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를 비판하는 시민 집회가 전국에서 확산하는 가운데 일부 시민이나 대학생들이 다른 집회 참석자들을 위해 커피나 음식을 미리 선결제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X(엑스)나 인스타그램 등에 ‘어디어디에 선결제를 해놨으니 집회에 오는 분들은 맘놓고 가서 드세요’라고 글을 올리면 이를 보고 가서 이용하는 식이다. 올라온 글은 커피, 김밥, 김치찌개 등 주로 집회의 추위와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음식들이 많았다. 도심 곳곳의 주말 대규모 집회에서도 충돌이나 안전사고 등은 발생하지 않아 성숙한 시민의식이 두드러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 집회 못 가는 대신 ‘선결제’ 참여
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근처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유학생 티아라 씨(25)는 기자와 만나 “어제 하루 동안 집회 참석 시민들을 위해 선결제를 하겠다는 전화가 40여 통 왔다”며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감사를 표했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현장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이 ‘선결제’로 집회 참석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 것이다. 근처의 다른 프랜차이즈 카페 사장 A 씨는 “7일 익명의 주문자로부터 커피 100인분을 선결제받았다”며 “SNS를 보고 선결제 음료를 받으러 온 손님들이 직원들에게 ‘고생한다’며 간식을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8일 이화여대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전공 소속 학생 일부는 집회 시민들을 위해 김밥 100여 줄을 선결제했다고 SNS를 통해 밝혔다. 다른 누리꾼은 선결제 인증 글을 올리면서 “군인이나 경찰도 이용하시고, 부디 시민을 해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당부했다. 여의도의 선결제 매장을 지도로 보기 좋게 정리한 웹사이트도 등장했다.
시민들은 “고맙다”며 감동을 표했다. 7일 집회에 참석한 뒤 선결제 커피와 핫팩을 받았다는 직장인 최지은 씨(28)는 “국민이 서로 한마음 한뜻으로 모였다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당사 앞 카페에서 선결제 샌드위치를 받았다는 안모 씨(30)는 “정치인들에게 실망한 마음을 주변 이웃에게서 치유받은 기분”이라고 했다.
● 시민들 “안전하게 시위하자” 질서 정연
계엄 사태 이후 첫 주말집회가 열린 7일 국회 앞에는 경찰 추산 10만7000여 명이 몰렸지만 별다른 충돌이나 사고는 벌어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질서 정연한 모습으로 정부 규탄 구호를 외쳤고,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참가자들은 아이돌 가수를 응원할 때 사용하는 응원봉을 들고 나오는 모습도 보였다. 한때 인파 탓에 서울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과 여의도역에 열차가 무정차 통과하기도 했지만, 경찰에 신고된 충돌이나 안전사고는 없었다. 시민들 사이에서 혹여 위험한 순간이 보이면 서로 “안전하게 시위합시다”라는 구호가 나왔다. 이날 광화문에서는 경찰 추산 1만9000여 명의 보수 진영 시민이 모여 탄핵 반대 맞불 집회를 열었다.
일요일인 8일에도 국회 앞 집회는 질서 정연한 모습으로 진행됐다. 경기도에서 첫 버스를 타고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국회 앞으로 왔다는 대학생 장윤희 씨(21)는 “어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탄핵이 무산됐다는 뉴스를 봤다. 아침이 밝자마자 곧장 왔다”며 “여당 의원들이 손잡고 나가버릴 줄은 몰랐다.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함께 온 대학생 이수현 씨(21)는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은 여태껏 학교 수업에서 배워 온 것과 분명 다르다”며 “어제 집회에 나오지 못한 게 마음 쓰여 오늘 왔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3시 국회 앞에서는 시민단체 촛불행동 주체로 경찰 비공식 추산 1만3000여 명이 참석한 ‘촛불 문화제’가 열렸다. 시민들은 ‘윤석열 즉각 체포’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윤석열을 탄핵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이날 성명에서 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고 국회 표결을 무산시킨 여당을 비판하는 집회가 이어졌다. 전북 군산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윤석열퇴진군산시민행동’은 9일부터 윤 대통령 탄핵이 확실시될 때까지 매일 오후 7시 무기한 집회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이날 정치학자 573명도 윤 대통령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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