서 내가 흔들리지 않을 철학이 필요했다. 내가 어떤 인생을 살고 싶고 왜 그렇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고, 그렇게 하는 데 있어서 창업이라는 수단이 ‘내가 인생을 의미 있게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는 상징적으로 10억 명의 사람들을 돕겠다고 상정했다고도 했다.
많은 사람을 돕는 수단으로 코딩 등 정보기술(IT)이 필요했다. 그는 스터디 모임을 찾아다니며 공부하면서 창업을 함께 할 동료를 찾았다. 그런 식으로 만난 IT 개발자가 150명에 달한다. 쏘카 출신 권윤환 개발자와 20개 이상의 웹과 앱 서비스를 만든 경험이 있는 정석환 개발자를 만나 2022년 6월 랜식을 설립했다.
처음에는 의사인 자신이 코칭을 하는 식단 및 비만 관리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다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의 음식 섭취로 인한 혈당 반응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연구 결과를 접했다. 글루코핏은 이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연속혈당측정기와 AI 기술을 결합해 개인별 맞춤형 건강관리 솔루션에 집중하게 됐다. 초기에 자신과 동료들이 직접 체험해 효과를 본 것이 큰 동력이 됐다. 공동창업자 정석환 개발자의 어머니는 글루코핏 사용 후 고혈압과 당뇨가 정상 수치로 개선됐다. 팀원들에게 더 큰 확신을 줬다. 랜식은 피트니스센터 프로그램이나 보험사 상품과 연계해 서비스를 키워가고 있다. 건강검진 데이터와 심박수, 체성분 등의 데이터와도 연동시킬 계획이다. 경쟁 서비스가 나왔지만 그들은 혈당 예측 알고리즘이나 실천가능한 피드백 등을 갖추지 못했다.
양 대표는 “현재 한국에는 600만 명의 당뇨 환자와 1400만 명의 당뇨 전 단계인 사람들이 있다. 일단 그들을 돕고, 세계 시장으로도 진출할 계획이다”고 했다. 글루코핏 서비스는 어쩌면 인류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올바른 식습관의 전형을 만들어 낼 서비스일 수 있다. 배가 부르도록 먹는 것이 얼마나 해로운지, 적절한 식습관이 얼마나 몸의 컨디션을 좋게 만드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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