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8일 “윤석열 대통령 조기 퇴진 추진”을 들고 나온 건 전날(7일) 국민의힘 의원들의 불참으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폐기 된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한 대표는 특히 “퇴진 전이라도 대통령은 외교를 포함한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조기 퇴진 추진’이 탄핵소추안 가결로 인한 직무 정지 효과와 비슷하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탄핵에 찬성하진 않았지만 탄핵과 비슷한 정국 수습을 여당에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대표가 밝힌 조기 퇴진 로드맵에는 시기와 방법 등의 구체성이 빠져 있다. 적법성 논란에 더해 야당이 책임총리제, 임기단축 개헌 등을 일체 거부하고 탄핵만 택한 상황에서 한 대표의 수습책이 현실화할지도 미지수다. 여기에 친윤(친윤석열)계와 중진 그룹에서 한 대표 주도로 추진하는 조기 퇴진 로드맵에 대한 공개 반발도 나와 당내 갈등의 불씨로 작용할 공산도 있다.
● 친한계 “임기단축” 거론
한 대표가 이날 오전 한덕수 국무총리와 발표한 대국민공동담화 핵심은 윤 대통령의 질서 있는 조기 퇴진 추진이다. 한 대표는 조기 퇴진을 추진하는 근거에 대해 “윤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할 수 없으므로 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 국민 다수의 판단”이라며 “윤 대통령도 (전날 대국민담회에서) 국민의 명령에 따라 임기를 포함해 국정 안정 방안을 당에 일임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질서 있는 퇴진”을 강조하면서도 조기 퇴진의 구체적인 로드맵은 밝히지 않았다. 대신 조기 퇴진 시기와 방법에 대해 “당내 논의를 거쳐서 구체적인 방안들을 조속히 말씀드릴 것”이라고만 했다. 한 대표는 대국민담화 뒤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 서범수 사무총장, 박정하 당대표비서실장, 장동혁 김종혁 최고위원,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 정성국 조직부총장 등 친한계 인사들을 불러 모아 수습책 마련을 논의했다.
일단 친한계 내에는 빠른 임기단축 계획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대가 모여 있다. 한 친한계 지도부 관계자는 “더불어민주당의 계속된 탄핵 시도로 주말마다 광화문과 국회 앞이 마비될 텐데 결국 임기 단축 일정이 제시가 되면, 야당도 탄핵안을 계속해서 올릴 명분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며 “일정이 속도감 있게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친한계 의원은 “현 시점에서 대통령이 자리에 있는 자체만으로도 부담스럽고 싫다는 민심을 우리도 안다”며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인지 체크하며 움직일 것”이라고 했다.
친한계 내에서는 “헌법재판소에서 언제 가결될지 모르는 탄핵소추안보다 한 대표가 주장한 질서 있는 조기 퇴진 로드맵 시행이 국정 혼란도 줄이고 더 즉각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 당내 “퇴진 시점, 이재명 선거법 선고 이후로 잡아야”
한동훈 지도부가 탄핵소추안 표결에는 불참하고 조기퇴진론을 띄운 것의 이면에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놓여 있다. 탄핵소추안이 당장 가결되면 이 대표가 이미 징역(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공직선거법 재판 역시 기약 없이 미뤄질 수 있어 이 대표의 대선 출마 길이 열린다고 본다. 선거법에 따르면 선거범 재판 1심은 기소 뒤 6개월 이내, 항소심과 상고심은 각각 3개월 이내에 해야 해 원칙상으론 내년 8월 이 대표의, 선거법 대법원 판결이 나와야 한다.
이에 따라 당장 조기대선 정국을 만들 탄핵소추안 처리 대신 탄핵소추안 가결과 유사한 효과를 내는 조기퇴진론으로 시간을 벌면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2심 내지 3심 결과가 조기 대선 전 나올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이 때문에 당내에선 “조기 퇴진 시점을 6개월 이후로 잡아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조기대선이 즉각 치러지면 민주당은 무조건 이 대표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더 있으면 다른 후보들이 뛰어들 수가 있다”고 말했다.
한 대표가 선제적으로 조기퇴진을 강조한 이날 친윤계와 중진 의원들은 당내 상의가 먼저라는 목소리를 냈다. 윤 대통령이 전날 대국민담화에서 “정국 안정 방안을 당에 일임하겠다”고 한 것은 한 대표 1인이 아닌 의원총회 등으로 의견을 모으라는 뜻이었다는 것이다. 윤상현 의원은 “대통령이 국정 안정화 방안을 당에 일임한 것은 당 최고위원회, 의원총회, 또 여러 원로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여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방안을 모색하라는 의미”라며 “대통령의 직무 배제, 질서 있는 조기퇴진 등의 방안 역시 당내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정국안정에 대한 건 의원총회가 제일 숙의 기구”라며 “의원들과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당 핵심 관계자는 “한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요구한 ‘당에 일임’ 조건을 수용한 것”이라며 “한 대표에게 권한을 준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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