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이스라엘 기업 인수때 규정 위반”
구체적 위반 내용은 밝히지 않아
삼성-SK하이닉스 제품도 포함돼
미중 반도체 갈등 심화에 업계 촉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한 달을 앞두고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갈등이 격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미국이 대중(對中)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출 금지 등 제재안을 강화한 데 대한 반격으로 중국 당국이 엔비디아를 대상으로 반독점 조사에 착수했다.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9일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엔비디아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감독총국은 이날 “엔비디아가 2020년 이스라엘 정보기술(IT) 기업 멜라녹스를 인수한 건과 관련해 규정을 어겼다”고 조사 배경을 설명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위반 행위를 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당시 중국 당국은 엔비디아가 경쟁사에 90일 안에 신제품 정보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69억 달러(약 9조8000억 원) 규모의 멜라녹스 인수를 승인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은 이번 조치를 통해 자신들이 무역 및 기술 제재의 대상이 될 경우 조용히 지켜보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기준 전체 매출 중 약 17%를 중국에서 창출하고 있다. 뉴욕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중국 당국의 반독점 조사 소식이 전해진 9일 엔비디아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2.55% 급락한 138.8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인공지능(AI) 대장주’가 급락하며 미국 3대 지수도 약세를 보였다. 엔비디아는 이날 성명을 통해 “규제 당국이 우리 사업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모든 질문에 기꺼이 답변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이달 2일 미 상무부는 ‘중국의 군사용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 제한을 위한 수출통제 강화’ 정책을 통해 현존하는 모든 HBM 및 반도체 제조 장비 24종과 소프트웨어 도구 3종에 대한 신규 수출 통제를 발표했다. 이에 중국은 3일부터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원료인 갈륨과 게르마늄 등 희귀 광물의 미국 수출을 허용하지 않겠다며 맞불을 놨다.
중국 대표 기업인 화웨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압박 수위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10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달 7일 새로 공개된 미국 국방수권법(NDAA)에는 미국 국방부 계약업체가 화웨이나 그 계열사에 반도체와 반도체 제조 장비, 반도체 설계용 설비 등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문구가 포함돼 있다. 추가 제한 조항은 법안 가결 후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하면 270일 후에 발효된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주요국 핵심 산업인 반도체 시장 전반에도 불확실성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그간 엔비디아는 미국의 대중 규제를 피해 기술 수준을 낮춘 AI 가속기 ‘H20’ 제품 등을 중국 시장에 판매해 왔으나 지난해 5월 마이크론과 같이 이번 반독점 조사 결과에 따른 중국 시장 퇴출 우려를 피할 수 없게 됐다. 해당 제품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HBM도 들어가 있어 엔비디아의 중국 판매 타격이 우리 기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중국이 또 다른 반격 카드로 내밀고 있는 첨단산업 소재 수출 통제 범위가 한국 등 미국의 동맹국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블룸버그는 “글로벌 기업들은 점점 미중의 서로 다른 정책상 표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갈륨 등 소재의 경우 지난해 중국의 수출 통제 경험 이후 공급처 다변화를 해놓은 상태지만 또 다른 희토류 규제나 특정 기업 현지 시장 퇴출 가능성 등 불확실성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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