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소외계층 인권 보호에 평생을 바친 엘리너 루스벨트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9일 22시 51분


12월 10일은 ‘세계 인권의 날’입니다. 유엔이 1948년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하며 제정한 기념일이죠. 당시 인권선언 초안을 작성한 사람은 유엔인권위원회 초대 위원장이자 미국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부인인 엘리너 루스벨트(1884∼1962·사진)입니다.

그는 미국 뉴욕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지병을 앓던 어머니와 알코올의존증 환자였던 아버지를 열 살도 되기 전 연달아 잃고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이후 영국 런던에서 공부한 그는 뉴욕으로 돌아와 빈민가에서 글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상류층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깊이 고민했는데, 이는 훗날 평생에 걸친 사회 활동의 밑바탕이 됐습니다.

엘리너 루스벨트는 봉사활동을 하며 만난 정치 지망생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1905년 결혼합니다. 그리고 1913년 해군 차관보로 임명된 남편을 따라 워싱턴으로 오면서 인권 운동과 사회 개혁 운동에도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여성 권익 증진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그는 정치인 남편을 지원하는 전통적 역할을 넘어서게 됩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소아마비로 두 다리를 못 쓰게 돼 평생 휠체어에 의지하게 되자 정치를 포기하려는 남편 곁에서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도 그였습니다. 결국 1932년 남편은 미국 32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백악관에 들어간 엘리너 루스벨트는 소외된 국민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흑인 사회와 연대하며 인종 차별과 맞섰고, 여성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명 흑인 성악가 메리언 앤더슨의 공연을 성사시키고, 대공황을 맞아 생활이 어려워진 퇴역 군인 모임 천막촌에 커피포트를 들고 찾아가 노병들을 울린 이야기 등이 유명합니다.

또 남편이 뉴딜 정책을 추진할 때 그는 전국을 돌며 정책을 홍보하는 데 힘썼습니다. ‘엘리너 루스벨트가 없었다면 뉴딜 정책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란 평가가 나왔을 정도로 그의 역할은 컸습니다. 1948년 유엔이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할 때도 그는 소련을 끈질기게 설득하며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엘리너 루스벨트는 상류층에서 태어났지만 평생 열정을 갖고 소외된 이들을 도왔습니다. 이는 그가 여성 리더십의 상징적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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